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08회 일요걷기(미륵산 편백숲 길)

청풍헌 2018. 7. 10. 20:25

미륵 산 편백 숲길 답사기

미륵 산은 통영의 조산이다. 미래에 미륵불이 나타나 현세를 구제할 것이라는 지명의 미륵 산은 통영의 허파요, 전국 100대 명산에 속하는 산이다. 이 숲속에는 용화사와 미래사라는 절이 있다. 미래사에는 편백숲이 있어 피톤치드가 내 뿜는 산책길은 통영시민들이 사랑하는 길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바다100리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용화사 광장의 오래된 막돌 탑을 허물고 인위적인 조형을 하여 옛 맛이 반감 되었다. 우리는 띠밭 등을 지나 미래사를 거쳐 미륵불까지 갔다가 나폴리 농원에서 체험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미래사를 지나 편백 숲 평상을 지나 물총 샘으로 미륵산 허리를 휘돌아 작은 망을 지나 도솔 암, 관음 암으로, 광장으로 원점회기 할 것이다.

 

광장의 용화수원지는 배수밸브를 열어 안전을 꾀했으며 이 수원지는 통영 읍과 충무시를 거치면서 시민들의 생명수로 그 의무를 다했다. 이후 우동 수원지, 둔덕 수원지를 거쳐 남강물의 통수로 완전 해결 된 상수원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용화사의 역사도 호국 사찰로 매김 할 만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미래사 또한 일천 하지만 호봉 스님의 문중으로 법정과 고은 시인이 출가했던 가람이다.

 

용화사 입구의 좌측으로 올랐다. 장마 후라 촉촉한 흙길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녹음이 우거진 흙길을 걷는 내내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통영에 이런 산소 같은 숲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감사이다. 숲은 산소를 내뿜는 허파이다. 임도보다는 흙길로 들었다. 띠밭 등에서 휴식을 취한 후 미래사로 갔다. 바랑하나 내려놓을 곳인 미래사는 60여 년 된 역사가 일천한 가람이지만 편백 숲에 둘러싸인 효봉 문중의 도량으로 성장했다. 효봉 스님이 누구인가?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판사 생활을 하던 중 최초로 사형을 선고하고 몇 날을 고민과 갈등을 하다가 세상을 등지고 방랑을 했다. 금강산에서 석두 스님의 문하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 이후 6.25 때 해남 대흥사가 피안이라 생각되어 그곳으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로 통영을 정하여 용화사로 오게 되어 도솔 암에서 정진했다. 이후 조계종 종정이 되시고 불교 정화운동을 주도하신 선승이었다. 관음보살상이 있는 편백 숲 앞은 한산대첩의 현장이 바라보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나폴리 농원으로 갔다.

 

나폴리 농원은 길사장이 일찍 이곳에 둥지를 틀고 오랫동안 갈고 닦은 곳이다. 신지식인으로 선정될 만큼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농사꾼이다. 백 추출물에 대한 특허를 내었으며 이것으로 각종 창의적인 물품을 생산하고 있다. 화장품, 식품, 오일 등등 많은 재품을 연구하고 생산한다. 또한 편백숲 체험을 개발하여 맨발로 천천히 걸으면서 체험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맨발로 정해진 코스대로 천천히 움직이면 된다. 아주 느릿느릿하게 멍 때리듯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젊고 건강한 숲에서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말에 심호흡은 기본이며 느리게 천천히 가는 것이 기본이다. 숲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산소뿐 이아니라 우울 한 기분을 풀어주며 심신의 안정을 주고 기분을 좋게 한다. 모든 갈등을 내려놓고 근심 걱정도 이곳에다 내려놓고 그냥 즐기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드러누웠다. 기분이 좋았다. 깊이 생각하니 나 자신이 없었다. 본래 없는 나는 이 지구에 와서 아옹다옹 살고 있는 모습이 초라했다. 사람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 정신과 육체도 한줌의 흙으로 사라질 것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숨을 쉬고 여기에 누워서 사색하는 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다시 천천히 이동했다. 해먹에 누워 솔 향과 편백향을 느끼며 누워 있었다. 정말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무념무상이 이런 행복을 주는 것이다. 충분한 휴식과 즐거움을 즐기고 실내로 이동하여 편백 아로마 향이 나는 족욕을 하고 나왔다. 이런 가까운 곳에 좋은 곳이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구동성으로 회원들이 좋아라 했다.

 

가끔은 모든 것을 놓고 쉬어야 한다. 비워야 채워지기 때문이다. 쉼은 채움을 위한 준비이다. 미륵 산은 통영의 허파요 편백숲은 시민의 쉼터이다. 나폴리 농원의 체험은 비움이며 힐링이다. 그냥 즐기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느끼시라! 모든 걸 놓고 즐기시라! 비워라 그래야 채워질 것이다. 가끔씩은 이런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2018.7.8.

108회 통영길문화연대 일요걷기 자료집

1.용화사

신라 선덕여왕(서기 632~646)때 은점화상이 정수사라는 절을 짓고 수행을 하였는데 1260년 산사태로 무너져 3년 뒤에 자리를 옮겨짓고 천택사라 했다. 1628년 불이나 소실되었으며 1752년 벽담선사가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짓고 용화사라 했다. 통제영 축성 당시 용화사의 승려들은 산성의승군에 속했다. 성곽보수, 봉수관리, 종이제조, 군점수조에 동원된 호국사찰이었다.

2. 용화사 수원지

19243월에 용화 수원지를 준공(520/) 사용 했으며

19339~19353월에 용화 수원지 및 문화 정수장을 확장(2,000/)

19383~19406월에 노산 취수장 신설 및 문화 정수장을 확장했다.

196012~196412월에 우동 수원지 수원을 확보(40,4000)했으며

19707월 봉평 정수장을 신설 봉평동 일대에 급수를 했다.

19768월 거제 둔덕계통 상수도를 확장(10,000/)

1989년 남강 광역 상수도가 일시 통수가 되어 물 부족이 어느 정도는 해소됨.

3.미래사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효봉 스님은 안심하고 수행할 공간을 찾아 해남 대흥사를 염두에 두었는데 대흥사는 인민군들의 출몰이 잦아 중간 기점인 통영에서 머물기로 하고 부산에서 창경호를 타고 1951년 어느 봄날 통영에 내렸다. 용화사 조실 영제스님의 배려로 도솔암에 머물렀다. 도솔암에서 동방제일선원을 열고 정진 하다가 용화사 토굴에서 용맹전진 하였다. 효봉 스님은 스승인 석두 스님은 모셔오면서 상좌인 구산스님에게 수좌도 바랑 하나 내려놓을 곳은 있어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1953년 시내와 반대편이지만 수행하기 좋은 곳에 절터를 잡고 고성 이 부잣집의 목재를 배로 싣고 와서 가람을 세웠다. 초대주지 구산 스님은 스승인 효봉스님과 효봉의 은사인 석두스님은 모셨다. 미래사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정진 했는데 이곳에서 법정과 시인 고은이 출가하였다. 효봉스님은 평양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을 전공하고 고등법원 판사로 재직 중 10년째 되던 해 최초로 사형선고를 내리고 갈등을 하다 유랑생활을 하였다. 금강산 석두스님의 문하에 들어 수행 하였다. 이후 보성, 종욱, 여진 스님으로 주지가 이어져 내려온다.

20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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