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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파 보고서26 마음 가는데로 행하라

청풍헌 2013. 5. 8. 05:18

몸살이 날려나?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쑤신다.

좀 쉬면 되겠지!

 

마음 가는데로 행하라.

귀국 날짜가 다가오니 같이 일한 위리펑과 주해봉 용해씨에게 저녁을 먹자고 했다.

같이 수고한 친구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등등...

 

다섯시반에 정문에서 만나 쇼강으로 갔다.

용해씨가 잘 아는 중국식당으로 직행.

여기서 탑재1과 대리(현지인)와 안전을 만났다.

자주오는 식당인 모양이다.

 

먼저 음식을 주문하고 이층에 자리를 잡았다.

좀 있으니 용해씨 맥주를 한박스 들고 나타났다.

주해봉은 술을 전혀 못하고 셋이 먹어야했다.

 

위리펑은 결혼하여 아들이 하나 있으니 인구정책상 지식농사는 땡이란다.

아내가 시댁에 가서 해방 됐다나?

주직장은 위로 형,누나가 셋이나 있다고 한다.

아니 왜 형제가 많느냐고 하니 부모님 새대에는 인구정책을 하기 전이란다.

 

주해봉(35) 직장은 회사 설립과  동시에 입사한 창업멤버다.

위리펑(30)은 2000년도 입사하여 족장관리를 하다가 탑재1과의 직장을 수행하고 있다.

용해(37)씨는 2005년도 입사 했는데 총경리,인사팀장,등등 4명이 조선족을 모집하기  위하여 용정에서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60여명이 시험을 봤는데 3명만 합격해 그중 당당히 시험에 합격 했다.

 

용해씨 부친은 연변의 용정에서 국가간부로 근무하다 정년 퇴직 했으며 모친은 공인(사원)으로 근무 했었다.

부친은 정치나 역사에 관심이 있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조선족에 대한 민족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북방은 부계중심 사회이고 남방은 모계중심 사회라 남방의 한족 여자와는 절대 결혼 안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족 여자가 놓은 자식은 한족화 되어 버리므로...(교육,언어 정책등등)

중국에서 소수민족이 살아가는 방법은 자기 민족을 퍼트리는 일과 자기 언어를 잊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문자가 없어 한자로 사용 했지만 언어는 꾸준히 사용 했으며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 하시어 민족성을 꾸준히 영속하도록 하신점은 민족중에 최고의 성군 이시다.

자기의 말과 글이 없어지면 민족은 말살되어 버린다.

 

주해봉 직장의 여친이 사는 마을에만 나는 "양매"라는 열매는(백양나무'양' 매화'매')

6월 중순 딱 보름간만 생산되는 귀한 과일이며 자색을 띈다.

크기는 자두만 하며 당도가 좋아 과일 내부에 기생하는 벌레가 있어 그것도 좋은 단백질이라 먹기도 한다.

 

요리가 10가지 정도 나왔다.

땅콩 볶은것,두부 말린것 무침,양고기 전골,묵 무침(한천?),닭고기 튀김,피망 볶음,찐만두,두부 야채 쌈

돼지갈비 배추탕,감자채 무침,대체로 먹을만 했다.

 

내가 주로 물어보고 답을 하는 대화를 했다.

중국의 민주화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산당 일당제 이므로 다당제를 할 수 없다.

다당제로 하면 중국의 분열이 일어난다.즉 소수민족의 독립을 촉발 함으로 강제로 억누른다.

 

일부 보도되는 언론인 검열 문제제기는 빙산의 일각이란다.

처음은 약간 풀어주는듯 하다가 정권인수가 안정이 되면 가차없이 친다.

 

중국에도 선거가 있는지?

당 위원회에서 당 대표를 선출 하는데 인민들이 투표를 한다.(4년마다) 

이미 당에서 내정된 대표를 뽑는 투표는 완벽한 형식적 이란다.

서방세계에 보여주기위한 쑈일 뿐이다.

 

국민들은 투표에 대하여 관심도 없다.

왜냐하면 형식적인 절차일 뿐 진정한 민의가 아니므로...

또한 정치도 마친가지다.

 

항주에는 북경까지 운하가 연결되어 있다 하는데 정말 물길로 북경까지 갈수 있는지?

멀리가는 조운선이나 장사배들은 돗을 달고 운행 했으며

도시로 들어서면 다리때문에 돗을 눞여서 통과 했다고 한다.

이곳 영파에도 북경까지의 뱃길이(운하) 열려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군대는 가는지?

모병제이며 만약 한국처럼 징병제를 하면 먹고 재우는 일만 어떻게 감당 하느냐며 옷는다.

중국의 군대를 해방군이라 칭한다

 

중국의 농촌을 가보고 싶다.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하다.

사회복지제도에 대하여 모택동이나 등소평 시대에는 먹고 사는문제 의료 문제가 해결 되었으나(하향 평준화)

지금은 경쟁시대,돈의 시대가 도래하여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

 

몇년전 시골로 갔는데 마을입구에 항아리를 묻어놓고 그위에 널판지를 걸어놓아 뭔지 물어보니 화장실 이란다.

남여 할것없이 엉덩이를 까고 볼일을 본다.

칸막이는 커녕 지붕도 없다.

 

인분을 비수肥水라 하여 다른 집에 흘러가면 안된다 하여 항아리에 모아 비료로 사용 한다.

우리나라도 4~50년전에는 똥 오줌으로 거름을 내곤 했었다.

뒷간을 쳐서 똥장군에 한통 지고가서 논과 밭에 뿌리곤 했었다.

 

나는 올해까지 하면 촉탁이 끝날것 같다.

나의 지식과 경험과 노하우를 학생들 시민들에게 전수해 주는 역할을 하고싶다.

어떤 방법이든지 간에.....

 

여러분들이 많이 배우고 책도 읽고 지식 검색도 부지런히 하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지식을 쌓아라.

부하를 관리하는데도 도움이 되며 차후 인생살이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록하고 관리하고 많은 이야기를 지식을 전수해라.

남에게 전하는게 나에게도 지식이 축척된다.

 

중국에 대하여 여러 이야기를 듣고 왔다.

동전의 양면성 처럼 좋은점 안좋은점 등을 듣고 왔는데

내가 만난 두사람은 너무나 열심히 하고 좋은 사람들 임에 틀림이 없어 행복하다.

 

일에 대한 부분의 의문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문의하라.

옛날에는 배를 타고 말을 타고 오랜시간 걸려서 이동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세상에 산다.

사진으로 실시간 전송하여 대화가 가능하니 걱정할게 없다.

 

오늘 좋은 시간을 가져 좋았다.

언제 또 기회가 오겠는가?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날이 틀림없이 올것이다.

힘!

 

 

운하에 비친 마천루

 

2013.1.11.쇼강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