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99회 통영별로1

청풍헌 2018. 3. 7. 07:15

통영별로1(통영-고성)

통영별로는 서울에서 통제영까지 오가는 공식적인 도로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역로가 조선 초기를 거치면서 수정되고 각 병영과 수영을 연결하는 중요한 군사도로로 발전했다. 역은 조정에서 운영하는 공식적인 기관이다. 역의 기능은 중앙이나 지방 관리들의 이동 중간 기착지이며 숙식을 제공하기도 하며 범죄인 체포 및 수사기능도 있었다.

여암 신경준이 지은 도로고(1770)에는 조선6대로가 있었다. 의주까지의 경성서북저의주로제일(京城西北抵義州路第一), 경흥까지 경성동북저경흥로제이(京城東北抵慶興路第二), 평해까지 경성동저평해로제삼(京城東抵平海路第三), 동래까지 경성동남저동래로제사(京城東南抵東萊路第四) 해남, 제주까지 경성서남저제주로제오(京城西南抵濟州路第五), 강화까지 경성서저강화로제육(京城西抵江華路第六)이다. 100여년 후 동여기락, 정리고, 대동여지도(1884)에는 10대로 늘어났다. 태백산(太白山) 사고(史庫)까지 봉화로, 제주로의 지선인 삼례에서 분기되어 통영까지 통영별로와 소사 점에서 분기하여 충청수영까지 충청수영로, 수원화성까지 수원로가 추가 되었다.


통영별로는 임진왜란 이후 통제영이 생긴 후 생긴 공식적인 도로다. 이 길로 공식적인 문서와 파발, 통제사가 부임과 이임을 했던 길이다. 통제영의 정문은 남문이다. 공식적인 진출입로는 남문이었으나 꼭 지키지는 않았다고 한다통영별로구간은 많이 걸었던 길이다그러나 한 번에 완주했던 적은 한번밖에 없었다. 24km를 단숨에 걷는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감이 있다그래도 어쩌랴공지를 하고 신청을 받아 힘차게 시작했다

세병관 망일루 앞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출발했다. 운주당 앞 골목으로 이동하는데 영리청이 사라졌다. 영리청 이었던 포교당이 말구리로 옮겨가고 복원을 할 것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철거했다. 초석만 남긴 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북문을 지나 무전동으로 내려섰다. 지금 차가 지나는 이곳이 과거 갯벌이다

매립지를 가로질러 바위 절벽이 있는 곳에서 통제사 비석이 출토되었던 옛길을 따라 원문으로 올라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원문성벽은 말없이 천막을 뒤집어 쓰고 중장비 소리에 묻혔다. 원문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은 지금의 사태를 꿈엔 들 상상이나 했을까?

원문고개를 넘어 오횡묵 비에 왔다. 역사적인 기록이나 위치가 중요하다만 그래도 서 있는 자체를 기뻐해야 할 지, 파손된 흔적을 보고 슬프 해야 할 지 만감이 교차했다

향교 앞 고속도로 아래는 인도를 만들었다. 도로면 녹지 공간 사이로 인도를 내어 제법 걸을 만 했다. E마트에서 동료들과 합류하여 본격적인 걸음을 시작했다


노산의 구허 역은 춘원 역에서 옮겨 왔다고 하며 난중일기에도 수차례 나온다. 구허역이 제대로 고증되어 조명되었으면 한다. 광도천변에는 면에서 수국 축제를 위하여 수국이 심겨져 있으며 점적관수를 위하여 시설을 했다. 가뭄에 물기를 머금고 싹을 틔우기 위하여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공건수 공덕비는 시멘트를 했으며 조경 통제사 매치비가 있었던 곳은 상석만 덩그러이 남아있다. 수의도사 조석여 휼민비 앞에는 안내판이 섰다. 향토사 수업에 동반한 시청 직원이 통제사 길이란 안내판을 세웠다. 한퇴정에서 땀을 식히고 간식을 먹고 다시 힘차게 출발했다. 구현겸비와 몰자비(구명겸) 비를 지나 한퇴 정상에 올랐다

고갯마루에는 수년전 도산면장이 옛길을 복원 했는데 걷지 않아 길이 죽었다. 암 신 경준은 길에는 주인이 없다. 길을 걷는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했다. 길은 걷지 않으면 사라진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길들이 사라졌다. 수많은 예산을 들여 만들어 놓으면 뭐하냐? 희미한 옛길을 더듬어 가파른 언덕을 내려갔다. 오횡묵은 이 길을 오르면서 마치 하늘은 오르는 것 같아 가마에서 내려서 걸어서 올랐다고 했다. 광덕사를 지나 연안김씨 불망비를 지나 원동으로 왔다


원동 숲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이동했다

진태재는 매우 길다는 뜻이며 여우에게 홀릴 만큼 길고 험한 길이라 한다. 수차례 이 길을 걸었지만 올 때 마다 길을 잃어 헤매었다. 하지만 오늘은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갔다. 고갯마루에 있는 성황당 돌무지까지 확인하고 재를 넘었다

월평리 들은 논이 없고 대부분 밭으로 경작하고 시금치가 많았다. 구지뽕 막걸리 공장에서 막걸리를 구해 마셨다. 이곳에만 있는 참새 방앗간이다붉은 색깔이 예쁜 구지뽕 막걸리는 이곳에만 있는 특화된 막걸리다

월평리 들녘을 가로질러 남산골 입구의 큰 엄나무가 지키는 집 앞에서 나무의 의미와 약효를 이야기 했다. 남산 이래를 지나 동문 터로 들어섰다. 송학리 봉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마지막 파이팅을 외치고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통영별로1 구간은 통제영에서 출발하여 두 개의 큰 재(한퇴재, 진태재)를 넘으며 고성현 동문으로 들어온다. 고성읍성은 대부분 홰철되고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다. 고성읍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성안에는 4개의 우물과 1개의 연못이 있다고 한다. 창거리정(倉巨里井), 은성정(隱城井),옥천정(玉泉井), 어시정(魚市井)이 있다. 다행히 한명도 낙오자 없이 완보를 했다. 함께하니 오래가고 멀리 갈 것이다.






















2018.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