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76회 토요걷기(도천동 명상의 길)그때 심은 나무가 하늘을 가릴 만큼 자라 우리에게 숲으로 돌아왔다.

청풍헌 2016. 10. 13. 06:06

도천동 음악마을 조성 관련 작년에 확보된 예산으로 올해 나머지 공사가 이루어졌다

윤이상을 주제로 한 길을 만들고자 노력한 김순철 동장은 다른 부서로 가버리고 

시작은 창대 했으나 별로 찾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우리라도 걸어보자고 생각되어 토요걷기를 하게 되었다

10월 걷기에 공지를 하고 기다렸으나 많은 비가 예보 되었다

토요걷기가 비 온다고 연기한 적은 없다

그냥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톡이 왔다. 대표님 비가 온다는데 걷기 합니까

그럼요 비가 많이 오면 차나 한잔 마시며 놀면 되죠


윤이상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6명이 모였다.

다행히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윤이상 기념관의 벽면에 시가 붙어있다

기다리는 동안 서서 노트에 쓰 보았다


이집에 윤이상 선생이 살고 있다./ 윤이상 기념관에 드리는 시 정일근 시인

집은 돌아오는 곳이다. 배를 타고/ 지구 반대편 까지 떠났다가 돌아오고

죽어서도 돌아오는 곳이 집이다./ 통영시 도천동 선생의 옛집 자리에/

새로 지은 음악가 윤이상의 집/ 1917년 출생 1995년 사망

통영에서 평양으로 베를린으로/ 평화의 유목민으로 떠돌던 생몰연대가/

마침내 이 집으로 돌아 오셨다. /선생의 악보는 세계평화 공화국의 여권

선생의 작은 태극기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요

저기 저 삼층 짜리 통영소목장은/ 나는 통영사람이요 소목장이 하시던

내 아버지의 아들이요, 라고 말하듯/ 생전의 손때, 생전의 온기, 생전의 숨결

고스란히 살아 집으로 돌아오셨다./ 남과 북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하고

세계기 기립하는 박수를 보냈던/ 가락, 바다, 심청, 광주여 영원하라/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조국을 사랑한/ 선생의 음악도 모두 집으로 돌아오셨다./ 

소년 윤이상이 코발트빛 통영 바닷가를/ 환하게 웃으며 달려가지 않는가/

청년 윤이상이 해방된 통영에서 / 열정적인 첼로를 연주하고 있지 않는가/

일흔 여덟의 윤이상 선생이 지금 당신에게/ 거장이 손을 내밀어 악수 청하지 않는가/

어제의 집이 있어 오늘의 집이 있듯/ 오늘의 집이 있어 내일의 집이 있을 것이니

여기 영원히 살아있을 윤이상의 집이 있다./ 이 집이 이십세기 최고의 음악가/

윤이상 선생이 살고 있다. /경인년 봄 허중자 윤판기 쓰다.” 


노트에 손 글씨로 꾹 꾹 눌러가며 썼다

인사 후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추용호 소반장 천막에서 우리 문화의 현실을 설명했다

이 좁은 공간 안에 윤이상의 생가가 있고 윤이상의 아버지 윤기현에게 소목을 배운 

추웅동의 아들 추용호 소반장이 공방에서 쫓겨나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3.1독립열사 허장완이 살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소방도로를 낸다고 통영의 전통을 땅에 묻으려 한다

아직 해결될 기미가 없다

보면 화가 나고 답답하다


기념관 야외에 전시된 전신 동상을 보며 내부의 흉상과 비교 되었다

그대로 해저터널로 향했다

해저터널은 19317월에 착공하여 193211월에 준공한 당시 동양최초의 해저터널이었다

외지사람들은 가끔 착각을 한다

터널에 들어가면 바깥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광경이 보일 것이라 상상하곤 한다

그야말로 해저로 뚫린 터널일 뿐이다


머루포도 박스에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착량묘에 갔다. 정당의 신위에 참배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숱한 세월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순신 장군의 순국일 에 맞추어 기신제를 지내고 있다.


운하교 아래로 지나 옛 착량교가 있던 곳으로 왔다

착량교 터라 표기를 했으면 좋았을 걸

표식이 없다. 골목을 가로질러 백운서재로 향했다

골목의 벽에는 입체적으로 벽화를 그려 놓았다

지금은 좋으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 길을 과연 지역민들은 얼마나 일고 있을까

누가 이 코스대로 걸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백운서재 가는 길의 갈림길에는 방향표시가 되었다

과거 이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없어 계속 지적 했었는데 오늘은 표식을 해 놓았다

백운서재는 백운 고시완 선생이 학동들을 가르치던 서당 이었다

지금은 매년 8월 하 정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백운 선생은 도술에도 능하여 못된 통제사가 용화사에 꽃놀이 갔다가 돌아오는데 

선생이 도술을 부려 말이 꼼짝을 못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말이 멈추므로 인하여 낙마한 통제사는 비장에게 연유를 물어본즉 

백운 고시완 선생이 도술을 부려 그랬다 하여 개과선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봉수골 벚꽃놀이에 통제사 행렬 때 그런 퍼포먼스를 하면 좋겠다


솔개새미에 왔다

솔개라는 말은 소나무가 우거진 갱문 가를 말한다

한 때 민방위 시설 한다 모든 공동 우물을 덮고 양수기를 설치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이웃 일본에는 지진대비 우물을 공동으로 쓰도록 한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될 시설이다

통여고 정문의 통영항 벽화에 왔다

코발트블루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내친김에 명상의 숲길로 가기 위하여 보현사 입구로 갔다

좌측으로 길을 잡아 오르막을 오르면 오름 매트가 폭우에 유실되어 너덜거린다

그래도 매트가 깔린곳은 풀이 덜났다


아왜나무 군락에 들어섰다

미인의 미끈한 다리처럼 하늘로 솟았다

요리조리 피해가는 재미도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짙었다


조금 더 가면 삼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서 있다

삼나무는 수기나무 라고도 하며 껍질은 목선을 만들 때 나무밥 이라고 나무와 나무의 이음새에 

물이 새지 않도록 틈새를 매우는 재료로 쓰였다

삼나무와 편백나무의 구분은 잎의 차이가 있다

삼나무는 잎이 뾰족하며 편백은 둥글고 부드럽다.


조금 더 기면 편백숲이 나온다

즉 이 숲은 아왜나무, 삼나무, 편백숲으로 이루어졌다

70년대 당시 민둥산을 보고 제승당에 온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녹화사업을 지시하여 

그때 심은 나무가 그동안 방치하여 하늘을 가릴 만큼 자라 우리에게 숲으로 돌아왔다

시내에 이런 숲이 있다는 것은 자랑이다


비온 뒤라 미끄럽기도 하고 등산화를 안신은 사람들이 있어 조심하라 일렀다

약수암 샛길로 나와 약수터에 오니 비가 많이 와 물이 흐리다

지하통로를 지나 박효자 사우 터를 지나 윤이상 공원에 왔다.

이상 음악마을 만들기의 일환으로 걷는 동선 내내 음악관련 벽화를 그려 놓았다

동피랑 처럼 관리가 된다면 좋으련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될까 의심스럽다


윤이상이 있어 국제음악제가 있으며 근사한 음악당이 들어섰다

또한 유네스코 음악창의 도시로 지정되어 활발히 활동을 한다

아쉬운 점은 걸음을 처음 시작할 때 살펴본 

윤이상 생가 터와 추용호 소반장 공방과 허장완 열사 생가 터가 소방도로에 묻히게 생겼다

슬기롭게 해결 했으면 한다.






2016.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