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책 이야기

경상도함안군총쇄록(慶尙道咸安郡叢瑣錄)

청풍헌 2018. 1. 14. 21:03

경상도함안군총쇄록(慶尙道咸安郡叢瑣錄)

  

통영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오횡묵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횡묵은 그의 함안 총쇄록에 통제영을 다녀오면서 기록한 자세한 내용이 있다. 통영문화지 제7호에 부분 발췌하여 실려 있다. 통제영의 복원에 기초가 된 기록이다. 그 총쇄록을 구하여 정독을 했다.

  

채원 오횡묵은 자인현감에서 함안으로 부임한다. 부패한 군으로 소문난 함안에 취임하여 예의 기록 정신을 발휘하여 취임부터 동헌의 위치와 제언 주련까지 꼼꼼히 기록 하였다. 함안 군지를 열람하고 일일이 기록 했으며 이속과 관노, 죄수, 관비의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했다. 군정을 감사하니 체납된 세금과 횡령한 공금이 수십만 냥이며 향반과 이전의 짓이다. 즉 향반(鄕班)과 이속(吏屬)이 결탁하여 농간을 부리고 남북 당으로 분열하여 군정을 마비 시켰다. 서로 불신하여 송사가 산더미처럼 쌓였으며 패거리를 지어 다니며 질서를 어지럽혔다.

  

이런 폐정을 시정하기 위하여 구휼을 공평하게 하고 불효, 불화하는 자와 포흠(탈세), 착취, 도박, 잡기 등 폐단 36가지를 지적하여 위반하는 자를 적발하여 보고하도록 조치하였다. 또 세금의 기초가 되는 호구, 전답, 가옥, 우마 등을 정확히 파악하여 세금을 포탈하는 악습을 막았다.

  

함안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의 유풍이 남아있는 고장으로 교남(嶠南 영남)의 추로(鄒魯 맹자, 공자의 고향)라 했는데 습속이 무너지고 당론을 세워 서로 다투는 폐단이 생겼다.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사회정화의 기본이 됨을 전임지인 자인 현에서 실증했다. 문장과 학문이 있는 자를 천거하여 훈장으로 추대하고 교육하여 시험을 보아 군수의 봉급으로 시상을 하였다. 아름다운 정자에서 시회를 가지고 그 결과를 책으로 엮어 발간하였다.

   

농사는 백성들이 먹거리를 만드는 하늘같은 존재이므로 농사를 잘 짓도록 독려했다. 아침 일찍 들판에 나아가 격려하고 독려 했으며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을 구분하여 상벌을 내리고 가뭄에는 소찬을 먹고 형벌을 중지하고 기우제를 지냈다. 장병들의 무예를 연마시켜 시상을 했다. 살인사건을 처리함에 신중을 기했으며 성추행 모함사건을 명쾌하게 판결한 기록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오횡묵은 대궐의 공상소(公桑所 뽕나무 농장)의 감동낭관(監董郎官 감독관)을 하면서 임금님과 자주 만났으며 그 내용도 충실하게 기록 하였다. 1889724일자 일기에는 대궐에서 전기 불을 켜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시로 읊었다. “남산의 봉화 꺼지고 저녁별이 나오면 / 대궐도 침침하고 물시계도 잠잔다. 홀연히 한꺼번에 해가 떠오른 듯 / 태우지 않아도 일만 촛불처럼 온통 밝아지네. 고운 별 같은 큰 전기 불 정신을 빼앗는데 / 돌아보면 구리 기둥 아래에선 물이 끊네. 한 줄기에서 일만 가닥 거미줄처럼 뻗어나고 / 유리병은 가닥마다 매달려 있네. 긴 골목도 밝아지니 두께비도 달아나는데 / 안타까운 것은 하룻밤에 비용이 만 전()이라. 오호라 전에 만일 재변이 없었다면 / 이런 일이 어찌하여 앞에 있게 되었을꼬?

  

아들 학선(學善)이 욕지 개척의 일로 통제영에 파견되어 있는데 그 일과 병영과 통영에 인사차 오고가며 보고 들은 바를 기록 하였다. 특히 통제사의 부임하는 과정은 현재 통제사 행렬의 기초가 되었다. 원문안의 오횡묵 비도 자세히 기록하여 위치를 정확히 추정할 수 있다. 만인산(萬人傘 선정을 베푼 원님에게 주는 우산 모양의 기념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