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8회 토요걷기(삼봉산길) 가을 폭우속 부추밭 하우스에서 특별한 기억을 새기다

청풍헌 2013. 9. 16. 22:58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소녀는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소녀는 물 속에서 건져낸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소년을 향하여 “이 바보” 하며 던졌다.

소녀는 갈밭 사잇길로 달아나고 한참 뒤에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꽃 저쪽으로 사라져갔다.

 

소년은 물기가 걷힌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소년은 주머니 속의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토요일 날 개울가에 나타났다.

 

소년과 소녀는 들길을 달리며 허수아비를 흔들기도 하고, 비탈의 칡꽃을 따다 다친 소녀의 무릎에 소년은 송진을 발라주기도 한다.

소년은 코뚜레를 꿰지 않은 송아지를 타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수숫단 속에서 비를 긋고, 소년은 소녀를 업어 물이 불은 개울물을 건네주었다.

그 뒤 며칠 만에 소녀는 핼쑥한 얼굴로 개울가에 나타났다. 그 날 소나기를 맞은 탓으로 앓았다는 것이다.

 

소녀의 분홍 스웨터 앞자락에는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에 묻은 검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대추를 건네주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녀가 내일 이사간다는 날 밤, 소년은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초시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버리구.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소나기                   황순원

 

통영판 소나기다.수숫단이 아닌 부추밭 하우스였다.

가을 폭우가 내리던날 우리는 부추밭 하우스에서 "통영이 좋다"를 힘껏 외쳤다.

 

통영길문화연대 제18회 토요걷기 공지 합니다.

용남면 용의 지맥이 서린 삼봉산을 한바퀴 도는 발걸음으로 9월을 시작 합니다.

일시:2013.9.14(토) 9시 용남면 사무소

코스:임도-음촌-논싯골-대방포-양촌-신리-대안-임도 13km 4h

기타:물,간식,우의(우천대비) 중식은 매식(통영생선구이)

연락처:차미옥010-9248-5746 김용재 017-585-9319

참가자는 전화,문자,카페 댓글로 신청 하세요.

 

오늘은  18명이 발걸음을 같이 하게 되었다.

향토사 모임에서 여러분이 오셨고 스토리텔링 교육생들도 오셨다.

원더렌드 토끼님도 애둘러 아는분이었다.

오늘의 코스와 주의사항을 말씀 드리고 간단한 스트레칭후 힘차게 출발 했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바람이 없어 무척 후덥지근 하다.

그러나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이라 푸른 녹음이 있으며 여름에 피는 여러 야생화가 길가에서 반겼다.

임도로 가는길은 자동차 바퀴 자국에만 풀이 없고 나머지는 풀섶으로 덮여 간밤에 내린비로 신발이 축축해졌다.

여름꽃과 함께한 좋은 길...

▲부추밭 하우스에서 "통영이 좋다"

▲용남면 사무소앞에서

▲오늘의 일정에 대하여...

▲스트레칭도 하고

▲임도를 향하여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인원이 18명이다 보니 선두와 꼬리가 자꾸 멀어진다.

▲고맙게도 기다려 주시는 강의원님괴 김회장님

▲자갈길이 끝나고 간식타임

▲지천에 야생화가 피어있는 걷기좋은 산봉산 임도길

▲해병대 통영 상륙 작전시 전사한 19인의 영가를 모신 두타사에 참배하다.

 ▲인디언 소녀!

 

잔뜩 흐리던 날씨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를 피하기 위하여 부추밭 하우스로 대피했다.(마침 그곳에는 문이 열려진 부추밭 하우스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있었다)

이곳에서 우의를  입고 다시 길은 나섰다.약간 그칠듯 하던 빗줄기가 더욱 강해졌다.

대방포 넘어가는 산길은 맑은날도 험했다.폭우가 더욱 심하게 내려 코스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즉 대방포 고개길을 포기하고 왔던길로 나와 오촌 방향으로 전환했다.

 

부추밭 하우스에서 18명이 힘차게 외쳤다.

통영이 좋다!~~~~~~~~~~~

하우스를 나서니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는 그칠줄 모르고 내린다.

바짓가랑이가 젖고 신발에 물이 흥건하다.

 

오랫만에 폭우속을 걷는 회원들은 마냥 신난다.정말 오랬만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길을 뚫고 걸었다.

아주 어릴적 소먹이러 다닐적에 소낙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집으로 왔던 기억 이후 처음이다.

"소나기" 하면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난다.윤초시내 계집아이를 좋아한 소년이 소나기를 피해 수수단속으로 들어갔지만

우리는 부추밭 하우스로 들어왔다.수수밭이면 어떻고 부추밭 하우스면 어떠랴!

길 이라는 매체로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돌담이 정겨운 시골집

▲부추밭으로  대피

▲배영한님,김근용 향토사 회장님

▲여기서 우의를 챙겨입고

▲다시 씩씩하게 길을 나섰다.

▲비가 좀 오면 어때 제대로 운치를 느껴보자고 하며~~~~~~~~

▲그러나 다시 폭우가 내려 긴급대피

▲의논끝에 코스를 수정 하기로 하고

▲파이팅도 외치고...

▲폭우를 뚫고 왔던길을 되돌아 나온다.

▲소낙비

▲빗속을 걸으며...

 

누구나 가슴속에는 어릴적의 추억이 있으며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그 무었이 있다.

이번 토요걷기가 소나기의 향수를 꺼집어낸 계기가 되고

소나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묵묵히 발걸음을 철벅철벅 옮기는 또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때로는 변경도 필요하고 가지 않은 길도 가야할 때가 있다.

어쩔수 없이 가야 할 길이라면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탐색 할 수 있으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계획을 수정하여 돌아 나오면서 강아지풀로 토끼를 만들어 서로 비교도 하며 발걸음을 재촉 하였다.

국도14호선은 매우 위험하다.거의 자동차 전용도로 수준이다.

신호도 없다,횡단보도도 없다.인도도 없다.온통 차를 위한 도로다.

 

그 도로를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한다.삼화 삼거리에서 갓길을 100여미터 올라가면  옛길이 나온다.

그 옛길에는 각종 효행비 효열비 열녀비가 있었다.

이는 계획을 수정하여 다른 길을 갔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다.

 

오촌으로 향하는 길은 온통 젖은 신발 때문에 발걸음이 무겁다.

사람들이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뒤에 처진 두사람을 위하여 기다리기도 하고 동암의 명물인 거위도 만났다.

 

▲가을의 문턱에서

▲황금들판도 만나고

▲예쁜 토끼도 만들었다.

▲정렬부인,열행기실비가 4기나 있는 14번 국도 옛길

▲오촌에서 바라본 삼봉산

▲비는 완전히 그치고 오촌 갯가를 걷고있다.

▲뒤에 처진 두사람 그래도 즐겁다.

▲동암 갯벌 지킴이 거위

 

토요걷기를 한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 하였다.

주위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 고마울 따름이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 들여진다.

 

통영의 좋은길을 발견하고 널리 알리고 시민들과 같이 안전하게 걸을 것이다.

길은 걸어야 제 가치를 발휘한다.걷지 않는 길은 죽은 길이다.

수많은 옛길이 걷지 않아 사라지고 길따라 줄줄이 엮여 있던 옛 이야기도 함께 묻히는 안타까움이 있다.

 

세월의 무게를 감당 할 수는 없지만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넘나들던  고갯길에

많은 이야기를 듣고 전하며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길은 주인이 없다.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일 뿐이다."-신경준-

 

2013.9.14 삼봉산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