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67회 토요걷기(통영항)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청풍헌 2016. 4. 21. 23:44

문헌에 표현된 통영항


두룡포 기사비 이경준

공께서 장수가 됨에 이르러 개연히 자기의 임무로 삼아서 지형을 보고 헤아려서 두룡으로 진을 옮기니서쪽으로는 악포에 의거하고 동으로는 견내량을 당기고 남으로는 큰 바다와 통하고 북으로는 평평한 뭍으로 연결되었다깊숙하되 구석지지 않고 얕아도 드러나지 않으니수륙의 형세가 참으로 국방(國防)의 요새(要塞)로다. (중략오늘날의 두룡포가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때는 소금 끼 많은 하나의 포구로 여우와 토끼들이 뛰노는 언덕으로 끝났을 것이다몇 천 만 년을 거쳐 오는 사이 몇 천 몇 백의 사람들이 거쳐 갔건만 공의 손에서 비로소 이룰 수 있었다하늘이 이 험난한 곳을 설치하고 때를 기다렸고 또 사람을 기다린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충무공께서 앞에서 적을 이겨 중흥의 공적을 거두고공이 뒤에서 진영을 설치하여 만세의 이로움으로 만들었으니전후 두 이공(李公)이 때를 맞추어 출현했다고 비록 말할 수 있으나유독 공의 자취만 민멸(泯滅)되어 전해짐이 없으니 어쩌면 현명한 자손이 그 집안을 일으킴이 없어서일까두룡의 험난함은 공을 얻어 국방의 요새지가 되었고,(중략)


통영지(統營志) (1894)

통영은 고성현의 남쪽 50리에 위치한다. 만력 32년(1604년 갑진)에 거제 오아포에서 두룡포로 옮겨 세웠다. 두룡포는 본디 거제의 방리 이름이다. 강희 16년(1677 정사)에 고선으로 이속되어 춘원면이라 개칭되었다.


김 약국의 딸들 박경리

통영(統營)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며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이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바닷빛이 고운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오란 유자가 무르익고 타는 듯 붉은 동백이 피는 청명한 기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무렵 통영항구를 점묘(點描)해보면 고성반도에서 한층 허리가 잘리어져 부챗살처럼 퍼진 통영은 복장대 줄기를 타고 뻗은 안뒤산이 시가를 안은 채 고깃배가 무수히 드나드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안뒤산 기슭에는 동헌(東軒)과 세병관(洗兵館) 두 건물이 문무(文武)를 상징하듯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시가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과 동문 남문 중간에 있는 수구문을 합하여 모두 다섯 개의 문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밤배 김용익

뜨끈뜨끈한 김밥 사이소. 뜨끈뜨끈한 저녁 안 묵을 랍니꺼.“ 할머니는 통로에 내려놓은 광주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여러 번 소리쳤다. 주위의 얼굴은 화가 풀리지 않은 채 쳐다볼 뿐이다. 김밥과 꼬챙이에 낀 오징어무침을 구두닦이 애가 큰 눈으로 내려다보다. 무릎을 기운 바지, 가느다란 목, 배가 고픈 모양이다. 큰 물결이 창문을 들이치니 배는 굼실굼실 몸 째로 흔들린다. 이제 두서너 시간이면 고향 산판에 내려 밤에 휩싸인 선창가를 아무도 모르게 나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10년 동안을 낮배로 돌아와서 고향사람의 웃음이 가득 찬 부두를 보기 소원 해건만.

 

구름에 그린다 (유치환 자작시 해설집) 류치환

내가 자라던 집은 바닷가 비알이며 골짝 새로 다닥다닥 초가들이 밀집한 가운데 더욱 어둡고 무거워 보이는 삼도 통제사의 아문들이던 이끼 덮인 옛 청사와 사방의 성문이 남아있는 선창가엔 마포(지금의 마산), 하동 등지로부터 장배들이 수없이 들이닿고 쌀, 소금, 명태 속등의 물주집 창고들이 비좁게 잇달아 서서 언제나 품팔이 지게꾼들이 우글거리는 고을 바닥의 중심지 가까운 한길 가에 시옷자로 붙어 앉은 초라한 초가였다.

귀고(歸故) 류치환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우리 고향의 선창가는 길보다 사람이 많았소/ 양지바른 뒷산 푸른 송백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깃발처럼 다정하고/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가니/ 내가 크던 돌다리와 집들이/ 소리 높이 창가하고 돌아가던/ 저녁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그 길을 찾아가면/ 우리 집은 유약국/ 행이불언 하시는 아버지께선/ 어느듯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니 곁에서/ 나는 끼고온 신간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

 

통영(統 營 )1 / 백석

옛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아직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통영2 백석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은이라는 이 같고

()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통영(統營) / 백석

-남행시초2

통영장 낫대들었다

 

갓 한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함감 끊고 술 한 병 받어들고

화륜선 만저 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

 

열이레 달이 올라서

나루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2016.4.9 통영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