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키기

“이 작품을 내 대표작으로 하소”

청풍헌 2018. 10. 7. 16:53



이 작품을 내 대표작으로 하소

 

통영문화원에서 통영을 무대로 한 예술작품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인문학 기행을 하였다. 그 첫 번째 코스가 전혁림 미술관이다. 전혁림은 누구인가? 색채의 마술사 동양의 피카소로 알려진 고향의 위대한 미술가가 아닌가? 내 곁에 미술관이 있어 좋다. 미륵산 등산길에 때때로 방문하여 그림을 감상하곤 했었다. 미술관 안내 데스크에서 화집을 보았다. 이영 미술관에서 발간한 화집인데 400여 페이지나 되는 화려한 그림이 실려 있었다. 도록 뒷장을 살펴 이영 미술관에 연락했다. 이영 미술관은 전혁림 화백의 작품을 기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멀리 있고 어떤 인연이 닿으면 가볼 때가 있을 것이라 생각만 하고 있었다.

 

관장님의 친절한 안내로 전혁림 탄생 100주년 기념화집화시집, 통영 다녀오는 길이라는 책을 주문하여 받았다. 화집을 펼치는 순간 눈을 의심할 만큼 방대한 작품과 색채가 강렬했다. 시화집 또한 볼만 했다. 함께 온 통영 다녀오는 길이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김이환 이영 미술관장님의 사모님인 신영숙 여사님이 전혁림의 만남에서부터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후원하는 과정을 기록해 놓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사실과 예술작품에 빠져드는 과정을 소상히 알 수 있었고 노 작가의 작품이 전개되는 과정과 흐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책이었다. 누가 이토록 고향의 위대한 예술가를 잘 알고 있는 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존경스러웠다. 단숨에 두 번 읽었다.

 

작가는 어느 날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혁림 작품을 통하여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좋아하는 작가와 컬렉터의 관계가 아닌 순수한 예술과의 관계가 형성 된 계기를 본인의 인성과 함께 담담하게 기술했다. 샘터화랑 시대에 만난 전혁림의 과거를 추적하고 현대를 넘나들며 글은 이어져 가고 있었다. 통영시절 문화예술인들과의 교유에서부터 국전의 특선 작 이 거꾸로 전시된 이야기며 이중섭과의 만남과 도자기 그림을 시작한 계기와 과정들, 부산 동삼동 삼호 여인숙 시절의 지난했던 시절들이 세세하게 표현되어있다.

 

전통목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가장 드라마틱하였다. 사실 목기에 그림을 그린 계기를 잘 몰랐다. 그 내용도 그러하거니와 뜻도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좋은 책이란 쉽게 읽혀지며 머리에 남고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오광수의 목기 그림 100점만 받아 놓으라는 말 한마디에 목기 그림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제주 함지박에서 부엌문짝까지 또한 고 목재의 기둥을 가공하여 만든 접시, 소품 등 어떠한 곳에도 붓이 가면 그림이 되고 작품이 되었다. 노화백의 머리에는 추상의 구상이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왔다. 장차 어떤 그림이 될지 아무도 몰랐지만 뭔가 남겨야겠다는 신념으로 집중하며 함께 작업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도 알 수 있었다. 구십 아직은 젊다의 새벽 손님이란 소제목으로 기술된 단락에서 한려수도라는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고 어떻게 청와대에 입성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한려수도가 이영 미술관에 소장된 경위는 아들 전영근의 요청으로 완성하고 보유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내 대표작으로 하소라고 이야기한 새 만다라의 작품은 목기작품의 결정판이다. 함지그릇에서 시작된 목기작품은 과자그릇을 장안의 유명한 목수가 짜면서 100, 200, 300점을 넘기면서 위대한 예술품으로 탄생했다. 과자그릇 하나하나도 작품이지만 그것을 한태 모아 놓으니 광활하고 무한한 세계가 펼쳐졌다. 이 작품은 가만히 바라보면 불교의 교리 같고 부처님을 모신법당의 닫집 같고 작은 문양 하나하나가 경전 같다. 그것은 만다라였다. “끝이 없고 부처의 깨달음을 나타내는 그림이며 경전이다. 그래서 새 만다라라는 이름을 짓고 연이어 붙여서 전시를 하여 거대한 벽면을 채운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루었다. 이 작품은 천재적인 독창성과 보편성을 갖춘 역작이라 평했다.

 

우리와 이 노인은 무슨 인연으로 광대무변한 삼천대천세계의 그 많은 존재들 중에서 이렇게 만났을까? 설명되지 않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 부모처럼, 남편처럼, 자식처럼, 그리고 내고 박생광처럼, 저기 저 전혁림처럼. 이것이 털어버려야 할 집착이라 해도 그가 세상을 다하는 날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혁림과 전혁림의 그림은 우리의 운명이다.

신영숙 통영 다녀오는 길2012. 이영 미술관 P231

 

2018.10.7

'문화재 지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小木匠) 전수 조교 김금철  (0) 2020.01.22
발해 1300호 장철수 대장 묘소  (0) 2019.01.27
三千鎭權管碑  (0) 2018.09.26
새미  (0) 2018.09.09
하동문로변정  (0) 2018.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