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책 이야기

돌궐 유목제국사

청풍헌 2024. 8. 29. 20:39


돌궐 유목제국사

정재훈

돌궐은 미완의 유목 국가인 유연을 무너뜨리고 몽골 초원을 차지하여 그 존재를 역사상에 드러내었다. 그들은 아사나 집단이었다. 아사나 집단은 6세기초 유연의 지배를 받던 대장장이 집단에 불과했다. 고차와 유연의 상쟁으로 성장한 아사나는 고차와 유연을 격파하고 유목국가를 건설했다.(돌궐 제1제국, 552~630)
돌궐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이념을 완성하기 위하여 고차 신화의 ‘이리’ 신화소를 받아들여 자신의 신화로 삼아 이념적인 기초를 완성했다. 이로서 ‘투르크’라 불리는 존재가 단일체로서 역사적 계승 의식을 갖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사나는 새롭게 장악한 유목 부락을 종속적인 관계로 복속시켜 그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함으로 체제를 안정시키고 발전을 도모했다. 이후 돌궐은 몽골 초원 주변의 거란과 해, 타타르, 키르기스, 쿠르칸 등을 정복하며 발전했다.
원래 초원의 국가는 생산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공급받아야 했다. 당시 새롭게 지배하에 들어간 오아시스 출신의 소그드 상인들을 이용하여 아사나를 중심으로 한 초원의 유목 세력과 소그드 상인이 결합하면서 강력한 군사력과 교역망을 갖게 되었다. 즉 1,2차 산업이 아니라 3차 산업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동서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교역 질서가 생겨 ‘자유무역지대’가 등장했다. 물자의 보급은 중국과의 교역에 찾았고 소비는 비잔티움에서 찾았는데 수요가 줄어들었고 중국이 수조를 건국하면서 내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그 체제는 쉽게 무너지질 수밖에 없었다.
종실 내부의 갈등으로 동, 서 돌궐로 분할되었으나 수말 당초의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돌궐이 지위를 회복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당조는 돌궐에 대하여 기미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당조는 동돌궐, 설연타를 무너뜨린 다음 서돌궐, 백제,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대외적 발전을 구가했다. 이 과정에서 위구르와 비 아사나 계열인 아사덕 계열의 부락이 성장했다.
670년 후반이 되면서 당조의 발전이 한계에 와 돌궐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고비를 건너 위구르를 몰아내고 몽골 초원을 회복했다. 또한 튀르기쉬를 비롯한 과거 서돌궐 지역을 원정하여 성공시켰다.. 과거 판도를 회복시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강력한 북벌 의지를 가진 당 현종이 압박을 가했다. 한편 내부의 정변이 일어나 내분에 휩싸였다.. 당조는 돌궐을 인정하지 않고 압박했다. 이를 이용해 초원의 바스밀, 위구르, 카를룩 등 부족들이 돌궐을 공격하고 당조에 투항했다. 안녹산의 난을 계기로 부흥운동을 했으나 진압당하고 완전히 소멸했다. 이로서 680년대에 부흥한 후 60년, 그리고 최초의 건국부터 200여 년에 걸쳐 전개된 아사나를 중심으로 한 돌궐의 역사는 완전히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돌궐은 과거 몽골 초원을 지배했던 흉노나 유연과 달리 중앙아시아 초원을 대부분 차지하는 거대한 유목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건국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서로 분열되었고 당조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그 후 기미지배를 받다가 다시 몽골 초원으로 돌아가 국가를 재건했다가 740년대 중반에 붕괴되었다.
돌궐이 보여주었던 권위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한 교역 국가로의 지향, 즉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동서로 영역을 확대하여 초원과 오아시스를 결합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기초로 한 동서 교역의 역사는 이후 큰 영향을 미쳤다. 돌궐 이후 위구르나 10세기 초 의 거란, 13세기 초의 몽골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사나는 초원의 유목민을 통합하기 위하여 북아시아의 중요한 신화소였던 ‘이리’까지 차용하여 그들이 ‘투르크’라는 강한 자의식을 가지도록 했다. 아사나가 만들어 내었던 돌궐의 권위는 제국의 멸망과 함께 소멸되었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돌궐’이라는 무형의 역사적 유산은 이후의 전통이 되어 현재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
󰡔돌궐 유목제국사󰡕는 2019년 발간한 정재훈 교수님의 책으로 672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책이다. 한문자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오르콘룬 문자라는 고대 투르크 문자로 쓴 비문 자료가 있어 한문자료와 비교 검토하여 좀 더 중립적으로 접근하여 정리했다고 한다. 빈약한 자료로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돌궐의 역사를 복원한 교수님의 탁월한 능력을 본받고 싶다. 그에 비하면 나의 연구 주제는 훨씬 많은 자료와 풍부한 사료가 있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볼 만하다.

'개인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흉노 유목제국사  (4) 2024.07.23
조상제사 어떻게 지낼 것인가  (1) 2024.02.11
북토크  (0) 2024.02.07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  (4) 2024.01.29
신라는 정말 삼국을 통일했을까  (0) 2024.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