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생활 속에서

무엇이 진실 일까요? 조선시대 경상도 고성지역 수군진보와 남촌진(적진포)

청풍헌 2014. 1. 29. 23:22

2011년 통영문화원에서 출간한 통영향토사연구논문집 향토사 논고편

임진란 적진포 해전 연구(김일룡)가 있다.

적진포가 통영 광도면 덕포리 적덕 마을 이라는 학설을 재고하는 논문이다.

즉 적진포는 당동만 이라는 내용의 논고다.

 

김상현 기자의 제의로 고성에서 수군진보와 적진포에 대한 학술대회가 있다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적진포,남촌진? 이런 여러 의문을 품고 고성 박물관에 갔다.

등록을 하고 참고자료를 받아 검토했다.

임진왜란시 옥포대첩과 합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함대는 다시 적진포에서 13척의 왜군을 무찌른 승리의 현장이다.

그 기록은 옥포파왜병장에 기록되어 있으나 적진포가 어딘지 그 지명의 비정에 대한 명확한 고찰이 부족하여 학술대회를 연다고 했다.

 

현재 적진포로 비정되는 지역이 네곳이 유력하다.

1.당동만:고성군 거류면 당동리 구당마을

2.내산리: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전도마을 적포만 일대

3.신용리: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하원부근

4.화당리:고성군 거류면 화당리

이 네곳이 지역마다 적진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조 발제자인  심봉근 박사는 전 동아대학교 총장을 지낸 영남 사학계의 거두다.

통제영 복원 사업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 심박사는 고성이 고향이다.

토론자의 면면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지역문화연구소 관계자이며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한분이 오셨다.

 

학술대회 발제자 순서

조선시대 경상도 고성지역 수군진보와 남촌진

발표 심봉근 전 동아대 총장

조선시대 경상도 고성지역 수군진보와 남촌진에 대한 논평

논평1 심정보 한밭대학교

논평2 이상훈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논평3 최영호 석당 학술원

 

기조 발제자인 심봉근 박사는 지금까지 적진향과 적진포,남촌진에 대하여 각종 문헌자료와 고지도 및 고고학적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해 볼때 적진포 또는 남촌진이 경남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 일대에 위치 했다는 사실은 분명 하다고 했다

먼저 가배량진은 지금의 가오치 선착장에 있는데 이후 옥포로 이진 했다가 성종 22년 다시 축성을 쌓아 권관을 두어 다스렸다고 한다.

이후 폐진되었는데 남촌진의 기록이 광해군 11년(1619) 남쪽 도선촌(도선부곡)의 진을 이설하여 남촌진이라 했다.

즉 가배량성이 이진을 하여 남촌진이 되었다.

 

다음 남촌진과 적진향에 관계다.

전진향積珍鄕은 동쪽 20리에 적진포는 동쪽 30리에 표시된 지도가 대동지지 고성 방면과 영로에 기록되어있다.

적진향은 남촌과 동일하다.향은  고려시대 부곡이다.지금의 면 소재지로 보면 타당하다.

적진포는 남촌포보와 동일하다.다른 기록에는 남촌진=적진포가 동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 대동지지, 1872년 지방지도 고성부지도, 남촌 진지도 등을 참조하면 동쪽 30리에 남촌진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남촌진의 고고학적 자료가 확인된다.화당리의 굴강과 우물, 토성, 권관의 비석등으로 볼때 적진포는 화당리로 비정된다.

그러므로 적진향은 거류산 아래 당동지역 가까이에 있으며 적진포는 화당리 부락이라고 확인된다.

 

논평1은 심총장님과 같은 견해이며 남촌의 성격에 대한 의문이다.

무관 9품의 별장이 근무하는 곳에 이렇게 많은 공해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단 현장 확인결과 석포환이 다수 보이는것은 고고학자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확인했다.

 

논평2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이상훈 실장의 임진왜란의 기록인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의 기록에 의한 고찰이다.

지금으로부터 422년전 1592년 4월 13일 신시(13:00~15:00) 부산 가덕도 응봉봉수대를 관장하는 봉수감고 이등과 연대감고 서건은

부산 앞바다를 새까맣게 뒤덮은 선단을 발견하고 급히 봉화를 올려 왜적의 침입을 알린다.이른바 임진왜란이 시작 되었다.

 

이순신 함대는 당포에서 경상 우수사 원균과 합류하여 1차로 옥포에서 왜선 26척을  분멸하는 전과를 올리고

도망가는 왜 대선 5척을 웅천땅 합포에서 깨트려 불태우고 창원땅 남포에서 진을 치고 밤을 지샜다.

이른 아침 진해땅 고리량에 왜선이 머물고 있다는 기별을 듣고 곧 출전하여 적진포에 이르자 왜 대선과 중선을 합하여 13척이

바다의 어귀에 정박해 있어 모두 무찔렀다.여기서 고리량과 적진포가 어디인가가 문제다.

고리량은 당항만 입구인 시락포 부근이 가장 유력하다.

적진포는 남촌진으로 생각되나 이곳이 적진포 해전지 인지는 알 수 없다.

결론적으로 적진포 해전 장소가 남촌진(화당리)이라고 확정 할 근거는 없다.

 

논평3은 적진포는 고려시대 적전포-->적진포-->남촌,남촌진,남촌포보로 변했다는 견해다.

적진포는 남촌진과 지리적 지형적 조건이 상당부분 일치하여 동일장소로 비정된다.

남촌진은 화당리가 확실시 됨으로 적진포=남촌진=화당리이다.

 

네분의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을 해야 하나 일정이 바빠 생략 한다는 말에 고함소리가 났다.

특히 두분이 흥분을 했는데 그중 한분은 적진포가 신용리 하원 부락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일방적인 발표만 한다고 불만이었다.

다른 한분은 정확히 어디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화당리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학술회의를 주선한 부산 모사찰의 주지이자 시인인  김영종스님은 화당리 출신으로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지역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언급 했으니 활발한 토론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학계에서는 적진포가 남촌진이며 현재의 화당리 일대라는 유리한 학설이다.

문헌적 고고학적으로 가장 근사치가 화당리였다.

 

2014.1.24 고성 박물관에서 백세청풍 김용재

 

 

▲고성 박물관

 

▲학술대회 회의실

 

▲도충홍 고성문화원장의 인사말

 

▲이학렬 고성군수

 

▲기조발표중인 심봉근 전 동아대총장

 

▲pt

 

▲현재 가오치에 있는 가배량성 변화의 기록(가배량성-거제 옥포-석성구축(복귀)-폐진(여지도서)

 

▲적진향과 적진포에 대한 기록

 

▲남촌진에 관한 기록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삼십리

 

▲남촌진

 

▲남촌진지도(뒤의 산이 연화산)

 

▲현 화당리 굴항

 

▲화당리 마을 입구와 별장 선정비

 

▲선정비1

 

▲선정비2

 

▲선정비3

 

▲안내문

 

▲심정보 한밭대 교수의 좌장 및 논평1

 

▲이상훈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실장의 논평2

 

▲최경호 석당 학술원의 논평3

 

▲질의응답이 없다하니 항의중

 

▲이분은 더욱 항의를 했음

 

▲심봉근 박사님과 논쟁중임.(일방적인 발표만 한다는 항의)

 

▲분위기가 험악해져 나가고 있다...

 

▲통영 향토사 열혈 회원들~~~~~~~~~

'개인 > 생활 속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꿩의바람꽃  (0) 2014.03.04
변산바람꽃  (0) 2014.03.03
미륵산에서 만난 꽃무릇  (0) 2013.09.19
전복죽  (0) 2013.07.31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한국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  (0) 2013.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