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2016 이배사 통영지부 3월 발제(이경준)

청풍헌 2016. 3. 9. 22:55

이경준 통제사는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긴 장본인이다. 그 내용은 두룡포 기사비에 잘 나타나 있다. 토끼와 여우가 뛰놀던 한적한 어촌을 조선 수군의 총사령부로 발전 시켰다. 이경준은 선조가 의주로 몽진할 때 곽산군수로 재임시 호송했다. "상이 선천에 도착 했는데 곽산군수 이경준이 호종을 청하니 따랐다." 대부분 지방수령들이 도망을 간 상태에서 제대로된 밥도 못 먹었는데 곽산군수 이경준이 제대로된 밥을 지어 올리니 감격했다는 것은 배고플 때 밥 한 숫갈이 얼마나 고마운것인지 가슴깊이 남아 있었다. 이후 선전관으로, 함경도 절제사, 충청병사를 거쳐 삼도수군 통제사에 수임 되었다. 하지만 수질(배멀미)이 심하고 탈정기복에 반대하는 상소가 지속적으로 올라와 탈상(삼년상을 벗는 것, 24개월만 넘기면 됨)과 동시에 기복 되었다. "이경준의 위인에 대해 그가 선전관으로 있을 적에 내가 본적이 있다. 떠날 때 내가 인견하고 보내겠다." 라고 할 만큼 이경준을 아끼고 사랑했다. 이는 몽진시 따뜻한 밥 한 그릇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두룡포에 통제영을 열고 세병관을 세울적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갑진년(甲辰年, 1604) 통제영을 여기 두룡포로 옮길 때 부하 장수로 하여금 묘를 파서 이장케 했는데, 그 자들이 땅을 파고 함부로 도끼질하여 석곽을 파낼 때 금은보화가 많이 나왔다. 통제사가 이를 알고 정결한 곳을 찾아 이장하도록 명하였으나 당시 군졸들이 그만 풀덤불로 덮어두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통제사의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르기를 네가 처음에는 내 장지를 빼앗더니, 더 무슨 원한이 있기에 또 백골마저 박대하느냐?’고 크게 호통을 치므로 놀래 꿈에서 깨어나 부하를 불러 그 무덤에 관한 일을 다그쳐 물었다. 군관이 그제야 그 사체를 길가에 내버려두었다고 실토하므로 통제사는 즉시 그들을 잡아다가 엄중히 다스리는 한편, (朴斗甲)에게 곽을 새로 짜고 새 옷을 만들어 백골을 다시 수습하여 북쪽 산에 이장토록 명령하기에 축문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엄숙히 이를 시행했다. 이러한 당시의 일을 내가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23일 날 아침에 다시 이수일 통제사를 찾아가 그 모든 사실을 말하니 세월이 오래 되어 나는 자세히 알 수가 없는 일이라며 딴전을 피울 뿐이므로, 하는 수 없이 쓸쓸히 돌아오고 말았기에 우리 형제가 직접 현장에서 보고들은 바를 기록하여 후일 참고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라고 적고 있다. 이는 김여엽, 여욱 형제가 쓴 남행기문에 있다.(김일룡 문화원장님의 향토사 산책). 통제사로 재임할 때 당포 앞바다에 흑색대선이 출몰하여 비상이 걸렸다. 우우후 신여량을 비롯한 첨방부대가 출동하여 적을 괴멸하고 49여명을 사로잡아 한양으로 압송했다. 그 공로를 선조는 당포전양습첩지도를 28명 전원에게 하사했다

'통영 > 이순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 수군재건로 답사 공지  (0) 2016.04.12
부산포 해전을 공부한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0) 2016.03.26
내가 걷는 이유  (0) 2016.02.12
수군 재건로 사전 답사4  (0) 2016.02.10
수군 재건로 사전 답사3  (0) 2016.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