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75회 토요걷기(수군재건로7 승주읍-순천 팔마비) 생태도시 순천으로 살러 오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청풍헌 2016. 9. 28. 22:41

수군재건로 걷기가 추석연휴로 인하여 일주일 연기 되면서 토요걷기와 겹친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여 토요걷기와 함께 하기로 했다. 토요걷기는 10명이 신청했으며 이배사 통영지부 7, 부산지부 2, 도합 19명이 움직이게 되었다. 이 길은 사전 답사가 없었다. 그냥 부딪치면서, 때로는 시행착오도 겪으며 걷고, 지나면 진한 아쉬움도 남는다. 차량이 해결 되었다. 뭘 보여주지? 답은 현장에 있다. 장군이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의미를 새길 것이다. 많은 인원이 움직이려니 걱정 되었다. 지향점이 다른 두 단체가 같이 걷기를 해야 하므로 혹시 불편한 점은 없을까 염려 되었다. 의미 있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같은 목표다. 행동으로 보여주면 될 것이다.

승주읍사무소에 집결하여 인원을 하차하고 차량은 팔마비로 향했다. 승주에 오니 6차 때 힘들게 걸었던 생각이 난다. 무슨 일이던 힘들고 어렵던 기억은 뚜렷이 남아있다. 접치 고개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은근히 걱정과 기대가 된다. 간단한 인사만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설(序說)이 길면 좋은 현상이 아니다. 서먹서먹한 관계도 걸음을 시작하면 자연적으로 해소된다. 많은 경험에 의한 것이다.

 

능파 정에서 일찍 출발한 장군은 부유 창을 거쳐 구치(접치)재를 넘으며 관리들에게 소집명령을 내렸다. 길가 감나무에는 감이 익어가고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변하고 있었다. 제법 큰 오르막을 올랐다. 굽은 도로를 직선화한다고 공사가 한창이다. 학구 삼거리에 왔다. 학구삼거리는 구례와 승주, 순천이 만나는 중요한 길목이다. 객관이 있어 뭇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전령을 받은 광양현감 구덕령, 나주판관 원종의, 옥구 군수 김희온, 조방장 배경남이 합류했다. 이곳의 주막에서 막걸리 한 사발 마셔주는 것이 예의인데 대열이 길어지다 보니 그냥 지나쳤다. 겨우 사진 한 장 건졌다. 황우마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남명손서님의 천성만 살리기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모두가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다.

 

순천 서천의 천변 길로 갔다. 큰 도로를 벗어나니 소음과 매연에서 해방 되었다. 안전한 걸음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길가의 호박과 익어가는 감나무의 노란색은 가을을 재촉하는 색갈이다. 젖소농장의 시골 냄새는 걷지 않으면 맡을 수 없는 것이다.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쇠똥 냄새다. 한 때 쇠똥을 불쏘시게 로 쓰기도 했다. 징검다리를 건넜다. 하천이 잘 정비된 살아있는 서천 이었다. 이 길은 백의종군로 6구간과 겹치는 곳이다. 간간히 백이종군로 푯말이 있으며 걷기에는 그만인 길이다. 서천을 따라 내려오니 서면 우체국을 만났다. 이곳에 중형 입간판이 있다.

 

서천과 동천이 만나 순천동천으로 흐른다. 학구 삼거리에서 7km이며 순천 팔마비까지 7km 남았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이동했다. 동천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 수초 사이에서 큰 소쿠리를 가지고 헤집고 있었다. 무엇을 잡고 있는지 물어보니 민물새우를 잡는단다. 소쿠리를 들어 확인시켜 주었다. 민물 새우가 자라는 도심의 강이다. 토하라고도 하며 강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강가로 나지막하게 이어진 자전거 전용 도로는 시원한 동천을 따라 잘 정비되어 있다. 강가에는 온갖 수생식물이 존재한다. 어리연, 부들, 기타 이름 모를 수생 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저마다의 생명을 유지하며 상호 공존하고 있다. 이 동천이 아래로 흘러 순천만 갯벌을 이루고 갈대밭을 이루고 생태 도시를 만들었다. 친수공간이 잘 조성되어 시민들이 산책과 운동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장소로 그만이다. 순천으로 살러 오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물려주어야 한다. 매립하고 시멘트로 발라놓은 회색의 도시는 매력이 없다. 생태도시가 미래의 먹거리이다. 순천만이 세계적인 생태관광지가 되었다. 불황이 없는 천연 자연 관광지였다. 조선특구 해양특구 등 허울만 좋은 토목 공사로는 불경기에는 문을 닫고 복원조차 할 수 없는 유령의 도시가 될 것이다. 도로를 연장해 낸 시멘트 공간에는 각종 사진과 벽화 등을 그려 놓았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자꾸 처진다. 대열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피치를 내었다. 샛강인 옥천을 지나 음수대에서 물을 먹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자전거 전용도로인 천변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동네 주민들에게 팔마비 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순간 지나칠 뻔 했다.

 

옥천을 따라 올라 중앙시장 앞 행동 우체국 옆에 팔마비가 있다. 팔마비는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사를 지낸 최 석이 내직으로 발령이 나자 관례에 따라 말 여덟 마리를 바쳤다. 그런데 최 석이 나중에 말이 새끼를 낳아 아홉 마리를 돌려주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고을 주민들이 비를 세웠다. 특이하게 양각으로 비를 새겼다.

 

저물 무렵 순천부에 도착한 장군은 관사를 점검하니 창고의 곡식과 병기고의 병장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활과 화살은 군관들에게 주고 무거운 화포와 총통은 땅에 묻고 표식을 했다. 그때 승려 혜희가 나타나 그에게 승병의 직책을 주고 승려들을 다시 모으도록 했다. 순천부성은 일제 강점기 때 훼철되고 흔적만 남아있다. 남문 터에는 표석만 남아 있었다. 힘들게 도착 했다. 팔마비 앞에서 기념촬영 후 순천 왜성을 탐방했다.

 

순천왜성은 일본군이 전라도의 공격과 최후 방어진지로 1597년 가을에 성을 쌓았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과 조명 연합군이 일전을 벌렸는데 이 싸움이 왜교성 전투다. 순천왜성정왜기공도(명나라 종군화가의 그림)가 남아있어 왜성의 전체적인 윤곽을 쉽게 알 수 있다. 11월 울산왜성 정기답사에 대비하여 비교할 수 있는 곳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천수각 터에서 바라보는 광양만과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여수반도와 남해 땅은 퇴로가 막힌 독안에 든 쥐 꼴이 된 고니시 유키나가의 심정이 그려지는 곳이었다



2016.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