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73회 토요걷기(해핑이 길) 통제영 시절부터 선목(船木)이 배를 만들었던 곳이다.

청풍헌 2016. 8. 3. 00:22

통영의 주산은 여황산이다.

미륵산은 통영의 조산이다

미륵산이 좌우로 뻗어내리고 여의주의 형상인 공주섬을 품고 있는 북쪽사면에 

일찍 해빈부곡으로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있다

오늘 이 길을 답사 하고자 길을 나섰다


예보와는 다르게 햇살이 뜨겁다

기상청 슈퍼 컴퓨터가 더위를 먹었는지 금요일 오후부터 토, 일요일까지 비가 온다고 예보 했었는데 햇살만 뜨겁다

매일 바라보는 미륵도는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알지만 또 다시 확인하면 새로울 것이다


마리나 리조트에서 출발했다

아스팔트 더위를 걱정하여 네 명만 모였다

그래도 어쩌랴? 조귀선 회원이 우리가 왔으니 최소한 해평 열녀비까지 갑시다하고 용기를 준다

휴가철을 맞이하여 마리나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마리마 양쪽으로 바다가 있고, 산책로가 있고, 섬으로 가는 여객선이 수시로 드나들며

요트가 떠다니는 이런 곳이 진정 휴양지가 아닌가

매일 보는 우리는 그러려니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오는 손님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맛있는 먹거리와 풍부한 문화유산이 있는 통영을 찾는 외지인들은 통영을 부러워한다

스스로 통영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해골바위는 바다로 가고 싶다고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오고 

큰 발개 당산에는 국제 음악당이 들어서 한층 격조 높은 공연을 하고 있다

주민들과 마찰 중인 스텐포드 호텔은 공사가 착착 진행되고 

여름 한철 장사하던 포장마치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오카야마무라(강산촌)는 뜨거운 햇살아래 예나 지금이나 별 변화 없이 그대로다

옛 영화를 뒤로하고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공예전시관에 들어갔다. 시원했다

통영의 누비작품과 나전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인데 구매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동개도에 왔다

동개도는 정찬술 통제사가 활 10순을 쏘고 기념으로 통개도(筒箇島)라는 글귀를 내려 바위에 새겨 놓았다

오늘 탁본을 하려고 장비를 챙겨왔다

비스듬히 생긴 바위 위에 올라서 이성기 회원과 함께 힘들게 탁본했다

큰 글자는 한지가 두꺼워야했다

붓글씨 쓰는 화선지는 얇아서 쳐졌다

그래도 한자씩 탁본하니 그를 듯 해 보였다


유람선 터미널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었다

발개 삼거리에 있는 조선소에는 한 개의 업체가 일을 하고 있었다

작은 블록을 만드는 지 그라인더 소리가 나고 크레인이 물건을 들고 있었다

신아조선은 텅 비었다. 조선소가 한창 잘 돌아갈 때는 이곳이 활기가 있었다

세계 10위권 안에 든 적도 있는 유서 깊은 조선소인데 문을 닫았다

통제영 시절부터 선목(船木)이 배를 만들었던 곳이다

21세기 조선소도 역시 조용했다. 적막강산이다

조선소 앞에 있는 원룸은 한 때 불티나게 잘 나갔었다

지금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동양유전은 한 때 꿈의 직장 이었다고 한다


오래전에 사람이 살았다는 고인돌은 옛사람의 무덤이다

고려조에 해빈부곡이 있었던 곳으로 통제영의 채전 밭으로 역할을 했었다

해핑 똥바람이라고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하던 때 나던 냄새를 비유한 말이다


해평열녀사당에 왔다

이 사당은 1780년경 해평마을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이 한산도 각수여 부근에서 고기잡이 갔다가 실종 되었다

바다로 나간 아내는 남편을 찾고자 투신하여 3일 만에 남편의 시신을 안고 떠올랐다

뒷날 가뭄과 돌림병이 돌 때 현감의 세숫대야에 열녀(烈女)라는 버들잎이 떨어져 

만고창해(萬古滄海) 일심열녀(一心烈女)라는 비를 세우고 사당을 지어 위로했다. 


사당 옆이 김춘수 유품 전시관이다

생가는 정량동 항목 입구에 있는데 구입을 하지 못하여 과거 한려해상국립공원 사무소에 임시로 유품 전시관을 만들었다

김춘수는 서구 상징주의 시 이론을 받아들여 초기에는 그리움의 서정을 감각적으로 읊다가

점차 사물의 본질을 의미보다는 이미지로 나타냈다

1945년 충무에서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고

노동자를 위한 야간중학과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통영중학교 교사, 해인대학교· 부산대학교에서 강의하다가 1964년 경북대학교 교수로 취임

1978년까지 재직한 뒤 이듬해 영남대학교로 옮겨 19814월까지 재직했다.

꽃의 시인이다


통영에는 해녀가 많다

나잠조합도 있으며 미수동 부두에는 해녀상도 세웠다

해녀들이 잡아오는 싱싱한 해산물이 통영의 음식문화에 일조를 했으며 

억척같은 삶을 살아온 해녀들이 재조명 될 날이 올 것이다

거제에는 해녀학교를 설립하여 수 십대 일의 경쟁력이 있었다고 한다

해녀배가 여러 척 계류되어 있으며 물질 후 올라와 몸을 데우는 불덕의 연통이 보였다

불덕은 제주에는 육지에, 통영에는 배에 설치하는 일종의 난로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경매 내기 전에 싱싱한 자연산 전복이나 소라를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더워서 더 이상 진행은 곤란하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해산했다.







2016.7.22. 해핑이 길을 걷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