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이운룡 장군 묘소

청풍헌 2020. 1. 29. 21:31

식성군 이운룡 장군

이운룡 장군은 제7(1605.09~1607.06)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본관은 재령이며 자는 경헌, 호는 동계이고 거주지는 청도이다. 증조부는 제용 감정, 조부는 부령 부사, 부친은 중직대부 남해 현령을 지냈다. 3대가 모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한 무반 집안이다.

1562년 태어났으나 1563년이 공식 기록이다. (만력12년갑신별시문무방목) 스승 밑에서 학업에 힘을 쏟아 향리의 칭찬이 자자했다. 22(1584, 선조 17)에 무과 별시에 응시하여 병과 85위로 급제하였다. 1587년 선전관, 1589년 옥포만호로 임명되었다.

옥포만호로 3년째 근무 시 임진왜란이 일어나 옥포 해전에 참가하였다. 한산대첩, 등 여러 해전에 선봉에 서서 적을 무찔렀다. 웅천현감과 동래 부사 직을 거친 후 1596년 이순신의 천거로 경상 좌수사에 올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경상 좌수 군을 지휘하였다. 이순신과 원균의 다툼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양쪽 다 신임을 받았다.

이운룡은 1604년 전후의 논공행상에서 선무공신 3등에 책록 되고 식성 군에 봉해졌다. 1605년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및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 되었다. 1608년에는 함경도 남병사로 이후 충청 수사로 거친 후 경술년에 또 탄핵을 받고 체직되어 집으로 돌아와 있다가 종기가 오랫동안 낫지 않아 72일 생을 마치니 49세였다. 이후 병조판서에 추종되고 청도 금호서원과 의령의 기강서원에 제향 되었다.

그의 묘소는 의령군 지정면 오천리 산30-1에 있는데 본래 무덤은 그의 향리인 청도군 매전면 금곡리 버구(버귀)마을 뒤 법이산 아래에 있다가 20년만인 1630년 그의 아들 평택현감 이엄에 의하여 이곳으로 이장했다. 2010617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74호로 관리되고 그의 외손인 밀성손씨 문중이 관리한다. 비문은 식성 군 실기에 기록되어 있다. 택당 이식이 비문을 썼다.

통제사 재직 시 쓴 일기가 거영일기다. 거영일기에 통영충렬사를 건립한 기록이 있다.

 

1606214일 맑음. 이날 관아 동헌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정해정으로 옮겼다. 발포만호 김성옥, 녹도만호 송두남이 숙배, 공사례를 행한 후 여러 장수와 병사를 맡은 문관이 예를 올렸다. 민원 공문서를 결정 처리하였다. 오후 6시에 중군, 충청우후와 충민사 건설할 터 닦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해가 저물어 관아에 들었다.

 

이후 329, 62, 65, 614일에 기록되어 있다









2020년 1월 11일 이배사 신년회 답사

추기: 청도에서 20년 후 재령이씨와는 아무 연고가 없는 의령으로 이장한 이유는 명확한 근거는 없고 구전에 의하면 당시 척출남이 없을 경우 적출녀에게 가계와 재산 일체를 상속 받을 수 있으므로 적출녀인 엄의 장녀 시가의 연고지인 이곳으로 이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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