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여행 이야기

(고창 답사기) 있는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순전히 시민의 몫이다

청풍헌 2015. 11. 13. 00:26

영국은 산업혁명을 이룬 나라다. 또한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로 자리매김 했다. 대 문호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꿀 수 없다고 했으며 비틀즈를 탄생시켜 전 세계에 팝을 전했다. 통영은 세계 속의 영국과 같다. 대 문호 박경리를 비롯하여 수많은 예술인들을 탄생 시켰으며 대한민국 수산업 혁명을 이루었다. 마을 만들기의 선도적 역할을 한 동피랑을 비롯하여 에코아일랜드 연대도는 뭇 지자체의 귀감이 되고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통영의 문화다. 통영의 문화를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는 정책을 수행하는 통영 문화원에서 회원들을 위한 유적지 답사를 한다. 올해는 통영성의 복원과 통제영 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우리나라 3대 읍성중 하나인 고창읍성과 단풍이 아름다운 선운사, 고인돌 유적지까지 답사를 한다. 무너지고 헐려서 돌다리로, 담벼락으로 변한 통영성과 잘 보존되고 관리되는 고창읍성을 비교하며, 더불어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선운사를 방문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지를 답사하는 일정이다. 향토사를 공부하며 통영 성을 알게 되었고 세병관이 무엇이며 선사시대의 유적인 우리고장의 고인돌의 실태를 알게 되었다. 답사란 다른 지역의 유적을 알아보고 어떻게 관리 하는지 우리 통영에서는 어떻게 적용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또한 생각의 폭을 넓히는 지식의 갈구다. 예년 같으면 버스 두 대도 채우지 못했었는데 버스 세대를 준비 했지만 신청자가 몰려 다 함께 가지 못했다.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고창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까 내심 기대 되었다.

 

고창은 전라북도다. 서해안의 요충지로 왜구들의 침입이 잦아 읍성을 쌓게 되었다. 고창읍성은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 하며 장성의 입암산성과 연계하여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담당 하였다. , , 북문과 3개의 옹성, 6개소의 치가 있으며 4개의 우물과 3개의 연못이 있었다. 북문이 읍성의 정문이며 공북루라는 현판이 있다. 이 읍성이 언제 축조되었는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고, 고창읍지동국여지승람에 단순히 둘레가 3,008, 높이가 12척이고 성안에 삼지사천(三池四泉)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도 있고, 1453(단종 1)에 축조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성벽에 濟州始(제주시和順始(화순시羅州始(나주시癸酉所築宋芝政(계유소축송지정)’이라는 각명(刻銘)으로 미루어 볼 때, 계유년(癸酉年)에 전라도의 여러 지역에서 축성을 위하여 역부(役夫)가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유년이 어느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벽의 축성법으로 보아 1573(선조 6)으로 추측되고 있다. 통영성의 북문도 공북루이다. 공북루의 초석은 화강암인데 길이가 제각각이다. 평거식 성문으로 옹성이 잘 발달 되어있다. 성내에는 동헌과 객사 등 관아의 건물이 22동이었으나 지금은 객사, 동헌, 내아, 작청, , 관청 등의 건물이 복원 되었다. 특히 객사는 전통적인 모양을 하고 있으며 중앙의 정청은 높으며 좌우 익청의 건물은 한 단계 낮게 건축하여 중앙을 더 돋보이게 했다. 이는 객사의 중앙 정청을 신성시 하는 것이며 이곳에 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현판은 모양지관(牟陽之館)이다. 측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앙에 전패와 궐패가 의자에 모셔져 있다. 세병관의 궐패 단과 다른 점은 작은 소품 하나가 큰 스토리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광대패들의 놀이마당으로 변하기도 했다. 지방의 객사에는 전패 단을 모시고 임금을 대하듯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망궐례를 올렸다. 교지를 받들거나 중앙의 명령을 수령하는 엄숙한 장소로 사용 되었다. 대한제국을 선언한 고종 이후에는 황제국 이므로 전패를 치우고 궐패를 모시도록 했다. 고종 34, 33(1896 병신 / 대한 건양(建陽) 1) 815(양력) 1번째 기사 지방의 각 부··군의 전패궐패로 고쳐 부르는 데에 관한 안건 등을 모두 반포하다. 궐패는 황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옛것을 복원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모양지관은 우리에게 시사 한 바가 컸다. 성곽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왔다. 잘 보존된 성곽은 훌륭한 문화자산이 되었다. 답성놀이라는 좋은 문화자산도 연연히 이어져오고 있다. 부녀자들이 윤달에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면 아픈 다리가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왕생 한다는 기막힌 스토리가 있다. 잘 복원된 관아와 성곽, 성안 노송들의 아름다운 풍경은 옛것을 어떻게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답사였다.

 

선운사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은 후 경내로 들어갔다. 고창 선운사는 겨울 눈밭에 핀 동백이 유명하며 여름의 꽃무릇과 가을의 단풍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왜 여기에 동백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곳이 서해안의 요충지로 바다와 인접해 있다. 누가 언제 심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름드리 동백이 절 뒤에 숲을 이루고 푸름을 뽐내고 있다. 만세루에서 차 한 잔은 속세를 벗어나 신선이 되는 소중한 경험 이었다. 절에서 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도솔암으로 오르는 도솔천을 따라 오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루었다. 가물어 수량은 풍부하지 않지만 그래도 맑은 물에 비치는 반영은 신선 세계에 온 듯하다. 단풍나무 사이로 올라온 꽃무릇 잎사귀는 꽃무릇의 향연을 상상하기에 충분하였다.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일명 상사화다. 꽃이 지고나면 잎이 올라와 여름에 잎이 지고 가을에 꽃이 피는 과정을 거친다. 평일인데도 많은 관광객과 진사(사진사)들이 많았다.

 

다음 코스는 고인돌 유적지이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무덤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인돌이 존재한다. 너른 양지 밭 언덕배기가 고인돌 군락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하는데 워낙 광범위하여 이동열차를 운행했다.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판석이나 지석을 이용해 상석을 받치고 있는 거석문화의 일종이다. 고인돌의 대부분은 무덤으로 쓰였으며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고창의 고인돌은 다양한 형태의 접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소이며 이는 선사시대의 우리 조상들의 삶을 조명하고 묘제양식 및 당시의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통영에도 수많은 고인돌이 존재 했었지만 거의 훼손 되고 몇 기만 남았다. 봉평동 고인돌, 원동 고인돌, 그 외 등록되지 않은 고인돌이 수기 존재한다.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재연한 곳은 지난해 일본 요시노가리 유적지와 비교 되었다. 통영의 선사 유적지는 대표적인 것이 연대도 패총에서 출토된 인골과 발찌다. 묘제를 연구함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리는 같다.

 

통영성이 없는 통제영지, 복원된 통제영지가 과연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에겐 국보가 있다. 국보305호 세병관이다. 통영의 중심이며 자존심이며 유형의 자산이다. 이 아름다운 유산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궐패 단에 전패를 모셔 다시는 정청에서 광대놀음을 못하게 하자. 세계문화유산은 인류보편적인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재에 주어지는 자격이다. 있는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순전히 시민의 몫이다.

2015.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