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키기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小木匠) 전수 조교 김금철

청풍헌 2020. 1. 22. 07:10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小木匠) 전수 조교 김금철

 

1) 소목의 기원

소목이란 대목에 대칭되는 말로 나무로 생활가구를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소목의 기원은 오래 되었다. 인류가 도구를 이용할 때 나무를 이용하기 시작한 때부터이며 우리나라의 목공예품은 대략 2,000년 전으로 올라간다. 철기시대와 삼국시대, 남북국과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서 발전을 하였다.

이러한 소목은 통제영을 세운 후 12공방이 설치되면서 이곳 통영지방에서 발전되어 왔다. 통영지(統營誌)공해 편 소목장 방에는 편수 1명과 공 9명이 엽전 155, 1125되로 운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 소목장의 전승

<통제영 12 공방의 역사>

통영 소목은 통제영 12공방에 의하여 전승되었다. 1592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칠 테니 길을 비켜라.’라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열고 일본군의 서진을 막았으며 4년여를 주둔하면서 각종 물자를 자급자족하였다. 전함을 만들고 집을 짓고 화살을 만들고 소금 구울 솥을 만드는 과정이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전통은 전쟁이 끝난 후 통제영이 통영에 자리 잡으면서 12공방으로 운영되었다. 12공방 중에 소목방이 있어 각종 목공예품과 기물을 생산하였으며 2년마다 교체되는 통제사들이 한양의 고급문물을 전하면서 전국의 장인들이 모여 높은 기량을 쌓아 통영만의 전통을 세워나갔다.

1895년 통제영이 폐영 되고 12공방의 장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살길을 찾아 명맥을 유지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소목장에 지정된 천상원은 일제 강점기 김학철에게 전수 받은 아버지 천철동에게 통영 고유의 소목 기술인 뇌문을 전수 받아 이를 더욱 발전 시켜 제자 김금철에게 전했다.

 

<소목장의 전승 과정 검토>

스승인 천상원을 만난 계기와 언제까지 함께 하셨나요?

 

우리 누~우가 천상원의 메느리가 되어 사돈집에 놀러 갔다. 그때는 소목이 불티나게 팔릴

때라 돈을 잘 벌 것 같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사돈끼리는 안 된다고 하였으나 할매

(천상원 어머니)가 오라고 하여갔다. 할배(천상원 아버지 천철동)는 원래 목수다. 할매는 야채

장사를 했는데 선생이(천상원) 일하다 시장에 엄마한테 놀러 가기도 했다. 명정동에서 일 하

다가 문화동으로 이사를 했다. 선생님께 일만 배워야 하므로 돈 한 푼 안 받고 일했다.

중에 공장을 차려 내 일을 하면서 왔다 갔다 하며 20여 년간 함께했다. 집에서 공장을 차려

집에서도 일하고 선생 집에서도 일했다. () 거리 장을 만들어 큰 농을 싣고 리어카로 배달했다. 선생님은 경대를 내어 문화재가 되었다. 문도 짜고 경대를 출품하여 지정되었다. 우리나

1호로 지정되었다.”

 

3) 소목의 제작과정

소목장이 만드는 가구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목장 김금철이 주로 제작하는 것은 성퇴뇌문의

이층 농이다. ()은 장()과는 달리 아래 위짝이 분리되고 농은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만든

죽기를 말하는데 목조나 버드나무로 만든 것도 농이라 했다. 여러 개를 포개놓고 사용하려 하니 불편하여 만주인(滿洲人)이 농의 앞면에 문을 달았다는 임원경제지의 기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인 1800년대로 보인다.

김금철이 만드는 이층 농은 아자문 상감이 장식된 것으로 통영지역의 특색을 보이고 아자문 상감은 복잡하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공정으로 한 번에 3쌍을 제작하여 사용했다. 재료와 작업시간 능률을 고려하여 만든 최적의 방법이다.

제작공정은 나무 고르기-도면 확인 및 문목 알갱이 제작-호장테 뽑아 만들기-아자문 만들기-아자문 알갱이 만들기-머름칸과 쥐벽칸 만들기-사개 만들기-서랍 만들기-천판. 가락지 만들기-풍혈 및 족대 만들기-조립-칠하기-장석 달기-속문 달고 귀장식 달기-완성의 순이다.

 

4) 통영 소목의 지역적 특성

소목은 일반적인 생활 가구로 다른 지방에도 각각의 특색을 지니며 발전했다. 통영 소목은 통제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필수 불가결하게 발전했으며 특히 통제영 12공방의 한 분야로 소목 방에서 출발한다.

2년마다 교체되는 통제사의 눈썰미가 고급품을 요구했으며 이로 인하여 전국의 장인들이 통제영으로 모여 각각의 솜씨를 발전 시켜 통영 소목의 전통을 만들었다. 12공방이 위치한 통제영이라는 군영에서의 특수 공간에서 여러 장인이 수 대를 내려오면서 기술이 전수되고 발전 되었고 이곳에서 개발되고 전승된 기술이 전국적으로 펴져 나갔다.

통영 소목의 특징은 성퇴뇌문에 있다. 성퇴뇌문은 일명 아자문()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성곽을 표시하는 문양이며 한자로는 성태뇌문(城態雷紋)이 성퇴뇌문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목상감(木象嵌)으로 원래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상감기법을 나무에 적용한 것으로 흑감 나무와 은행나무를 아교로 붙여서 제작하는 특징이 있다.

성태뇌문의 제작과정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은 적정 온도 유지에 있다. 건조과정에서 소목이 사용될 공간의 온도와 같아야 틀어지지 않고 오래 원형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무늬를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여러 형태로 발전되었다.

또한 아교로 붙인 알갱이를 톱으로 정교하게 켜는 것이 기술이다. 성태뇌문과 느티나무 무늬가 좌우 대칭을 이룬 통영 이층장이 특징이다. 이렇게 제작된 통영 소목에 두석장이 만든 장석을 달면 완성된다.

 

통영소목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통영은 나무를 붙이는 것이 특기다. 성태뇌문은 호장선을 뽑아서 수차례 붙이고 켜는 과정을 거친다. 성태뇌문과 톱질을 하여 켜는 것이 특징이다. 톱날은 시계태엽으로 만든다. 탕개질한 아자문을 자르려면 두 시간 걸린다. 12개 만들려면 6시간 걸린다. 중간에 톱을 씰어야 하므로 시간이 더 걸린다. 딴 지방에서는 이렇게 못 만든다. 성태뇌문이 핵심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연기를 만들어 문목에 끼워 넣는다.

 

전라도 화순지방을 중심 발달한 동복 반닫이는 견고하고 튼튼하며 세로 폭이 좁고 키가 높으며 화형 자물쇠를 달고 들쇠와 마름모형 배꼽장을 다는 게 특징이다.

강화 반닫이는 경기도 강화지방에서 생산된 반닫이로 소나무와 두툼한 금속 장식을 하여 정면에서 바라볼 때 비례가 정사각형에 가깝다. 섬세하고 세공기술이 뛰어나 궁궐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박천 반닫이는 평안도 지방에서 만든 것으로 숭숭이 반닫이라 한다. 주로 결 없는 피나무로 만들었으며 금구 장식을 가장 많이 사용한 특징이 있다.

 

5) 소목장의 사회문화적 가치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세 가지 보물'은 선생이 늘 옆에 두고 사용한 국어사전과 손때 묻은 재봉틀, 통영 소목장(小木欌) 등 세 가지라 하며 생전 선생이 각각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나의 생활이요, 나의 문학이요, 나의 예술"이라고 소개할 만큼 통영 소목은 통영사람들의 정서에 예술로 뿌리박혀 있다. 통영을 거쳐 간 유명인들이 대부분 통영 소목장을 장만하여 안방이나 거실에서 두고 감상했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렇듯 통제영 12공방에서 유래한 통영 소목은 우리나라에서 소목장을 최초로 인정받은 만큼 문화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때 서양 농이 유행하여 어려운 실정에 놓이기도 했으나 전통을 꿋꿋하게 지켜오면서 통영 소목을 만들고 있는 장인을 우리는 홀대하지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먹감나무 무늬가 들어간 성태뇌문 이층장은 통영만의 특성을 잘 나타낸 작품이며 두석장이 만든 장석을 달아 완성된 작품은 명품의 반열에 드는 것이다. 통영 예술의 DNA를 품고 있는 소목은 지키고 이어가야 할 가치가 있다.

 

6) 소목장의 현재

소목은 목조가구나 목조기물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통제영 12공방 중 소목 방에서 만든 이층 농은 통영만의 특성을 유지한 채 전승되었다.

소목장이 처음으로 지정된 것은 1975129일 천상원이다. 천상원은 통영지방의 목수로 그의 부친인 천철동에게 전수받아 김금철에게 전해졌으며 김금철 전수 조교는 전승자나 보조자 없이 혼자서 작업을 하고 있다. 1982년 전수 조교로 지정된 이후 개인의 일로 치부하고 행정에서 방치한 느낌이 있다. 제대로 된 관리와 지원이 있었으면 지금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을 것이며 전수생 또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통영에는 무형 문화재가 너무 많아 홀대한 점이 있다.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지원과 전승자 육성방안 등을 강구하여 시행해야 할 시점이다. 전승자 지원방안을 마련하여 통영 소목의 고유한 기술이 전승되기를 바래본다.

 

7) 소목장의 보존 및 활용 방안

통영 소목의 특징인 성태뇌문은 그 기술의 가치와 차후 이용 가치가 높다. 전통은 장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느낄 때 더욱 발전될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전통 소목이 통영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를 홍보하고 알리는 일에 시나 행정, 시민이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소목장도 만들어 팔아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안방에만 거치된 소목이 아닌 밖으로 나와 함께 숨 쉬는 소목이 되어야 한다. 소목의 대중화에 초점을 맞추고 여러 기법을 강구해야 하며 서울에서의 상설 전시관 및 판매장이 필요하다

'문화재 지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영부채  (0) 2020.04.26
2020.4 원문성 상태  (0) 2020.04.10
발해 1300호 장철수 대장 묘소  (0) 2019.01.27
“이 작품을 내 대표작으로 하소”  (0) 2018.10.07
三千鎭權管碑  (0) 201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