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죽림에서 덕포리 까지 해안길 사전 답사

청풍헌 2013. 9. 21. 23:44

2013년 추석 기나긴 연휴를 알차게 보내기 위하여 10월 토요걷기 일정에 있는 죽림 해안길을 걷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이것저것 챙겨서 9시40경  버스를 타고 원문고개에 내렸다.장문리 가는 길로 잡아 내려갔다.어느듯 가을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벗나무 낙엽이 바스락 그려 계절의 순리를 알 수 있었다.멀리 보이는 공진루와 원문성도 가늠해 보고 기존 잘못 알았던 성곽도 가늠해 보았다.효열비를 보고 계속내려갔는데 날씨가 한여름이다.다행히 팔토시를 하여 좀 나았으나 그래도 덥다.고속도로 아래 터널을 지나는 곳에 각종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가스공사의 정압장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다.터지면 반경 3km 내에는 다 죽는다고 쓰여 있다.기호마을 표석을 지나 이래로 내려가다 좌측으로 난 마리안나 팬션 팻말을 보고 진입하면 밤나무밭이 나온다.누군가 펜션이나 원룸을 짓고 있는지 건축을 하고 있다.그곳에 서유대 통제사의 마애비가 서있다.마애비는 큰 바윗돌에 통제사의 공덕을 기려 세긴 비석으로 ['통제사서공유대' ][덕급생민德及生民][숭정후3신축군민등각]이라 세겨 놓았다.아무도 돌보지 않으며 그것이 무었인지 표식이 없으니 공사하는 사람이나 건축주도 아무도 모른다.주위에는 음료수병과 몹쓸 쓰레기만 널부러져 있다.안타까울 뿐...다음에 갈때는 낫을 가져가고 또 어떤 표석도 해야겠다.어떤 표석을 하고 알려야 할지는 차후 곰곰히 생각을 해보자.

 

 

▲원문고개의 가을단상

▲기호마을에서 내려가는 죽림 해안

▲서유대 통제사 마애비

 

 

알밤을 수확하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려왔다.왔던길로 나올려니 제법 멀어 포장된 길과 비포장된 길이 있어 비포장길로 들어섰는데 큰 소나무 아래 그네를 매어 놓았다.사람들이 보여 이길로 가면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본인들도 놀러 왔다고 하며 잘 모른다.하는수 없어 왔던길로 되돌아 나갔다.죽림 해안길로 좀 내려오다 통영시립 충무도서관이 있는데 분명 아까그 펜션과 연결된 도로가 있을것 같이 힘들지만 도서관으로 올라갔다.도서관 옆으로 돌아가니 과연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여 올라가니 아까 본 그내가 있었다.그래 바로 그 길과 연결된 길이다.차후 길 안내시 이곳으로 오면 조금이라도 단축 될 수  있다.역시 사전 답사가 절실히 필요하다.길을 확인하고 내려오다 길을 내고 난 작은 언덕이 보였다.그쪽으로 겨속 올라가니 끝에 나무로 된 큰 평상이 있고 더 이상 내려가는 길은 없었다.그곳에서 포도와 간식을 내어 먹고 땀을 식혔다.다시 원기를 회복하여 해안길을 들어섰다.죽림 해안도로가 변했다.계단처럼 된 해안가를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고 바닷가에 가드레일을 해 놓았다.매년 이곳에 익사 사고가 나 매우 위험 했는데 시에서 예산을 들여 좋은 자전거길과 더불어 안전 시설물을 해 놓았다.시민들이 보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안전이 우선 되어야 한다.시에서 추진하는 정책도 시민들의 안전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행복은 안전에서 온다.자전거 도로와 가드레일은 죽림 해안로 끝까지 설치되어 있었다.중간 중간 낚시하는 사람들은 기드레일 밖으로 나가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학꽁치가 좀 보였으며 각종 물고기의 치어들이 유영을 하고 있다.무슨 종류의 치어인지는 몰라도 이곳이 물고기의 산란장으로 최적의 장소이며 치어가 살아갈 수 있는 먹이 생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간식을 먹고 힘을 내었다.파이팅!

 

▲죽림 해안로 자전거 도로

▲학꽁치

 

 

죽림 지동차 학원쪽으로 돌아가면 시내버스 차고지가 나온다.몇달전 노조와의 갈등으로 차고지에서 무단으로 오일을 방출하고 부동앵을 버렸다고 신문에 크게 보도 되었다.노사 갈등의 현장을 보니 아이러니하다.어떻게 진행 되었는지는 물라도 시내버스 차고지는 잘 운영되고 버스도 잘 다닌다.물론 검찰에 고발되어 벌금을 물렸겠지만 그 노조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궁금 할 따름이다.버스 차고지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이중으로 방축이 쌍여있다.방축 사이에는 물이 고여 죽은 물고기가 보이고 물의 흐름이 거의 없어 보였다.짜투리 땅이라도 고추나 고구마를 심어 농사를 짓고 있었다.이곳은 매립지로 각종 공장이있으며 고속도로 교량 아래까지 옛날에는 바닷물이 들어 왔을 것이다.임진왜란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1595년 4월 초10일에 "구화역의 역졸이와서 보고 하기를 적선 1척이 또 역 앞에 이르렀습니다. "구화역이 구허역인 이곳 노산을 뜻한다.덕포교를 휘돌아 해안도로를 따라 걸었다.좌측 산먼당을 깍아 석산을 개발 하는지 아니면 예전에 호텔을 짓는다는 현판을 본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없다.단순히 석산을 개발하는지...해안도로 아래 바닷가에 상수관이 두줄로 갔다.아마도 상수도관인 것 같다.도로공사시 미리 관로를 묻었으면 이런 불상사가 나지 않았을 것인데 일전에 한산대첩길 답사시 논아랫개 도로공사시 상수관을 미리 묻어둔 지혜를 발휘한 시청 관광과 시설계장이신 윤창환 님의 말씀이 생각난다.공무원들도 내 일처럼 앞을 내다보고 일을 처리하고 혜안을 가져야 한다.파도에 깍이고 햇볕에 노출과 바람에 풍화작용을 하는 수도관이 안타까울 뿐.그러나 어쩌라.인간의 젓줄인 물인데.

 

 

▲구허역 매립지

▲낚시객과 반사경

▲해안으로 놓여진 상수도 파이프(추정)

 

손덕마을로 들어섰다.마을의 유래가 적힌 큰 입석이 있어 자세히 보았다.마을 사람들이 통영장으로 다니는 길이 노산재(손덕재)를 넘어 힘들게 다님으로 해안길을 내고자 스스로 마을 사람들이 부역을 해서 리어카가 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내고 확장 포장을 한  길이 해안도로이다.마을 들머리에 작은 사당처름 생긴집이 있는데 이곳이 삼은정 유허비다.노산과 우동 손덕에 사는 세 은사가 서로 교류하고 우애를 가짐으로 그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다 제각을 짓고 동네 유림들이 기렸다고 한다.동네 어른들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안에는 무었이 있느지 물어보니 약방의 각종 자료들이 있지 않나 추측했다.손덕마을은 옛부터 어장이 풍부하여 사람들이 돈을 많이벌어 노산의 대부분 토지들이(80%)이곳 손덕사람들의 토지라고 한다.농사를 지어 소출이 나면 배를 이용하여 싣고 왔다고 한다.옛길이 너무 힘들어 바닷가로 길을 내면서 지개와 정 지렛대를 이용하여 순전히 손으로 인력으로 바위를 깨어 겨우 리어카 다닐 정도의 길을 내었다고 한다.창포,구집 사림들도 이 옛길을 지개지고 이고 들고 통영장을 다녔다고 했다.지금은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으니 좋은 세상이라고...소나무 언덕위에 제실과 산소는 김해김씨 산소라고 한다.언덕의 고목인 소나무 아래는 동네 노인들의 쉼터를 만들어서 땀을 식히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의자를 잘 만들어 놓았다.동네 아주머니들이 마늘을 심다가 그늘에 와서 쉬고있어 담소했다.이곳은 물이 귀하여 우물을 파면 짠물이 비쳐 밥을 해도 간간 했으며 빨래의 때가 가시질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그 아주머니는 영운리에서 이곳으로 시집 왔으며 할배가 술을 많이먹어 애가 탄다고 한다.하루에 댓병 한병을 마신다고 한다.길 아래쪽의 소나무와 팽나무가 보이는곳이 당산나무인데 예전에는 세끼줄을 걸고 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폐기되어 당산제도 없다고 했다.

 

 

▲삼은정

▲뙈약볕에 마늘을 심고있다.

▲손덕마을 쉼터

 

창포 고개로 넘어간다.창포는 마을의 유래가 창고가 있던 개라 하여 창포라 했다.고개를 넘어가면 참숯 찜질방이 있었는데 그곳에 목조 통나무 집을 짓고 있었다.멋진 통나무집이 세동이나 올라가고 있었다.창포마을이라는 입석을 지나면 영암김씨 박사공파 제실과 산소가 있다.지난 겨울(2012) 탐방때 정확히 알아보지 못하여 오늘은 마음먹고 물어 봐야지 하고 입구를 들어갔다.마침 그곳에는 제법 젊은 사람이 마늘밭을 갈기 위하여 관리기를 세우고 쉬고있어 이것저것 물어 볼 수 있었다.영암김씨가 어떠한 이유로 귀양을 와서 이후 사면 되었는데 그 후손들이 잘 되어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조상들의  비석을 세우고 성역화를 했다고 한다.영암김씨의 박사공파 제실이다.입간판에는 영암김씨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이 되어있는데 조상중 중종시대 호남 체찰사로 갔다가 왜적을 물리친 공로로 영암군을 제수받고 영암김씨의 시조가 되었다.이후 후대가 우연히 이곳으로 내려와 일가를 이루고 자손이 번창하고 벼슬길에 나아가 가문을 빛내었다 라는 내용이다.안타까운것은 조상의 산소에 있던 석물이 몇해에 걸쳐 도난을 당했다고 한다.석등과 망주석들을 훔쳐가 지금은 세것을 세워 놓았다고 한탄했다.

마을의 정자에 어른들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이곳이 창포인데 옛날 통제영의 창고가 있었습니까?옛날 통제영의 창고를 짓기 위하여 작은 나룻배에 기와를 싣고 오다가 배가 빠졌다.그당시 기와를 실은 배의 돗대가 보였는데 그곳을 지금도 기와여 라고 한다.뱃사람들은 다 알고있다.통제영 창고는 저쪽 어디엔가 있었다고 한다.또한 이곳에 만석꾼이 살았었다.만석꾼의 집 주춧돌이 여러개 있었는데 지금은 한개만 남아있다.골목길을 내려오면서 본 그 주춧돌이 만석꾼의 집 주춧돌 이었다.(혼자서 통제영 창고의 주춧돌로 착각함) 만석꾼집의 곡식 창고가 저곳에 있다.예전 창고는 무너지고 지금 그 자리에 동네의 창고가 세워졌다.창포는 분명 창고와 연관이 있었다.이곳의 당산나무도 소나무로서 언덕에 있다.

 

▲영암김씨 제실

▲만석꾼 집의 주춧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창포마을 청주한씨 어르신(83)

 

 

구집으로 넘어오다 각종 공장이 있어 바닷가에서 개발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공장 옆으로 길이 있는데그 길이 옛길이며 구집으로 넘어가는 길 이라고 일러준다.좀 왔지만 도로 후퇴하여 그 길로 들어섰다.옛길은 포장이 잘 되었으며 고개를 넘으니 마을이 나타났다.길은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약간 아래로 내려갔다.바닷가 길과 만나는 지점에 작은 선대 조선소가 있으며 배가 한척 올라와 있엇다.작년 탐방때 육지로 올라온 창명호 라는 제호로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구집 마을 회관의 쉼터에서 물도 마시고 두러누워 피로를 잠시나마 풀었다.고개를 넘어오다 이곳도 틀림없이 질러가는 길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다시 마을로 들어섰다.동네 청년에게 물어보니 예전에는 적덕가는 고갯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길 수 없다고 한다.고갯마루가 험하게 보여 다시 돌아 내려왔다.spp 의장 작업장을 돌아 나오면 적덕 마을이다.원래 계획은 계속 임도를 타고 당곡까지 가기로 했었는데 너무 힘들다.오전 10시에 출발하여 이곳 적덕마을에오니 15시 30분이다.무려 5시간 30분이나 길위에서 보냈다.점심은 굶었지만 먹을 것을 많이 갖고 와서 다행 이었다.오늘은 여기까지...버스시간을 보니 15시20분발,15시 55분발이 있다.좀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마을의 벽화를 구경하고 동네 사람에게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 적혀있는 시간에서 5~10분 있으면 온다고 한다.결국 16시 5분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구집 마을의 전경

▲익어가는 탱자

▲써래질(벽화)

최적의 거리와 안전을 고려해서 길을 잡아야 한다 그래도 오늘 사전 답사를 한 보람이 잇다 역시 답은 현장에 있다.나와서 길을 걷고 사람들과 소통해야 진정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길잡이!

10시:00시작~15:30마감 총 5시간 30분 소요됨

거리:13.17km

 

2013.9.20 죽림 해안길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