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명량대첩(정유일기2)

청풍헌 2019. 2. 7. 14:12

정유년 915일 계묘

맑음,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이 있는데 수가 적은 수군이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아 약속하기를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 사나이가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가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김이 있으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치 않은 것이다. “라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꿈에 어떤 신인이 가르쳐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 “고 하였다.

 

정유년 916일 갑진

맑음. 이른 아침에 별망군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명량을 거쳐 곧장 진을 친 곳으로 향해온다. “ 고 했다. 곧바로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게 하니, 적선 130여 척이 우리의 여러 배를 에워쌌다. 여러 장수는 스스로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대하는 형세임을 알고 회피할 꾀만 내고 있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이미 2마장 밖에 있었다. 나는 노를 재촉하여 앞으로 돌진하여 지자, 현자 등의 각종 총통을 이리저리 쏘니, 탄환이 나가는 것이 바람과 우레와 같았다. 군관들은 배 위에 빽빽이 들어서서 빗발처럼 난사하니, 적의 무리가 저항하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했다. 그러나 여러 적에게 몇 겹으로 포위되어 형세가 장치 어찌 될지 헤아릴 수 없으니 온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이 질려 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기를,”적선이 비록 많아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기 어려울 것이니 조금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더욱 심력을 다해서 적을 쏘라. “ 고 하였다. 여러 장수의 배를 돌아보니 먼바다로 물러가 있고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려 하니 여러 적이 물러간 것을 이용해 공격할 것 같아서 나가지도 물러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호각을 불게 하고 중군에게 명령하는 깃발을 세우고 또 초요기를 세웠더니,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점점 내 배에 가까이 왔는데,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도착하였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부르며 말하기를,”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들 어디 가서 살 것이냐? “ 라고 말했다. 그러자 인위도 황급히 적진 속으로 돌진하여 들어갔다. 또 김응함을 불러서 말하기를 ,” 너는 중군장이 되어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피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형세가 또한 급하니 우선 공을 세우게 해 주겠다. “라고 하였다. 두 배가 먼저 교전하고 있을 때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두 척에 지령하니 일시에 안위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어서 기어가며 다투어 올라갔다. 이에 안위와 그 배에 탄 군사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혹은 능장을 잡고 혹은 긴 창을 잡고 혹은 수마석 덩어리를 무수히 난격 하였다. 배 위의 군사들이 힘이 거의 다하자, 내 배가 뱃머리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서 빗발치듯 난사하였다. 적선 3척이 거의 뒤집혔을 때 녹도 만호 송여종과 평산포 대장 정응두의 배가 잇달아 와서 협력하여 사살하니 왜적이 한 놈도 살아남지 못했다. 항복한 왜인 준사는 안골에 있는 적진에서 투항해온 자인데 내 배 위에 있다가 굽어보며 말하기를 ,”무늬 놓은 붉은 비단옷 입을 자가 바로 안골진에 있던 적장 마다시 입니다. “ 라고 말했다. 나는 무상 김돌손을 시켜 갈고리로 배에 낚아 올리게 하니, 준사가 날뛰면서 이 자가 마다시 입니다. “ 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로 시체를 토막 내게 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아군의 여러 배는 적이 침범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일시에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나아가 지자와 현자총통을 발사하니 소리가 산천을 진동하였고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 적선 31척을 격파하자 적선들은 후퇴하여서 다시는 가까이 오지 못했다. 우리의 수군이 싸움하던 바다에 정박하기를 원했지만, 물살이 매우 험하고 바람도 역풍으로 불어 형세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로 옮겨 정박하고 밤을 지냈다. 이번 일은 실로 천행이었다.


노승석 『개정판 교감완역 난중일기』2016 도서출판 여해 p478~481

'통영 > 이순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祝文  (0) 2019.04.03
수군재건로 13(용산-회진)   (0) 2019.03.05
수군 재건 로 12(군학-용산) 걷는다는 것은 자기의 성찰이다  (0) 2019.01.10
기신제  (0) 2019.01.01
2019 신년하례  (0) 2019.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