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여행 이야기

큐슈 역사탐방3 (수성水城) 공포의 나당羅唐 연합군

청풍헌 2014. 4. 27. 20:52

규슈의 역사탐방중 16세기(임진왜란) 훨씬 이전인 7세기 백제인들의 흔적 수성水城을 찾았다. 


수성水城을 알려면 7세기 한반도의 통일전쟁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 한반도 왜와의 삼각관계는 큰 변동이 일어난다.

고구려와 전투에서 패한 중국의 수隋는 이후 당唐으로 바뀌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치열한 외교전을 펼친다.

백제와 가까운 왜를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에 실패한 신라는 당나라와 손을 잡고 백제를 멸망 시킨다.

멸망한 백제를 부흥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유명한 백촌강 전투가 있다.


백촌강 전투

663년 8월 한반도의 백강(금강)부근에서 한판의 전투가 벌어졌다.

백제의 부흥군을 도우러온 800여척의 배와 2만 7천명의 와 백제 연합군 그리고  신라,당 연합군의 전투다.

이 전투에서 패한 백제와 왜의 연합군은 뿔뿔히  흩어져 일본으로 망명을 가게된다.


왜로 망명한 백제 호족들은 신라와 당군이 침입할 것에 대비하여 급하게 축성한다.

신라,당군의 전투력에 몹시 두려워 침략에 대비 했으나 제대로의 성을 쌓을 시간이 부족하여 토성을 쌓고 

양쪽에 해자를 둘러 안쪽 해자에 물을 채우고 유사시 밖의 해자로 물을 흘려 방어 하도록 된 토성이 수성이다.

하지만 나당 연합군은 백제를 멸망 시킨후 왜로 오는게 아니라 고구려를 쳤다. 이후 신라가 당나라를 몰아 내어 왜는 안심을 하게된다.


水城은 그 규모는 길이 1.2km 기저부의 폭80m 높이 14m로 모두가 인력으로 쌓은 토성이다. 

미즈키란 이름은 바다쪽으로 향해 폭 60m 깊이 4m의 호을 파서 물을 저장했기 때문이다. 

가스가바루시, 오노죠시에도 소규모의 수성이 남아있다.


통상 여행코스에는 없는 이곳을 간다하니 버스 기사 아저씨 왈 그곳에 뭣하러 갑니까? 

그냥 지나다 보면 될것을...

우리가 단순히 관광을 온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와 관련있는 유적을 살펴보고 역사를 공부하는 모임이라고 했다.


수성에서 관리하는 사람과 가이드가 한참 대화를 하더니 우리를 불러 모았다.

여기는 이렇게 단체로 오는게 드문데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묻는다.

설명 왈 "이곳 수성은 몽고군의 침입에 대비하여 수성을 쌓았으며 위에 있는 탑은 수성을 쌓을때 희생당한 사람을 위한 위령탑이다."

우리가 알고온 상황과는 다르다.

이는 교류의 부재에서 오는것 같다.

역사를 사실에 입각하여 정확히 아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거를 알아야 현재가 있고 그 바탕에서 미래를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 사적으로 보호 받고있다

▲현존 하는 수성터

▲수성터

▲수성대제지비

▲동문초석 설명





▲남무묘법연화경(나무묘호렌게쿄) 남여호랭교?


▲수성터 관리하는 사람이와서 설명을 한다.

▲몽고군과 고려군의 침입을 방지하기위하여 쌓은 성이라고...

▲본인은 전직 공무원이며 어떻게 여길 알고 왔느냐?

▲수성터

▲이곳도 짤리고 꺾여 도로가 생겼다.

▲무수한 신사중 하나

▲유구

▲남은 수성터


2014.4.10 큐슈 수성터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