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현충사, 이순신 묘소 위충암, 게바위를 답사하다

청풍헌 2022. 1. 15. 23:15

현충사 답사기

나의 관심은 통영충렬사의 심원록이다. 이순신을 모신 사당에 심원록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여수 충민사, 남해 충렬사, 정읍 유애사를 둘러보았으며 마지막 남은 곳이 아산 현충사다. 과연 이곳에는 심원록이 남아있을까? 이곳도 1868년 훼철된 곳이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었다. 경상우수사님과 약속되어 함께 현충사를 갔다. 학예사를 만나기 위하여 사무실로 갔다. 마침 우수사님이 아는 학예실장이 계셔 온 목적을 이야기하니 현충사에 심원록이 있는데 담당자가 코로나 밀접 접촉자라 자가 격리 중이라 열람이 불가했다. 심원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소득이다. 혹시 열람을 할 수 있다면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고 나왔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구 현충사를 참배하고 사액 때 내려준 顯忠祠현판을 살폈다. 이어서 현충사 사당에 향을 피우고 참배를 했다. 향합은 자개로 수를 놓았다. 현충사 사당에 오르는 노약자나 장애인 전용 리프트가 있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현재 전국의 사당 어디에도 이런 시설은 없었다.

현충사와 고택은 장인 방진의 땅이다. 그래서 이곳에 충무공의 장인인 방진의 묘소가 있다. 이곳 현충사의 가장 어른은 방진이다. 어른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이 도리이다. 우리는 통상 현충사를 참배하고 아들 이면의 묘소도 참배한 후 이순신 묘소로 이동한다. 사위인 이순신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보살펴준 장인을 우리는 잊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곳을 말없이 선양하고 계신 경상우수사님의 열정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위충암과 게바위의 참배도 경상우수사님의 열정에 의하여 조금씩 알려진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다. 진심이 느껴지는 일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열정이 빛을 발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충무공 묘소로 향했다. 묘소 가는 길을 공사하느라 한창이다. 묘소 입구에는 정조대왕 신도비가 비각 안에 있다. 신도비는 기온 차로 인하여 땀을 흘리고 있었다. 묘소에 올라 재배하고 나의 소원을 빌었다. "나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수년 전 처음 참배를 왔을 때 흰 눈이 펑펑 내려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 곳이다. 그때의 노송나무 밭은 어디인지? 흰 눈이 발목까지 쌓인 묘소에 큰절을 올릴 때의 특별한 감정은 잊을 수 없다. 이곳 묘소도 어머니의 땅이라 하니 아버지 이정 묘소와 희신, 요신, 순신, 우신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의 노재가 열린 위충암으로 갔다. 노량에서 전사 후 고금도로 옮겼다가 금성산에 모셔질 때 이곳 위충암에서 노제를 지낸 곳으로 이후 아산의 선비들이 위충암이라 세기고 기리고 있다.

게바위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최근 새 단장을 하여 쉼터도 만들었으며 안내판도 세웠다. 게바위는 어머니의 시신을 맞이한 곳으로 시신을 안고 통곡하는 장군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하지만 이곳으로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게바위 앞으로 7~8m의 장벽이 생긴다고 하니 앞이 가로막힌 형국이 될 것이다. 지역에서 이곳에 다리를 놓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본 현실은 현재 가림막으로 가려져 매립 중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간에 각자의 몫이며 책임이다. 나는 이순신의 무엇이 끌려 이곳까지 왔나? 나는 무엇을 더 알고자 하는가? 그것을 알아서 무엇에 쓸 것인가?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때 이 사회는 충무공의 정신처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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