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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안락서원

청풍헌 2022. 2. 25. 16:10

충렬사 안락서원

동래부사 윤훤(尹暄)1605(선조 38) 동래읍성의 남문 안에 임진왜란의 최전선인 부산 동래성에서 순절한 부사 송상현(宋象賢)을 추숭 하기 위하여 송공사(宋公祠)를 설립하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 1622(광해군 14) 선위사 이민구(李敏求)가 사액을 요청하여 1624(인조 2) 충렬사(忠烈祠)라는 사액을 받고 정발도 함께 배향하였다. 1652(효종 3) 당시 동래부사 윤문거가 서원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래산(來山) 아래로 이전하면서 강학 공간을 확보하여 안락서원이라 칭했다. 1736년 충렬사 구 터의 별사를 철폐하고 안락서원에 합사 하였다. 이때 다시 충렬사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로써 충렬사 안락서원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사우와 후학을 가르치는 서원으로 역할을 했다. 조선 후기 서원철폐령에도 임란 충신열사를 모신 곳으로 인정하여 미 훼철 서원 47개 중 하나로 남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지역 유림에 의하여 명맥을 이어왔는데 1978년 충렬사 정화공사 작업 시 서원은 허물어지고 시멘트 공법으로 획일화된 공사를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부산지역의 유일한 사액서원인 충렬사 안락서원에 무형유산은 잘 남아있으나 유형 유산의 훼손으로 유네스코 등재에 탈락했다고 생각된다. 충렬사 안락서원의 향사는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 보존되고 있다.

통영충렬사와 함께 미 훼철 서원으로 지금까지 제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이다. 이곳에도 심원록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충렬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남명손서 회장님께 부탁하여 충렬사를 방문하였는데 부산지회장이신 송현 님의 넓은 인맥으로 충렬사 안락서원 원장님께 연락이 닿아 사무국장님의 협조를 받았다. 충렬사 안락서원에는 참재록(參齋錄)1권부터(1887) 8(2012)까지 8권이 남아있으며 헌관집사록이다. 1808년에 발행된 충렬사지는 번역 작업을 하였고 제향을 영상으로 담은 USB와 번역된 사지를 선물 받았다. 시의 예산으로 다시 사지를 집필하여 인쇄에 들어갔다고 했다.

후학들이 성현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교육하기 위하여 강학 공간을 만들고 성현을 모시고 배향하는 사당을 지어 봄, 가을로 향사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서원 형태이다. 충신열사를 모시기 위하여 사당을 먼저 세우고 춘추 제향을 모시다가 사당 관리 및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학 공간을 만들고 사액을 청하여 사액이 내려지면 서원이 되면서 더욱 위상이 높아진다. 충렬사 안락서원은 후자에 속한 경우이며 서원의 공간이 전부 훼철되었다. 광주광역시의 포충사에는 제봉 고경명을 모신 사우인데 다행히 옛 사당은 그대로 남겨둔 채 근대식으로 사당을 만들었다. 초헌관은 대부분 원장이나 지방의 관리들이 했다고 하며 3월에 나오는 사지(祠誌)에 모두 실릴 계획이라고 했다. 부산은 임진왜란을 최 일선에서 맞은 충절의 고장이다. 충렬사 안락서원은 충신열사의 정신적 가치를 이어받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제향 영상: https://drive.google.com/file/d/1hLEXiotjFyTH7WQhZ06_rq-dYU69SxMa/view?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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