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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일보 스크랩)“통영 원문 성곽 보존 가치 없으니 아파트 그냥 지어라”?

청풍헌 2017. 6. 10. 07:20
“통영 원문 성곽 보존 가치 없으니 아파트 그냥 지어라”?자문위원 ‘개인 사업 지장받으면 곤란’ 사업자 두둔 발언에 논란 예상
통영 애조원지구 도시개발사업 유적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열려
1872년 통영 고지도에 표기된 원문성과 북신만과 죽림만을 가로지르고 있는 성곽.

“아파트 재개발 30년 뒤에 가능하니 통영시 돈 많이 벌어 복원할 수 있으면 하고 지금은 땅 속에 묻어뒀으면 좋겠다”

통영 원문성 성곽이 통영 애조원지구 아파트 개발 공사 중 발견돼 아파트 시행사인 (주)무전도시개발에서 조사 의뢰한 학술자문회의에서 나온 한 자문위원의 발언이다.

지난 5일 통영 애조원지구 도시개발사업 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가 애조원지구 개발 부지내 사무소에서 열렸다.

이날 자문회의에는 (주)무전도시개발 관계자와 조사기관 관계자, 자문위원 2명과 통영시청 도시과, 문화예술과 담당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유적 발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통영의 진입로이자 통제영과 역사를 같이한 원문성(轅門城)의 성곽 유적을 보전하기 위해 애조원 도시개발 계획이 전면 재검토 돼야 한다는 지역내 목소리가 높지만 이날 자문회의에서는 보존할 가치가 없다는 의견이 제시돼 논란이 예상된다.

이날 참석한 자문위원 중 A교수는 “원문성이 방어 기능이 있나 의구심이 든다. 혜자도 발견되지 않았고, 누구를 방어하려는 것인지 정확한 목적을 파악하지 못하겠다”며 “고문헌에 원문성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성이 있는 줄 아는데 성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곳에 돌담이 쌓여 있는 수준”이라고 깎아 내렸다.

이어 “조선시대 말 경, 말이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차단할 목적으로 만든 목장성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문헌에 나와있지 않았다면 축조수법, 형태, 위치가 목장성으로 알맞지 전투를 방어하기 위한 성으로서는 많이 약하다”고 평했다.

또한 “원문의 원(轅)자는 바리케이트라는 뜻인데 왜 그런 이름인지(모르겠다). 처음에는 멀리 있는 성문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전혀 엉뚱한 이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며 “조선시대의 계획된 성곽 축조방식을 이용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만들었어야 하는 급조한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원문성 유적이 조금이나마 발견돼 다행스럽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같은 유구로 인해 개인 사업에 지장을 받으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공사구역에 들어가지 않는 부분은 지하에 잔존 시키고, 공사구역에 들어가는 부분은 아파트 재개발이 30년 후에 가능하니 통영시가 돈 많이 벌어 복원을 해야겠다면 기록을 통해서 복원할 수 있도록 하고 문화재 관련부서와 개발자 간 상의에 의해 사업도 하면서 땅 속에 묻어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B 자문위원은 “성 축조에 정성이 들어가 있지 않고, 일반적인 성의 기능이 불가능했다”며 “보존할 수 있으면 보존하면 좋겠지만 지역의 아파트 건립에 대한 입장들을 고려해 볼때 조정을 통해 성벽을 최대한 남길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날 자문회의에 참석한 김미옥 통영시의원은 “통영시민으로써 원문성이 가진 의미는 대단히 큰데 자문위원들의 발언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다”며 “고고학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자연 지리학적, 문헌적 관점을 도외시한 발언으로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 통영 애조원지구 도시개발사업 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가 애조원지구 개발 부지내 사무소에서 열렸다. 사진은 (재)국보학술문화연구원이 조사 자료 중 조사구역 항공사진.

통제영에 관한 연구를 해온 김상환 전 경상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원문성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지녔던 군문으로서의 위상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며 “2층 문루로 이루어진 통제영의 위상에 걸맞는 통제영의 관문이자, 통제영의 외성(外城) 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성곽은 주로 평지의 읍성과 전란이나 위기 시 방어하는 산성체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해안가에 마련된 해군의 요충지인 통제영은 그 특성상 산성체제를 갖추기는 힘들었고, 이중 삼중의 읍성체제도 지형상 도저히 불가능한 형상이었다. 다만, 우리 성곽체제가 가지는 하나의 특징, 즉 자연적,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최대한 효율적인 지역 방어시스템을 구축해 온 전통이 있었던 바, 좁은 원문을 틀어막음으로써 적어도 내륙에서 공격해 오는 적들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원문(轅門)은 완벽하고 효율적인 외성(外城)이었다. 이러한 독특한 성곽구조는 통영이 가지는 독특한 지형을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었고,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문화적 자산이었다”고 자문위원과 상반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SNS 상에 다수의 원문에 관한 역사 기록과 문헌들을 소개하며 “지금 통영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토목공사와 건축으로 파괴되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들은 최소한 원상을 유지하기 힘들어 진다는 슬픈 예감을 지울 수가 없고, 이 시대를 사는 ‘통영인’으로써 역사와 후세에 부끄러울 수 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 C씨는 “자문위원이 고고학계 대가라는 학자라고 들었는데 학자의 양심을 버린 발언 아니냐”며 “고고학자라면 작은 유물이나 유구도 귀중히 여기고 보존에 중점을 둬야 할 만도 한데 30년 뒤 재개발 할때 기록에 의해 복원하라니 자문위원으로의 자격이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원문성 유구 조사지역은 면적 7000㎡으로 길이 120m, 너비 90m이다.

시민 D씨는 “통영 시민 중에 고문헌이나 고고학을 연구하지 않더라도 통영에 대한 애정만 있으면 성곽의 중요성을 아는데 학자라는 사람이 원문성이 목장성 정도 수준 밖에 안된다고 궤변을 했다는 자체가 사업자를 비호하기 위한 급조된 느낌이 든다”고 비꼬았다.

시민 E씨는 “원문성 유적이 예상되는 지역에 아파트 개발 허가가 날 때부터 특혜 의혹과 통영시 행정의 무능에 시민들의 불만이 제기됐었는데 자문위원과 용역 연구원들의 이 같은 조사결과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통영시민으로써 분통이 터진다”며 “개발 허가 과정 등 사업전반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 봐야 한다”고 성토했다.

시민 F씨는 “문화재는 개인의 이익 보전 이전에 지역 및 국민의 공감대 없이는 훼손하면 안된다. 사업자 땅이기 전에 통영 시민의 문화유산이니 발굴과 보존에 사업자 또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통영시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문화재청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의에서 건설 사업자 대표는 “지금 사업이 중단되면 몇 십억원이 넘는 손해를 보는데다 한센인 보상이 20여억원이 남아 있는 상태라 그 분들도 손해를 본다”며 공사 진행에 차질이 생기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애조원 개발지구는 광도면 죽림리 703번지 일원에 총 632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019년까지 1269세대, 연립주택 등 236세대 규모의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통영시와 (주)무전도시개발은 경남발전연구원에서 발간한 ‘역사유적분포지도(통영시)’에서  원문성의 위치가 현재 사업 대상지와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아파트 개발 사업을 수년째 추진해 와 논란이 있어 왔다.

원문성 유구 조사지역은 면적 7000㎡으로 길이 120m, 너비 90m이다.

한편, 이날 자문회의에 참석하려고 했던 지역 기자들과 시의원등이 출입을 제지 받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체성외벽 축조 수법 중 기단석 발굴 사진.

류혜영 기자  hannamilb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