개인/책 이야기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

청풍헌 2024. 1. 29. 23:43

서평-1

한형조 김용환 오항녕 정진영 노관범 김상준 박원재 한도현 이은선 저,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 (글항아리,1013), 333

 

. 서언

유교는 동아시아에서 2500여 년 동안 일상과 생각을 지배해 왔다.. 유교란 무엇인가? 논어에서 군자의 조건으로 수기(修己)와 안인(安人)이라는 말이 있다. 수기와 안인은 병렬적인 관계가 아니다. 수기가 개인의 도덕적인 수양을 뜻하고, 안인이 그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실천을 의미한다. 즉 수기는 안인의 조건이며, 또 그런 한에서 안인이 수기의 궁극적 목적인 것이다. 이점에서 유교는 태생적으로 뼛속까지 공동체적이다.

‘조선 500년’은. 기본적으로 왕정이되 학자-관료군의 견제와 비판을 통해 통치권의 자의적인 행사가 제한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공론이 무엇보다 중시되었으며, 복지와 계몽이 병행되는 향촌 공동체의 꿈이 그곳에서 그려졌다. 이 책은 세계사적으로 드문 ‘500년 공동체 조선을 추동시켜 온 실질적인 힘인 유교적 구상에 대한 회고와 전망이다.

같은 주제의식으로 연관되어 있는 글이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유교 공동체론을 관통하는 기본 원리에 대한 총론이며, 2부는 조선을 매개로 역사화되었던 유교적 공동체론의 얼개에 대한 리뷰이며, 3부는 유교적 공동체론의 현대적 접목에 대한 가능성의 타진이다.

이 책은 조선을 지탱한 유교의 힘은 무엇이며, 현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유익한 내용이 될 것이다.

 

.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이 책은 총 333쪽으로 9명의 집필진이 500년 조선을 움직인 유교의 힘에 대한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서술되어 있다. 내용은 3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유교적 공동체는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지향하는가

1장 공()으로 사()를 물리친다.

유교적 공동체, 힐링과 참여로 공공을 구현하다라는 제목으로 한형조가 쓴 글이다. 주자는 ()으로 사()를 극복하라”, “나와 남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고 우리는 서로 의존하며, 신호는 끊임없이 오간다. 유교적 공사(公私)의 핵심은 공()이란 건전한 감응의 상호 작용과 네트워크를 말한다. ()란 그것을 방해하는 제반 독소를 총칭한다”. 그래서 중용장구인욕지사(人欲之私)를 극복하고 천리지공(天理之公)을 확보하라라고 권한다. 사를 치료하고 공에 이르기 위하여 우선 외부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하다. 마음의 병은 ‘자기망각’과 ‘자기중심성’이다. 그리고 이들을 꿰고 있는 중심은 경(), 늘 깨어 있는 성찰적 의식이다. 유교의 프로젝트는 교육을 통해 이들을 치유하고, 비판을 통해 이들을 견제함으로써 권력의 사()를 제거하고, 공공(公共)의 자연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2부 유교 국가 조선에서 유교 공동체론의 실험

2장 이 하나의 실험

조광조파의 성리학적 공동체 구현 노력이란 제목으로 김용환이 쓴 글이다. 성리학은 인륜 공동체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공동체주의와 친화 관계에 있다. 성리학적 공동체 구성을 위해 조선의 유학은 환난(患難)과 구휼(救恤)을 통해 유대감을 강화시켰으며, 미풍양속을 선도하는 규범적 치유기능을 발휘했다. 정암 조광조를 통해 우리는 성리학적 공동체 구현의 실험 과정인 회복적 정의가 실험적으로 구현되었다. 도학 경영을 통한 인륜 공동체 구현으로 인()에 근거한 인륜(人倫)을 중시했다. 도학 경영은 도학 이념을 통한 국가 경영이며, 민본의 애휼보민(愛恤保民)’을 실현하는 경영이다. 향촌 자치의 자율 경영으로 향약을 발전시켜 자율공동체로서 권리를 확보했다. 정암은 완성된 인격으로 성인을 만들고, 향약의 이상사회로 태화 경영(泰和 經營)을 도입하였다. 태화 경영은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의 의식주를 보호하며 지켜주는 경영을 말한다. 성리학적 공동체의 구현은 도학 이념의 유기체적 음양 조화 사상에 반영되어 있다. 도학 이념이란 임금이 신하들의 도덕 원칙을 받아들임으로써 인륜 공동체가 구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3장 조선 문치주의의 트로이카

유교 국가의 제도란제목의 오항녕의 글이다. 육가의 말,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은 문과 무가 인간 문명의 중요 요소인 국가의 작동에 대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유가 문치주의를 추구하는 이념형 조직에 경연, 사관제도, 언관제도가 있다. ‘경연(經筵)’이란 말 그대로 성경(聖經)’을 공부하는 자리다. 경전을 놓고 임금과 신하가 세미나를 한다는 말이다. 언관은 사헌부와 사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헌부는 감찰을 맡는다. 사간원은 정책이나 논의, 인물에 대한 비판을 주로 맡는다. 두 관청을 합하여 양사라 부른다. 사간원은 관직을 내어놓고 간언 한다.. 대간이 한 시대의 공론이었다면 사관은 만세의 공론이란 말도 있다. 역사는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그 관점의 차이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다, 줄이지 못해도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는 것은 물론 같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바로 여기에 역사학이 인간의 연대, 공감, 배려, 공존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4장 양반의 생존 전략에서 얻은 통찰

조선의 유교적 향촌 공동체정진영의 글이다. 사족이나 양반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향촌 지배 세력은 향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하여 향촌공동체를 중심으로 사족 중심의 향촌질서 또는 향촌 지배질서를 구축하는 과정과 그 운영 원리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유향소에서는 향사례 및 향음주례를 실시하며, 유향소를 중심으로 향안과 향규 그리고 향약이, 촌락 단위에서는 동계·동약이라는 체계를 갖춤으로써 완성된 형태를 보였다. 유교적 공동체의 운영원리는 집단성과 자율성이 중요한 요소다. 그것은 자치공론이며 향회에서 교화와 통제로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했다. 이후 사람파의 등장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이의 해결책으로 종법의 수용에 있다. 종법은 부계 혈통을 통해 가계를 계승하는 제도다. 부계 혈연의 동성마을을 중심으로 혈연적인 공동체가 발달했다. 18·9세기 조선의 향촌 조직은 큰 변화를 겪는다. 유교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농민 공동체가 활성화되었다.. 이런 농민 공동체는 동학 혁명으로 이어졌으나 실패하면서 사라졌다. 이후 자본주의가 생겨나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대신해 줄 것이라 했으나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만 하지 않았다. 인간은 어느 시대 없이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떤 공동체적 삶을 살 것인가와 동일한 질문인지 모른다. 유교가 여전히 살아 있는 공동체의 규범이 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유교 자체의 혁신이 필요하다.

 

5장 한국 근대 유교의 일독법

세속화와 공동체노관범의 글이다. 네이션과 시대, 곧 조선과 근대를 미리 전제하지 말고, 차라리 유교의 보편성에 어울리는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19세기 조선 사회에서는 유속(流俗)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일어났다. 유속이란 아무런 비판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 답습하는 것을 말한다. 유속의 마수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유교를 회복하려는 강렬한 유교 근본주의가 흥학(興學)의 형태로 분출했다. 흥학은 정학(正學)을 의미하며 정학의 수립은 유교 공동체의 종교성을 강화했다. 신학을 하는 지식인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라 불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결성했다. 예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유교 공동체에서 사회 공동체로 성격이 변화되었고 결국 세속화와 대결하여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었다. 세도정치기를 거쳐 고종과 순종의 치세에 더욱 가속화된 사회의 세속화는 유교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로 하여금 모든 세속화와 치열하게 대결하고 스스로의 공동체적 가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교적 가치를 재점화하고 재맥락화하게 했다.

 

3부 유교적 공동체론의 현대적 재해석

6장 온 나라가 굶주린 자가 없도록 하라

유교 양민론과 구민 정책김상준의 글이다. 백성이 굶지 않도록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늘 유교적 사유의 중심을 흐르고 있었다. 즉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부양하고 돌보는 사회를 말한다. 이 글은 유교 구민제도를 국가 주도와 민간 주도로 살펴볼 것이다. 상평창, 의창, 환곡은 국가 주도로, 사창은 민간주도로 운영되었다. 중국의 곡식 저장고 제도인 상평창은 2000년의 역사가 있다. 송(宋) 대에는 창름제도가 3(상평창, 의창, 사창)으로 확대 정비된다. 상평창은 주로 물가 조절기능을, 의창과 사창은 구민 기능을 했다. 유교 문명권에서 민간 주도의 구민 제도를 대표하는 것은 사창이다. 주희의 사창과 사창사목(社倉事目)을 모범으로 삼는다. 사창은 양심적인 민간 학자가 그 운영을 맡는다. 그러나 양심적인 운영자가 떠나거나 죽으면 사창의 주관자들이 공()에 의하여 사()를 행했다. 조선의 환곡은 향촌 농민에 대한 저리 대부에 기초하여 나라 소농민 전체의 생활과 생산 안정을 지월하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이로서 조선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소민대부(小民貸付) 형(小民貸付) 사회보장국가로서, 이러한 형태의 정책을 대규모로 시행한 국가는 조선이 유일했다. 18세기 초반까지는 진휼적 환곡이 증가했지만 18세기 후반부터는 재정보충적 환곡이 증가했다. 19세기 들어서면서 공권을 사유화하는 폐단이 커져가고, 1840년 이후로 접어들면서 환곡은 구민-진휼이라는 원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가렴주구의 도구로 전락했다. 중국과 조선의 상평창-환곡-사창 제도의 배경에는 종교적 열정에 가까운 유교의 강렬한 양민-구민사상이 있었다. 유교의 강력했던 양민-구민 사상을 오늘날 적용하면 조세정의와 보편복지가 그 영역이 될 것이다. 보편 복지는 기본소득제와 연결된다. 이렇듯 농업사회 단계의 유교 구민제도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남긴 과제가 이제 오늘날 해결될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7장 인지상정의 윤리학

유교적 규범론의 재음미박원재의 글이다. 유교적 규범에는 가족 윤리가 사회윤리에 우선한다. 핵심적인 도덕 판단의 영역에서는 감성이 이성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 윤리학에서는 이성이 우선한다. 감성과 이성 사이의 조화나 절충 가능성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감성은 이성보다 더 근본적인 요소다. 감성은 어떠한 윤리적 기획에서도 배제될 수 없다. 감성은 배제되지 않고 은폐될 뿐이다. 인간의 본질을 감성으로 보는 이러한 시각은 ()’()’에 있다. ()은 감정의 집합체이며 인()은 예()라는 전통적인 규범 체계의 정당성을 승인하고 지지하는 정서적 토대다. 인을 구현하는 핵심은 (), ()’에 있다. 충은 자기를 다하는 것이고 서는 자기를 미루어가는 것이라 정의한다. 충은 서의 원리에 우선한다. 인간에게는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습득한, 학습되지 않은 도덕적 가치가 존재한다. 나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결단은 최종적으로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성의 문제다. 유교의 성인들은 감성의 이러한 특성을 간파한 사람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를 타자로 이끄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임을 통찰하고 이로부터 규범을 짜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8장 인문과 예의 균형점에 서다.

유교의 교훈과 회복적 정의한도현의 글이다. 법의 심판과 정의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해자를 정의로 심판하는 것이지만, 법 심판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피해자와 사회 공동체가 남는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자의 범죄행위를 엄벌하는 사법 체계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관점에서 범죄행위를 바라본다. 즉 공동체의 신뢰관계와 화평을 회복하려는 치유적 관점이다. 회복적 정의는 응징의 사법이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호관계, 공동체적 관계에 주목하여 폭력을 예방하고 범죄에 반응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의 이념은 용서와 화해의 사상을 담고 있으므로 서양보다는 동양사회의 문화 전통에 더 잘 맞는다. 향약의 박아이문(博我以文)’, ‘약아이례(約我以禮)’라는 인문적 전통에서 출발한다. 인문과 예를 두 날개로 하는 유교적 공동체는 회복적 정의의 철학과 연결된다. 회복적 정의는 사회문제, 사회 갈등에 대해 국가의 사법 체계가 아니라 민간, 지역사회가 적극 개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회복적 정의, 비폭력 대화, 유교적 갈등 해소 방식이라는 비주류적 방식의 효과에 대해 조동화의 시로 대신한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9장 여성 주체성과 유교 전통

페미니즘의 재탄생이은선의 글이다. 유교가 침묵의 종교이자 최소한의 종교(minimal religion)’로서, 겉으로는 종교로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나름의 극진한 궁극적 의미의 추구이다. 끊임없이 낮은 것을 배워 높은데 도달한다(不學而上達)’지극히 높은 곳을 추구하되 일상을 따르라(極高明而道中庸)’라 말한다. 한국 여성의 삶과 유교 전통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특히 역사적이고 장기간의 전개 과정에 주목하였다. 그기에는 뚜렷한 포괄적인 사회발전의 방향과 구조가 드러난다. 한 문명의 원리가 그토록 오랜 기간,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왔다면 그 안에는 분명 우리가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장기지속적인 의미 체계가 담지되어 있을 것이다. ‘성인지도(聖人之道)’의 실천은 삶의 모든 일 속에서 도()를 실천하려는 구도였으므로 ()’이 종교가 되고 정치의 일이 곧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길이다. 유교가 현대 페미니즘의 도움으로 유교적 성인지도의 길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인다면 어느 다른 종교 전통을 통해서보다 여성들의 삶에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의 종교심과 신앙심을 인간 누구나 보편적 공경심()과 마음의 일()로 삼았다는 데에 유교 종교의 보편적 의미가 있다. 유교 전통에서 천지생물지심의 영성은 접빈객에서 잘 나타난다. 접빈객이야말로 한국 여성 리드십이 특징이다. ‘만물을 낳고 살리는천지생물지심의 영성을 확보하는 일과 사가종인, 극기복례는 끊임없이 좁은 자아를 버리고 보편을 따르고 과거의 자신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라고 촉구한다. 초인과 성인은 자유인이고 홍익인간이다. 우리는 홍익인간이라는, 인내로 여성이 된 곰이 낳은 이상을 들으며 자라났다.

 

. 결언

조선왕조 500년을 무리 없이 이어온 공동체의 줄기는 유교다. 유교의 어떤 면이 조선사회를 지탱했으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석학들의 글에서 짐작할 수 있다. 유교적 공동체에서 중심 사상은 경()이다. 교육을 통해 깨우치고 비판을 통해 견제해야 한다. ()으로 사()를 물리치고 공공의 자연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광조의 도학 경영을 통하여 인륜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으며 태화 경영도 함께 운영했다. 조선은 문치주의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 진리로 경연과 사관제도, 언관제도가 공존했다. 조선사회는 향촌 공동체가 살아 있는 조직이다. 유향소를 중심으로 자치와 공론이 함께 했다. 이후 농민 공동체가 나타나고 또 자본주의가 나타났지만 인간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유교의 세속화로 인하여 정학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들은 사회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했다. 조선 사회는 온 나라가 굶주린 자가 없도록 하라라는 명제아래 상평창, 의창, 환곡제도를 시행했다. 환곡제도로 전무후무한 사회보장국가가 되었지만 서서히 구민-진휼이라는 원래의 기능을 잃고 변질되었다. 유교적 규범의 핵심적인 도덕 판단은 감성에 있다. 사회 기능은 정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의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회복적 정의로 다스려야 한다. 회복적 정의는 각종 문제를 사법체계가 아닌 민간의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라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라는” 조동화의 시가 있다. 한 문명의 원리가 500년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왔다면 유교적 성인지도(聖人之道)의 길에서 여성들의 삶에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500년 조선의 공동체를 지탱한 힘은 유교의 경()과 인(), ()과 도학경영, 구민과 진휼이라는 환곡제도, 회복적 정의의 바탕인 유향소 등이 핵심이다. 현대사회는 다종교가 어우러져 함께 살고 있다. 인간은 나서부터 부모로부터 기본적인 가르침을 받으며 학교 교육으로 인성이 갖추어 간다. 부모를 공경하고 선생을 존경하고 사회의 규범을 가르치는 바탕에는 유교가 함께하고 있다. 없애고 버려야 할 유교가 아니라 옛것을 알고 새로운 대책을 세우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4년 1월 29일 23:44 청풍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