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생활 속에서

문화원 답사(부여,군산) 역사의 시간 속을 여행

청풍헌 2017. 5. 28. 21:20

문화원 이사님들의 유적지 답사 계획이 잡혔다. 2일간 연차를 내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백제 문화권역과 군산 근대거리 탐방이다. 국보 9호인 정림사지 5층 석탑에 왔다. 이 탑은 미륵사지 서탑과 함께 유일하게 남은 백제탑이다. 목탑의 형식을 갖춘 석탑으로 아름다운 조화미를 자랑하고 있으며 탑신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 이라는 글귀를 남겨 한 때 "평제탑" 이라 하기도 했다. 지붕 처마가 약간 위로 들린 날아갈듯 한 모습이며 탑신의 몸돌은 엇 쌓기로 되어 있었다. 국보로 지정 될 만큼 휼륭한 탑만 덩그러이 남아 외롭게 서 있다. 웅장했던 사찰은 사라지고 발굴 흔적만 남았다. 이 석탑은 한 번도 해체 발굴을 하지 않았다. 심 초석에는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사리 장엄구나 탑이나 사찰 건립 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나올 것이다. 탑의 뒤쪽에는 금당지가 있으며 좌우로는 회랑과 건물지가 발굴 되었다. 뒤쪽에 있는 강당 안에는 대형 미륵상이 불안전한 모습으로 모셔져 있다. 팔은 조각하다만 것 같았으며 좌대위의 몸통은 한쪽이 떨어져 있고 좌대는 연꽃 문양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미완성된 미륵부처 모습이다. 박물관에서 확인한 결과 일제 강점기 허허벌판에 정림사지 석탑과 그 뒤쪽에 미륵불이 우뚝 서 있는 사진이 있었다. 발굴현장에서 기와명문이 발굴 되었는데 정림사지라는 명문에 의해 여 절이 명문사지로 밝혀졌다. 부여 박물관이 지척이지만 점심 후 궁남 지를 봐야 하므로 눈으로만 확인하고 연잎 밥을 맛있게 먹었다. 궁남 지는 백제의 궁에 딸린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연못으로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상징했다. 주위에는 연꽃을 심어 한 두개체가 꽃을 올리고 있었다. 못 둘레에는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백제 정원의 백미라 한다


낙화암을 보기 위하여 부소산으로 올랐다.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이며 전시에는 사비도성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백제 왕실의 후원 역할을 할 만큼 다양한 유적과 각종 정자가 복원되어 있었다. 이곳에 백제가 멸망하자 궁녀들과 백제의 아녀자들이 백마강으로 몸을 던진 낙화암이 있는 곳이다. 산책로를 잘 다듬어 놓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굽이굽이 돌아 낙화암에 왔다. 삼천궁녀를 만나기 위하여 왔다지만 왠지 슬픈 감정이 들었다. 나라가 망하면 백성도 망한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했다. 슬픈 백제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정자 아래 전망대까지 가서 아래를 살폈다. 꽃 같은 나이의 궁녀들이 몸을 던진 곳이라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선창이 있는 아래쪽에는 고란사가 있다. 고란사는 바위에 고란초가 자라 이곳을 고란사라 했으며 절 뒤쪽의 샘의 물은 생명수라 한다. 낙화암은 백마강에서 바라봐야 실감나게 볼 수 있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은 황포돛배로 백마강을 유유히 휘돌아 낙화암을 보여 주었다. 위에서 보는 낙화암과 아래에서 보는 낙화암은 많은 차이가 난다. 이 아름다운 강물에 백제의 영혼이 떠돌고 있다. 바위가 되었을까? 수초가 되었을까? 물고기가 되었을까? 유람선에서 내려 군산으로 행했다


군산의 초입에 최호 장군의 유지에 들렀다. 최호 장군은 임란 시 선조의 몽진을 호송한 원종공신이며 충청수사로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장군이다. 수 일 전에 추모제를 했다 하니 기일과 다른 것 같아 의아하다. 어떤 기준으로 제향을 하는지? 난중일기에도 수차례 등장 하는 수군 장수이다. 철천량 해전에 사망했다면 원균처럼 시신도 못 찾았을 것이다. 사당은 문이 잠겨 볼 수 없어 창호 구멍으로 카메라를 줌인 하여 사진을 찍었다. 저녁은 서해의 낙조와 함께 했다. 비응항에서 숙박 했으며 광란의 밤을 보내고 아침에는 비실거렸다


오늘은 군산 근대거리를 답사 할 것이다. 박물관 가는 길에 이성당 빵집에 들렀다.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군산에는 이성당이 있다. 군산 시민이 사랑한 지역의 빵집이다. 오후에는 줄을 길게 선다는 말에 아침 일찍 찾아 갔는데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야채빵, 단팥빵과 찹쌀떡을 담아 계산했다. 먹을걸. 보면 부모님 생각이 먼저나 빵을 샀다. 통영에도 일제 강점기 부터 내려오는 빵집이 있었을 건데 겨우 오미사 꿀빵 만 전통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넓은 도로를 지나 박물관에 들어섰다. 학생과 일반인들이 많이 찾았다. 해설사가 연극배우처럼 실감나게 해설을 했다. 수탈의 현장 군산의 옛 모습과 남겨진 근대 건축물로 역사를 이야기 하고 보여주고 참여 하도록 잘 활용 하고 있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시에서 매입하여 리모델링하여 보존하고 있는 것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통영은 뭣하고 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수탈을 위하여 부두까지 철로를 놓고 도로를 넓히고 쌀과 면화를 수탈해 갔다. 서해안 조수 간만의 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부잔교를 설치하여 수시로 배가 운행되도록 했다


군산 세관 건물은 근대 건축물로는 거의 국보급이라 한다. 한국은행 본점과 서울역사와 함께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이라 한다. 일본 18은행은 18번째 허가 난 은행이란 뜻이며 근대 미술관으로 활용하며 금고동에는 안중근 의사의 여순 감옥을 재현해 놓았다. 또한 조선은행지점은 광복 후 나이트클럽으로 사용하다 조폭들의 싸움으로 큰 불이나 시에서 인수하여 군산 근대 건축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바닥에 모니터를 설치하여 2층에서 군산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영상을 틀어 주었다. 히로쓰 가옥은 군산에서 부를 축척한 일본인 히로쓰가 지은 주택으로 신흥동이 유지들이 살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개인 소유로 많은 영화의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정원과 지붕이 당시의 모습대로 남아있다. 유명하다는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채만식 문학관을 거쳐 귀가 했다


역사의 시간 속을 여행한 소감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영에도 적용할 부분이 많았다. 다른 시도에서 부러워하는 통제영이라는 좋은 컨텐츠가 있다. 토목공사만 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컨텐츠를 잘 살려서 통영시민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문학과 예술의 DNA가 흐르는 꿀의 땅 통영이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나는 행복하다. 주위에는 좋은 선생님이 계시고 동료가 있고 좋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보석을 잘 꿰어야할 것이다. 미래는 밝다. 역사와 전통을 빛나는 통영문화원의 선진지 탐방은 굳었던 머리를 일깨워 주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영감을 준다.

 

2017.5.18~19 부여, 군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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