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9회 토요걷기(통제사길1) 근세 가장 훌륭한 통제사를 만나다

청풍헌 2013. 10. 3. 11:36

가장 통영스런 길은 무었일까?

나의 고민은 언제나 그것이다.

통영에만 존재 하는 길 중 하나가 통제사길이다.

그래 이번에는 통제사길을 걷자 하고 공지를 했다.

 

9월 28일(토) 통제사의 길1

코스:원문공원 입구-원문-해안길-보건소-고성해미당-시청-거제해미당-정량동-덤바우골-통새미-남문-세병관

거리:6km 3시간(10시 출발)

중식:중앙식당(055-645-7157

연락처:김용재 017-585-9319

참가 신청은 댓글,전화, 문자요.

 

 

어느덧 열아홉번째 맞이하는 토요걷기가 되었다.

시작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무소의 뿔처럼 굳굳이 갈련다.

애초의 목적대로 길이 좋아서 같이 걸으며 길위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있는 발걸음을 할려고 한다.

 

 

통제사길은 고성 남산에서 세병관 까지인데 그 첫번째 구간인 원문에서 세병관 까지 걷는다.

통제사길은 많은 이야기가 담겨진 길이다.그 의미를 되세기며 천천히 천천히 걷고자 한다.

원문공원 광장에 모였다.오늘도 여러 분야의 시민이 참여를 하여 16명이 체조로 몸을 풀고 출발 하였다.

출발전에 단체 사진을 남겼다."통영이 좋다"를 외치며...

 

 

 

원문!통제영을 들어오는 관문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이곳이 조명이 덜된것이 참 안타깝다.

그래서 일전에 원문성에 대하여 포스팅 했었다.

http://blog.daum.net/backsekim/530

 

 

 

원문성 문루터(공진루)와 오횡묵비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현재 남아있는 원문성 유구를 확인하기 위하여

고개마루의 북신만 쪽으로 내려 갔으나 풀이 우거져 대략적인 가늠만 했었다.

다시 올라와 해안길로 길을 잡아 내려갔다.

 

 

오횡묵 비문의 중요 내용

병술년 봄 질병과 기근으로 굶어 죽은 사람들로 넘쳐날때 별향사로 오시어 남쪽의 고을을 다스리셨다.

무릇 4개월 동안 산자를 구휼하고 죽은 자를 묻어 준 것이 10만은 되었다.

이로써 남방이 편안해져 그 업적을 여기 작은 비갈에 세긴다.(요약)

 

 

오횡묵은 정선,자인,고성,함안 군수를 역임하며 많은 저술활동을 했다.

그중 함안 총쇄록에 기록된 통제영에 관한 사항은 통제역 복원사업의 중요 자료가 되었다.

당시의 생생한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통제영 건물과 현판 주련 생활습속 병사(육군)와 수사간의 갈등까지

또한 통제사의 부임과정 까지 주옥같은 자료를 남기셨다.

이 자료에 의하여 통제영 복원과 통제사 행차 및 군점등등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

 

 

 

보건소에서 휴식 및 화장실을 이용하고 간식을 나눠먹고 다시 출발했다.

안개(무전동)의 미나리밭을 지나 고성 해미당으로 올랐다.

통제영 시절 이곳은 고성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서낭당 역할을 했던 곳이다.

 

 

 

 

 

▲16명이 힘찬 출발을 ! 

▲원문 고개 

 

▲통정대부행함안군수전별향사오공횡묵사적비

▲남쪽 체성을 확인하고  

▲무전동으로 나왔다. 

▲보건소에서 휴식과 간식을(화장실도 이용하고)

 

고성 해미당의 고갯마루에는 허씨 효열각이 있다.

옛길의 길목에는 효자 열녀비가 있다.

원래 코스는 고갯마루를 지나 북신동 쪽으로 내려가는 코스인데 거제 해미당으로 갔다.

 

 

시청을 지나 건너편에서 거제쪽으로 5~60m 가면 주유소 우측의 언덕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

이곳으로 오르면 거제 해미당 가는 길이 있다.

거제 해미당은 거제로 가는 길목이다.

 

 

고목을 집안으로 들여  굿을 하는 굿당을 지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음기가 서렸다.

좌우로 집이 있으며 내부에는 각종 굿을 하는 집기와 단군상과 산신, 용왕신 등 각종 신들이 있었다.

 

 

신을 부르는 북과 꽹과리며 촛대와 향 등등이 어지러이 있었다.

큰 소나무를 들여 집을 짓고 내부 팽나무앞에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이는 기도발을 잘 받기 위해서라고 이구동성 이야기 한다.

 

 

굿당을 나와 뒷쪽으로 돌아가면 굿당의 담벼락에 안쪽으로 들여서 옛 비석이 3기가 있다.

가선대부삼도통제사이공응서불망비이고 가운데는 유화원 통제사(169대) 막하의 우후 이공경달영세불망비이며

낧아 희미해진 왼쪽의 비석은 통정대부육군정위중대장이공규환영세불망비이며

통제영 폐영이후 육군 중대장 정위 이규환의 비라고 한다(김일룡 소장님)

 

 

통제사 이응서가 누구인가?

1843년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1844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1849년 황해도 병마절도사

1851년 삼도수군통제사

1853년 우변포도대장을 역임한 무장이다.

 

 

이응서에 대한 기록은 황헌의 매천야록 제1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통영은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어 소식이 잘 통하지 않음으로 문책할 일이 있어도 미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곳 통제사는 대개 사납고 무식해서 백성의 재산을 탐내고 술과 여식에 빠져 해왕이라 칭했는데

그중 변무에 가장 충실하고 공사에 힘을 쓴 사람은 근세에 이응서 뿐이다.

 

 

통영사람들은 이모가 부임한 이후 3통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채동건은 지장이며 김건은 위장,신억은 복장이라 하는데

그러나 이들은 이응서를 따를 수 없었다.

 

 

이응서는 나이 70세에 새로 부임하여 성곽을 쌓고 선박을 보수하는가 하면 총과 포를 제조하고

소금과 땔감을 저장하여 산업을 경영하듯 하였고 늘름하게 적과 대치 하는 것 같았다.

사직하고 돌아올때는 손에 채찍하나만 들고 왔으므로 그곳 관리와 백성들은 지금도 그를 사모하고 있다.

 

 

근세에 기록으로 남은 가장 훌륭한 통제사를 만난 날이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통제사 이응서가 부임했던 길이므로 내가 이응서라고 생각하며 길을 걷자고 했다.

비석골을 지나 정량동에는 또다른 유적이 우리를 기다린다.

 

 

통영관광호텔 옆 큰 바위에도 이응서 통제사의 마애비가 있다.

선정을 배푼 이응서 통제사는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나 통제사 비석군에도 없다.

기록도 미미하여 생몰년도 미상으로 나온다.

향토 역사관에 이응서의 간찰이 있다.

 

 

곳곳이 스토리텔러이다.

과연 교육을 받는 분들은 느낌이 틀리다.

이렇게 휼륭한 스토리텔러가 있는 마애비를 소유한 가게에서 전혀 활용을 않고있다.

그 가치를 모르니...

그 집을 사서 훌륭한 스토리텔러를 적극 활용한 사업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열댓명이 우르르 남의 집 문을 따고 올라가니 주인이 나와서 이야기 한다.

뭔데 남의 집에 함부로 올라 가는냐?

최소한 이야기는 하고 올라가야 하지 않느냐며...(급 죄송!)

▲고성 해미당의 허씨 효열각

▲거제 해미당의 굿당내부

▲집안에 소나무를 들여 지었다.

▲통제사 비석까지 굿당으로 들여 지어 기도발을 잘 받도록 했다.

▲여기서 원래 내려가는 길은 사라졌다.(왔던 길로 나간다)

▲통영관광호텔 옆의  이응서 통제사 마애비

▲자세히 설명 하시는 하얀공주님

 

중앙시장을 가로질러 남문터에서 유구를 확인하고 세병관으로 올랐다.

세병관은 단청 작업이 한창이다.

중앙 입구에는 부직포와 비닐이 깔려 있었으나 안에는 맨 마루바닥인데 그냥 신을 신고 들어갔다.

이건 아닌데...(시청 홈페이지 시정에 바란다에 건의를 함)

 

 

세병관 현판은 서유대 통제사의 글씨라고 한다.

무익공 행장에 기록되어 전해오는것을 후손이 제시 함으로 밝혀졌다.

공은 본래 글씨를 좋아하여 큰 글씨를 특히 잘 썼다.

말년에 더욱 부지런히 썻는데 통영에 있을 때 많은 돈을 들여 남원설화지를 사서 현판 서체를 몇 달 연습하고

세병관 편액을 쓰서 걸어 놓으니 그의 활달하고 웅대한 글이 세병관의 위용과 잘 어울린다는 칭송이 있었으며 그의 근면함이 이와 같았다.

(김일룡 소장님 한산신문 기고문)

 

통제사가 남문을 들어서면 각종 기치와 의장물이 화려하게 나부끼고 대포를 쏘며 환영을 하였다고 한다.

세병관에 정좌하여 전폐단에 고하고 막하 부하들의 하례를 받고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세병관의 연회 자리를 옮겨 중앙식당에서 했다.

▲중앙시장의  전어

▲단청 공사가 한창인 세병관 

▲이렇게 중앙 입구가 무방비로 되어있다. 

▲더렵혀 지고 있는 국보

▲망일루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각자가 통제사가 된 소감을 이야기 했으며 많은 이야기가 보석같이 숨어있는 통영을 느껴 좋았다고 한다.

이야기가 있는 길을 걸으며  옛것을 알아가는 유익한 발걸음이 되었다.

문화원에서 10월에 통제사길을 걷는다고 하니 다같이 참여 하기로 하고 연회를 마쳤다.

 

 

 2013.9.28 통제사길1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