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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필사 94~101일차 드디어 100일차 넘어서다.

청풍헌 2017. 5. 14. 15:49

94일차

25일 경술, 맑음. 바람이 순하지 않아 그대로 칠천량에 머물렀다.

26일 신해, 바람이 크게 불었다. 하루 종일 머물렀다.

27일 임자, 맑았으나 바람이 크게 불었다. 우수사 이영공(이억기)과 만나 이야기했다.

 

95일차

28일 계축, 맑고 바람도 없다. 새벽에 출발하여 가덕에 이르니 웅천의 적들은 움츠리고 있어 나와서 대항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 했다. 우리배가 바로 김해 강 아래쪽 독사리목으로 향하는데 우부장이 변고를 알리므로 여러 배들이 돛을 펴고 곧장 가서 작은 섬을 애워쌓다. 경상수사의 군관과 가덕첨사의 사후선 2척이 섬에서 들락날락 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황당하므로 잡아다가 영남우수사에게 보냈더니 수사가 크게 화를 내었다. 그의 본뜻은 모두 군관을 보내어 어부가 건진 사람의 머리들을 찾아내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초경에 아들 염이 왔다. 사화랑에서 잤다.

 

96일차(9대 대통령 보궐선거일)

29일 갑인, 흐림. 바람이 거세질까 염려되어 배를 칠천량으로 옮겼다. 우수사 이영공이 와서 만났다. 순천 부사, 광양 현감도 왔다. 경상 수사(원균)가 와서 만났다.

30일 을묘, 종일 비가 내렸다. 배의 뜸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계사년(1593) 3

 

97일차(9대 대통령 문재인 당선)

1일 병진, 잠깐 맑았다가 저녁에 비가 왔다. 방답 첨사(이순신)가 왔다. 순천 부사(권준)는 병으로 오지 못했다.

 

98일차

2일 정사, 온종일 비가 왔다. 배의 뜸 아래 웅크리고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응화를 불러 한참 동안 이야기 하다가 그길로 순천의 배를 보내어 순천 부사의 병세를 살펴보라 하였다. 이영남과 이여념이 와서 원영공의 비리를 들으니 더욱더 한탄스러울 뿐이다. 이영남이 왜군의 작은 칼을 두고 갔다. 이영남을 통해 들으니강진에 사는 사람이 2명 살아서 돌아왔는데 고성으로 붙잡혀가서 문초를 받고 왔다.”고 한다.

 

99일차

3일 무오, 아침에 비가 왔다. 오늘은 답청절이나 흉악한 적들이 물러가지 않아 군사들을 데리고 바다에 떠 있어야 했다. 명나라 군사들이 서울에 들어 왔는지를 듣지 못하니 근심스러움을 말로 다하기 어렵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4일 기미, 비로소 개었다. 우수사 이영공이 와서 종일 이야기했다. 원영공도 왔다. 순천 부사가 병으로 몹시 아프다고 한다. 듣자하니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북로로 간 왜적들이 설한령을 넘었다는 말을 듣고 개성까지 왔다가 서관으로 되돌아갔다는 기별이 왔다. 비통하고 번민한 심정을 참을 수 없다.

 

100일차(2017. 5. 13)

5일 경신, 맑았지만 바람이 매우 사납다. 순천 부사가 병으로 도로 간다기에 아침에 직접 만나보고 전송했다. 탐후선이 왔다. 내일 적을 토벌 하지고 약속했다.

6일 신유, 맑음. 새벽에 출발하여 웅천에 이르니 적의 무리가 육지로 다급하게 달아나 산 중턱에 진을 쳤다. 관군들이 쇠 탄환과 편전을 비 오듯이 난사하여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포로로 잡혀갔던 사천 여인 1명을 빼앗아 왔다. 칠천량에서 잤다.

 

101일차

7일 임술, 맑음. 우수사(이억기)와 이야기 했다. 초저녁에 출항하여 걸망포에 이르니 날이 이미 새었다.

8일 계해, 맑음. 한산도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은 뒤 광양 현감, 낙인 군수, 방답 첨사 등이 왔다, 방답 첨사와 공양 현감은 술과 음식을 많이 준비해 왔고 우수사도 왔다. 어란포 만호도 소고기 음식 몇 가지를 보내왔다. 저녁에 비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