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향토사

착량묘

청풍헌 2018. 5. 23. 23:24


 



본래의 착량묘는 이순신 장군이 1598년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다음해인 1599년 수군과 통영 사람들이 착량 언덕에 초가집을 짓고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이순신 장군 사당(草廟)이었습니다최초의 사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처음에는 草廟처럼 불렸고 특별한 이름이 없었습니다그 뒤에 이순신 장군의 10세손으로 제198대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인 이규석(李奎奭, 1835~?)이 1877(고종14) 3통제사로 부임하면서 초묘를 착량묘로 중수했습니다.

 

이충무공전서》 11, <부록>에는 착량묘를 草廟로 칭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草廟. “거제부(巨濟府)의 착량(鑿梁)에 있다왜구가 패배해 물러간 뒤에 해상(海上)의 군사와 백성이 공의 충절에 감동해 초가집을 짓고공의 상()을 안치하고 제사를 지냈다장삿배가 가고 올 때 반드시 제사를 지냈다.(草廟 在巨濟府之鑿梁 倭寇敗退後 海上軍民 感公忠節 立草屋 妥公像祭之 商船去來必祀)”>

 

이은상의 국역주해 이충무공전서>()(1960, 충무회, 247)에는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草廟거제부의 착량에 있는데 왜적이 물러간 뒤에 해상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공의 충절에 감격하여 초가를 짓고 공의 초상을 모시고 제사 지냈는데 장삿배들이 가고 올 적마다 반드시 제사를 드린다.” “고종14년 1877년 충무공 10세손 이규석이 통제사로 와서 이것을 중수하고 착량묘라고 이름 고쳐 부르는 동시에 그 곁에 호상제란 것을 같이 지어 지방 자체 교육.>

 

1894 統營志 祠宇편에는 堂祠영의 서쪽 10리께 굴량교 머리에 있다동당봉동에서 춘추로 향사를 모셨다고 전해오는 초묘가 바로 이것이다정조24(1800 경신)에 충무공전서가 하사되었다윗벽에 있는 다섯 분의 초상은 누군지 알 수 없다.

 

이충무공전서》 속 초묘와 이은상 기록과 달리 근대의 이광수의 기록은 보다 구체적으로 착량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1931년 6월 10일의 동아일보에 실린 이광수가 쓴 <충무공유적순례>(14)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판데목 丘上에는 鑿梁廟라는 가 있으니 옛날 초묘 하던 것입니다앞에 강당이 잇고 에는 충무공의 위패가 잇고 하야 우벽에 사명당을 배향하엿습니다. “鑿梁之上”, 舊有草廟始於濱民感忠武李公節而立者也라고 한 것입니다우수은 것은 묘의 西隣에 관왕묘가 잇는데 거긔는 유비의 화상을 봉안한 것입니다관우를 제사하자니 그의 인 유비까지도 제사한다는 논리입니다.>

 

 

 

서장석 편이충무공전서 속편》․<卷之十五><附錄><祠院錄(後孫 敏復)>에는 다음의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통영군 한산도 읍 사람들이 이충무공 영정을 베껴 모셨고계유년 섬사람들이 새로 당우(堂宇)를 건립했다.> 이 내용 중의 계유년은 1873년 혹은 1933년이나, 1933년으로 보입니다. 1873년이면 통제사 이규석이 부임하기 전이라.

 

통영에서 착량묘를 보는 시각

착량묘는 최초의 민간이 세운 이순신 사당이다공식적인 기록은 여수의 충민사(1601)이지만 민간이 세운 사당으로서 의미가 있다착량묘의 공식적인 기록은 이충무공 전서다이충무공 전서는 정조년 간에 기록된 공식적인 기록이다당시 이충무공 관련 모든 사항을 조사 기록했다착량묘가 이순신의 기신제를 지내는 곳으로 면면히 내려 왔으므로 전서에 기록되었다착량묘는 임란 시 이순신 장군을 도와 일본과 전투를 치른 탁연 장군의 후손이 관리를 했으며 연연히 제향을 하고 있었다한산도 진중에 있을 때부터 지역민들은 장군을 존경하고 흠모했다노량해전에서 장군이 전사하고 전쟁이 끝났으므로 전사소식은 누구보다도 먼저 알려졌다이에 기일이 도래하여 추모를 하려니 마땅한 사당이 없어 이곳에다 초묘를 짓고 기신제를 올리기 시작했다이것이 통제영 시대에도 민간에 의하여 전해오다가 후손인 이규석 통제사에 의하여 확대되고 착량묘로 지어졌다오랫동안 민간에서 이어졌기 때문에 당제와 군신을 모시는 과정에서 여러 변화가 있었다. 1599년에 세운 것이란 돌아가신지 이듬해라는 구전에 의하여 1599년이 나왔으며 실제 기신제를 지냈기 때문에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된 것이다착량묘중수기에도 전서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충렬사는 통제영의 소속이나 착량묘는 민간의 소속으로 내려오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해방 후 충렬사에 귀속시키고 충렬사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2018.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