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향토사

[스크랩] 2017년도 12월호 인물탐구 작곡가 정윤주

청풍헌 2017. 12. 9. 23:18

인물탐구 ∥ 작곡가 정윤주
어려운 시기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고집하고 발전시킨 작곡가 정윤주


작곡가 故 정윤주(1918~1997)는 1918년 9월 28일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출생했다. 한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그는 통영에서 보통학교를 다녔고, 당시 동창으로는 작곡가 윤이상이 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울 경성전기학교 토목과에 진학하였고, 이 시기에 조선일보사 주최로 개최된 전국음악콩쿠르 음악회에서 우연히 듣게 된 슈베르트의 가곡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후 김기영씨에게 성악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937년 경성전기학교 토목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정윤주는 경상남도 도청 토목과에 취직하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당시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았고, 무성영화를 위한 밴드에 종사하는 일본사람에게 성악레슨을 받았다. 그는 결혼 후, 한강수력발전회사 설계과로 전직하여 서울생활을 시작했고, 이승학 선생에게 발성법과 코뤼붕겐을 배우게 되었으며 1938년 문하생 발표회에서 4중창 베이스 파트를 맡아 부민관 무대에 서기도 했다.
성악에 열중했던 정윤주는 작곡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당시 이화여전 음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임동혁 선생의 문하생이 되어 작곡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새로 나온 레코드를 감상하면서 현대음악에 대한 시각을 넓히기도 하였다. 정윤주는 모교인 전기학교의 교직원으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그는 임동혁 선생이 소장한 현대음악 악보를 부러워하면서, 스코어를 빌려 직접 사보하기도 하였고 음악 서적과 악보, 음반을 많이 구입하기도 했는데 특히 스트라빈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고향인 통영으로 돌아와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하였고 1945년부터는 통영중학교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음악다방에 드나들며 쇤베르크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을 접하였다. 1952년 「까치의 죽음」 전주곡을 완성한 정윤주는 육군교향악단을 찾아가 연주를 요청하여 5월 길버트의 지휘로 부산 광복동 부산극장에서 초연됐다. 이 음악회를 계기로 정윤주는 1953년부터 주한 미국문화원의 리버티 프로덕션의 음악담당직을 맡게 되어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1958년에는 문화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음악을 담당해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면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길이 시작됐다. 이후 정윤주는 1960-70년대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전념하게 된다. 영화음악 작곡에 매진하는 가운데에도 정윤주는 항상 순수 예술음악 분야, 특히 현대음악 경향에 관심을 가지면서 교성곡「해탈」,교향시「매사니」등으로 그는 제4회 한국작곡상, 제5회 한국작곡상을 수상하였고 1979-93년 한국작곡가협회에서 사무국장, 상임이사, 회장, 명예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일시: 2017년 11월 18일 오전 11시
장소: 선궁
진행: 이용일(한국교육협회 명예회장)
패널: 김형주(한국원로음악가협회 회장)
      이상만(음악평론가, 국제델픽위원회 명예위원)
      정대은(아드님, 약사)

 

 

 

 

 


출처 : 음악춘추 기자들의 이야기
글쓴이 : 음악춘추 기자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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