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학교

사림 공론의 장 屛山書院

청풍헌 2022. 6. 8. 14:28

병산서원 답사기

겨울 방학 때 12일 답사를 했다. 돈암서원 소수서원, 도산서원까지 답사를 하고 다음날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로 집으로 왔다. 사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같은 안동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병산서원을 보지 못한 것이 내내 걸려서 12일로 계획했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과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서애 대감은 이순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애 대감이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했으며 위기 때마다 이순신을 도운 대감이다. 안동 하회마을은 익히 알고 있으며 류성룡의 종가도 있고 영국 여왕이 다녀갈 정도로 잘 알려진 전통마을이다.

병산서원은 낙동강을 앞에 두고 경사지에 세워진 서원이다. 서원 입구는 만세루라는 큰 누각이 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서원이든지 입구는 교류 공간으로 누각이 있었다. 기억에 7칸이며 앞뒤가 틔어 있어 열린 공간이었다. 일직선으로 된 누각은 입구를 압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려 우선을 쓰고 경내로 들어섰다. 만세루를 들어오면 좌측에 연못이 있다. 연못은 쉼의 공간이며, 휴식과 사색의 공간이다. 대부분의 연못이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남계서원, 도산서원, 남사 예담촌의 이사제, 구례 운조루 등이 생각난다.

마당을 중심으로 가운데가 강학 공간인 입교당이고 양 옆으로 유생들의 기숙 공간이 있다. 입교당 뒤쪽에는 사당이 있으며 전사청도 별도의 공간에 있었다. 만세루는 사람이 못 올라가게 막았으며 강학 공간은 올라가 여러 방향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입교당의 뒤창에 비치는 배롱나무의 푸른 잎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사진 포인트라 하여 나도 인생 사진 한 장 건졌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여기 있던 각종 서류와 책, 목판 등은 국학진흥원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는 건물만 있으며 향사는 하회마을의 류 씨 문중에서 관장하며 춘추로 제향을 올린다고 한다.

마루에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나? 무엇을 보러 왔나? 누구를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무작정 와서 무얼 얻을 수 있나? 서애 류성룡을 모신 서원에서 유생들이 어떻게 글공부를 했으며 조선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지금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마당의 매화가 열매를 맺어 내리는 비를 맞으며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었다. 서원 공간의 우측에는 긴 집이 있어 밖으로 나와서 찾으니 입구를 알 수 없었다. 고직사 내에 있는 공간인 것 같았다. 고직사 밖에는 달팽이 모양의 통시가 인상적이었다. 경북 청도 지인의 집에는 아직도 문이 없는 화장실이 있다. 뒤꼍으로 가려면 큰기침을 하고 가야 한다..

비가 오는데도 많은 방문객이 병산서원을 찾았다. 가족, 연인, 친구,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모들과 함께 병산서원은 건물 자체가 국보급이었다. 물론 만세루는 보물이다. 나는 어떤 보물이 될 수 있을까?

 

사림 공론의 장 屛山書院

병산서원 역사적 가치

병산서원은 1613년에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성리학 교육 시설이다. 류성룡은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현재 위치로 옮기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유성룡 사후에 문인들과 지역 유림이 풍악서당 안에 그를 추모하는 사당인 존덕사를 세우면서 서원이 되었다. 4년 뒤, 서원 정면에 병풍 모양으로 서 있는 산 이름을 따서 병산서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863(철종 14)에 왕이 '병산서원' '병산서원'이라는 이름을 세긴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 서원이 되었다.

교류와 유식의 공간

서원 정문인 복례문은 극기복례에서 유래했으며 좌측에는 광영지가 있다. 복례문을 지나면 한 단 높은 곳에 서원 건축의 백미인 만대루가 있다. 만대는 당나라 시인 두보가 쓴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은 해 질 녘에 마주 대할만하고”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누마루에 오르면 앞쪽으로는 병산과 낙동강이 만들어낸 풍광을 담을 수 있고, 뒤로는 서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학 공간

서원 앞마당에는 강당인 입교당이 있으며 원장과 임원 집무실 및 유생의 강학 공간이다.. 유생의 기숙사인 동재 동직재와 서재 정허제가 자리한다. 서원의 목판과 고문서, 서책을 보관하던 장판각이 있다.

제향 공간

강당 뒤편 동쪽으로 사당인 존덕사가 있으며 류성룡의 위패를 가운데 모시고 그의 아들 류진의 위패를 옆에 모셨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전에 이순신과 권율 장군을 천거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영의정으로써 전쟁을 극복하였으며,, 퇴직 후 징비록을 집필하시고 충효 정신을 보여줬다. 전사청은 제기를 보관하고 제향을 준비하는 건물이다.

 

병산서원은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이다. 병산서원은 낙동강의 은빛 백사장과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병풍을 둘러친 듯한 병산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할 만큼 빼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누각 건물인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은 병산의 자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면 유생들이 교육을 받은 강당인 입교당에서는 자연과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 자연친화적이고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는 곳으로 우리 민족의 절제된 마음과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민족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선비의 절제된 마음을 담아낸 인공적인 건축물과 하나 되어 펼쳐내는 장엄함은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한옥의 완숙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주사 앞에 달팽이 모양을 한 하늘 열린 통시는 또 다른 볼거리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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