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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통영인뉴스)아카다마 자료

청풍헌 2016. 9. 28. 20:24
통영 최초 네온사인 광고 카페 ‘아카다마’ 자료 찾았다.
   2016-09-23 09:05
 
-1934년 신편 부산대관 “카페계의 첨단”, “인기 독차지” 소개
-통영 원로들 회고, 이중섭 통영 시절 이야기마다 언급 
-광복 후~ 6.25전쟁 시기 불타...그동안 증언으로만 전해져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발굴
 

항남동 도깨비골목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제시대 이시노마치(길야정, 吉野町)에 있던 카페 ‘아카다마(적옥, 赤玉)’ 사진과 소개 등 자료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아카다마는 일제시대를 살아온 통영 원로들의 회고나 이중섭의 통영시절에 대한 언급 때마다 등장하는 당시 통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던 유명한 곳이었다.

 
1932년 8월 개업한 통영 아카다마는 주변에 즐비한 일본식 장옥들과는 달리, 서양식 2층 건물로 외관부터 다르고, 통영 최초로 네온사인 광고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아름다운 여급(女給)을 두고 있는 점에서 팬들의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높은 가격으로 인해 “수산업이 발달한 통영외에는 이런 곳이 없을기라”는 원로들의 증언과는 달리, 부산 아카다마의 지점이었다.
 


-> 1934년 발간된 <신편 부산대관>에 소개된 아카다마(赤玉)회관. <자료: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신편 부산대관'>

1934년 제작된 신편 부산대관(新編 釜山大觀)에 따르면 아카다마(赤玉)회관의 창업자는 야마구치현(山口縣)출신 쿠마노 카메오(熊野龜雄)였다. 조선에서 카페사업이 유리함을 알고 1929년 4월 부산으로 와, 오늘날 광복로 국민은행 맞은 편에 카페 아카다마(赤玉)회관을 창설하였다. 부산 카페계의 첨단을 달리며 인기를 독차지하여 오늘의 번영을 이루게 되었다.

밤의 천국인 부산항의 자랑이며 카페로서 제일이다. 아름다운 여급(女給)을 두고 있는 점에서 팬(fan)들의 열광적 환영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아카다마(赤玉)회관 통영점. 건물 상단에 한자로 '赤玉', 1층과 2층 사이 벽에 영어로 'AKADAMA'라고 쓴 네온사인 간판이 보인다. <자료: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신편 부산대관'>
 

->아카다마(赤玉)회관 마산점. <자료: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신편 부산대관'>
 
1932년 8월 통영지점을 설치하고, 1932년 9월 18일 마산에 1지점을 개설하였다. 1934년 8월 15일 다시 개구지점을 설치하여 떠오르는 태양처럼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 사람들이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대구지점은 역전 12칸 도로에 있다. 원래 대구 제일의 요정 낙천(樂天)을 순(純) 카페식으로 크게 개조하여 개업한 것이다. 대구지점이 개설되자 대구지역 카페는 물론이고 요리업계에서도 대선풍을 일으켰던 일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종업원은 본점과 지점을 합쳐 125명의 규모에 이른다.
 
즉 아카다마회관은 그 독특한 외관이나 네온사인 광고로 인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종전 요정과는 다른 새로운 문물인 카페라는 점, 그리고 아름다운 여급으로 인해 지역 내 다른 카페들은 물론이고 요리업계에도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통영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동안 일제시대를 회고하는 통영의 원로들은 늘 ‘아카다마가~’ 또는 ‘아카다마 뒤에 00 건물’ 식으로 아카다마를 언급했다. 천재 화가 이중섭의 통영 시절 이야기에도 아카다마는 빠지질 않는다.
 
천명주 전 기선권현망수협장은 “1930~40년대만 당시 통영은 시내라도 밤이 되면 컴컴했거든. 그런데, 아카다마는 네온사인 간판을 했거든. 밤이 되면 아카다마는 더욱 빛이 나는 거지.

그걸 딱히 카페라고 하기도 뭐하고 요정이라도 하기도 좀 그래. 요즘으로 치면 '고급사교클럽' 정도 될끼라. 술집은 술집인데, 여자들 옷차림이 기모노가 아니라 아주 화려했다“고 회고했다.
 
김세윤 전 통영문화원장도 “국민은행 옆에 아카다마라고 고급 술질이 있었지. 2층 양옥집인데, 내부에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고급옷을 입은 여급들이 종사하는 거라. 통영에서 제법 문화를 안다는 사람들, 세련됐던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라고 회상했다.
 
천재 화가 이중섭의 통영 시절을 이야기할 때도 “오늘날 국민은행 부근에 적옥(赤玉 아카다마)이라는 고급 요정이 있었고 그 뒤에는 하청여관이 있었는데 이중섭이 즐겨 갔던 곳이라 전합니다”라고 할 만큼, 당시 통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던 유명한 곳이었다.
 
 

->일제시대 아카다마회관이 있었던 항남동 국민은행 해안 상점가.  
 
일제시대 통영은 풍부한 수산물을 바탕으로, 중계 무역을 통해 얻은 재력과 부산-여수 뱃길의 중간기착지로 일본의 신문물들이 빠르게 유입되는 도시였다. 아카다마가 위치한 요시노마찌(길야정, 吉野町)는 당시 여객선 부두와 차부가 있어, 주변에 유흥과 숙박업소가 발달하였다.
 
하지만 일제시대 최고의 명성을 누린 아카다마는 광복과 6.25 전쟁 시기에 통영 대화재로 인해 항남동 일대가 불타면서 그 실체는 영원히 사라진 채, 원로들의 증언 속에서만 남아있었다.
 
 

1934년 발간된 신편 부산대관은 당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다방면에 걸친 방대한 분량의 사진과 내용을 수록한 책이다. 이를 부산개항 50주년 기념의 성격을 갖는 출판물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편역자 김승 양미숙, 사진 김한근)에서 2010년 ‘사진을 보는 부산변천사’ 신편 부산대관으로 재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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