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향토사

孝婦烈女 贈嘉善大夫 戶曹參判兼 同知義禁府事 金貴攀妻貞夫人咸安之閭

청풍헌 2018. 1. 18. 10:48

孝婦烈女 贈嘉善大夫 戶曹參判兼 同知義禁府事 金貴攀妻貞夫人咸安趙氏之閭

上之 二十年 癸未 正月 日 命㫌

효부열녀 증가선대부 호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 김귀반처정부인함안조씨려

상지 이십년 계미 정월 일 명정

 

효열부 정려기

대저 효와 열은 사람으로서 그중 하나만 하기도 어려운 것인데 항차 그 두 가지를 온전히 하기란 얼마나 어려우랴. 정부인 조 씨는 본관이 함안으로 참판에 추증된 김귀반의 아내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지혜롭고 부모에게 효도 했는데 시집가서는 그 효성이 시부모에게로 옮겨 공경과 정성을 다하여 온 마을이 듣고 흠복 하였다.

기유년(1849) 남편이 우연히 난치병이 들어 온갖 약을 다 쓰고 정성으로 기도 하였으나 효험이 없고 곧 운명하기에 이르니 조 씨는 그녀의 오른쪽 허벅지를 칼로 베어 그 고기를 구워드렸더니 다행히 조금 차도가 있었다.

몇 달 후 남편의 병이 재발하자 이번에는 왼쪽 허벅지를 베어 그 피를 남편의 입에 흘려 넣었더니 간신히 연명 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이 때 조 씨 나이 28살로 근친이라고는 없이 다만 4살 먹은 어린 아들과 서로의지하며 살아가던 중 아들의 참변을 당한 시아버지가 실성하여 산으로 바다로 밤낮없이 해매이므로 조 씨는 울며 모셔오기를 1년이나 계속하더니 마침내 병석에 누워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돌아눕지도 못했다. 10여 년 동안 시탕을 올리고 정성껏 간병했으나 끝내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크게 슬퍼하며 예대로 장례를 치렀다.

병자년(1876) 봄에 시어머니가 등창이 나서 크기가 사발만 하였는데 조씨가 입으로 종기의 고름을 빨았더니 입술에 부스럼이 나서 고부간에 고생 하였으나 마침내 함께 나았으니 이야말로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겠는가!

조 씨 나이 예순이 넘게 되자 외아들 시진이 이미 장성하였고 그 자녀들도 다 입신양명 하였으니 이제야 조 씨는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자손들과 즐거움을 누리니 누가 탄미하고 부러워하지 않으랴. 시진은 그 어머니의 효열행을 표창 받고자 하여 임오년(1882) 1215일 임금님의 행차 때 모친의 효열행록을 가슴에 품고 가서 징을 치고 하소연하니 형조판서 김수현이 계장을 임금님께 올리고 예조판서 이병문이 상주 처리하여 계미년(1883) 113일 우부승지 정원하가 임금님의 하문에 대한 사항을 심의 상주하니 임금님은 정문을 세울 것을 하교하면서 정문에 필요한 목재와 목수를 관에서 조달해주고 그 자손들에게는 환상과 잡역을 면제토록 하였다.

이에 예조에서 경상도관찰사 조강하에게 지시하고 관찰사는 고성부사 정해식에게 효열정문을 관급자재로 세울 것을 지시하고 통제사 이원회에게 통보하였다. 드디어 효열정문이 서고 단확의 붉은 빛깔이 아름답게 빛나니 지나는 사람마다 눈물지었다.

별나도다. 조 씨의 효행이여! 뛰어나도다. 조 씨의 열행이여!

내가 갑오년(1894) 겨울에 본영 통제사로 와서 2년이 지난 병신년(1896) 봄에 오위장 김시진이 옛 행장 록을 가지고 와서 다시 그것을 나무에 새겨 오래 전하고자 하므로 그 마음이 가상하여 감회를 여기 적는다.

조종 33년 병신년(1896) 3

가의대부 병조참판 행삼도통제사 풍산 홍남주 짓고

성균관박사 김정우 삼가 쓰다.


2018.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