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수군재건로 13(용산-회진)

청풍헌 2019. 3. 5. 06:24







아이들의 봄방학으로 생각지도 못한 일주일 휴가가 생겼다. 시간 때문에 하지 못했던 답사도 계획하고 경상 우수사님에게 수군재건로 차량답사 안내도 자청했다. 우수사님은 다른 일정 때문에 차량 답사는 무산되고 미답지인 군영구미-회령포 구간에 마음이 쏠렸다. 지난번 답사 때는 집에서 늦게 출발하여 군학에서 용산면사무소까지 걸었다. 용산까지 네비로 확인 결과 약 3시간을 달려야 하므로 07시 출발했다. 수군 재건으로 완보를 목표에 두고 산티아고 훈련 겸해서 걸었다. 


군영구미가 어디인가? 일부 학자들(송찬섭, 박해일, 이은상)은 군영구미를 구수리으로 비정했다. 최 부의 표해록 특별전시 도록에는 당시 강진에서 제주로 가는 길목에 군영포가 있었다. 그 위치는 구수리 인근이었다. 백사정은 바닷가가 확실하다. 왜냐하면 병신년 윤팔월 20일 녹도에서 백사정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장흥부로 가서 자고 병영으로 가 원균을 만났다. 장흥에서 회령진성으로 가는 옛길은 일직선이다. 용산삼거리가 장흥과 령진의 교차점이다. 걸으면서 차분히 생각해보자.




용산면사무소 앞 효열비가 방치되어있다. 故光山李光秀妻宣氏烈行碑(고광산이광수처선씨열행비)이 烈婦李德浩妻南平文氏之碑(열부이덕호처남평문씨지비)이. 천변으로 들어서다. 천변 길은 걷기 좋은 길이다. 수로를 건너기도 하고 논둑길도 걸었다. 관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개울이 끝났다. 보기 드물게 하천의 하류와 최상류 시작점을 본 것이다. 솜털 같은 버들강아지가 새봄을 맞이하고 있다. 


관산(장흥 고읍)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방촌 입구에서 벅수를 보았다. 우측이 남 벅수로 眞西大將軍(진서대장군)의 명문이 있으며 좌측의 여 벅수는 명문이 없다. 방촌의 서쪽에 허한 기를 막는 비보장승인 샘이다. 원형이 잘 남아있는 민속 물이다. 고인돌 군을 둘러보고 방촌 유물관에 갔다. 방촌은 장흥 위씨의 집성촌으로 고려조에는 장흥의 치소였다. 장흥 위씨 집안에서 기증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농경과 주거/음식, 복식문화와 놀이문화, 향반 사족의 유물 및 고문서, 위백규 선생의 존재집 등이 전시되어있다. 


방촌 고가를 둘러본다. 고읍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 위성렬 가옥의 죽암 고택이다. 대부분 집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다. 좌측으로 가면 정남진 전망대로 가는 길이나 그냥 길(23번 도로)을 따라 걸었다. 지루했다. 정남진 전망대를 좌측으로 바라보면서 힘을 내었다. 서서히 지쳐갔다. 들판 가운데 제방을 쌓아 수동저수지를 만들었다. 지루한 길이다. 


회령진성에 들어서 성내로 갔다. 북문, 동문, 남문의 위치를 가늠하고 선창에 다다랐다. 이곳이 판옥선 12척을 계류했던 선소다. 『정유년 8월 19일 정축. 맑음. 여러 장수가 교서에 숙배하는데 배설은 교서에 공경히 맞이하여 절하지 않았다. 그 능멸하고 오만한 태도를 이루 말할 수 없기에 그의 영리에게 곤장을 쳤다. 회령포 만호 민정붕이 전선에서 받은 물건을 사사로이 피란민 위덕의 등에게 준 죄로 곤장 20대를 쳤다.』 교서에 숙배를 한 곳은 객사다.


2019.2.26. 회령진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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