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경상 우수사님과 함께한 수군재건로 답사6-회량진성, 이진성, 우수영, 목포

청풍헌 2020. 8. 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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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답사가 끝나는 날이다. 회령진성과 이진성, 우수영을 목표로 삼았다. 먼저 회령진으로 이동했다. 회령진은 이순신 장군이 배설에게 전선 12척을 인계받은 곳이다. 이곳에서 배설이 교서에 숙배하지 않아 그의 영리에게 곤장을 쳤던 곳이다. “819일 정축. 맑다. 여러 장수들이 교서에 숙배하는데 경상 수사가 숙배하지 않았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의 이방과 영리에게 곤장을 쳤다. 회령포 만호 민정붕이 피난인 위덕의에게 술을 얻어먹고 전선을 함부로 내어준 죄로 곤장 20대를 쳤다. ”복원된 성벽을 따라 걸어서 성안으로 들어섰다. 성안의 길 이름이 북문길, 동문길, 남문길 등의 지명을 사용하여 이곳이 회령진성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했다. 비록 성문과 성벽의 흔적은 없지만 이름이라도 기억되게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바닷가로 내려와 선소를 가늠하고 이진성으로 향했다,

 

이진성으로 가는 길은 마량에서 고금도-신지도-완도를 거쳐 갔다. 서남해안에 여러 섬에 다리가 놓여 사통팔달 교통은 매우 좋아졌으나 여러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나의 지론은 섬은 섬으로 남이야 고유의 가치가 있다. 지역과 문화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섬만의 고유한 문화가 차후에는 큰 자신이 될 것이다. 교통 문제는 다른 방법으로 풀면 될 것이다. 이진성은 처음 가보는 곳이다. 일기를 살펴보자. “820일 포구가 몹시 좁아 이진으로 진을 옮겼다. 몸이 불편하여 끙끙 앓았다. 821일 도와리(곽란)가 나 몹시 앓았다. 소주를 마셨더니 인사불성이 되었다. 토사곽란을 하며 밤새 앓았다. 823일 배에서 내려서 잤다.” 이진성은 장군이 몹시 앓았던 곳이다. 마을 입구에서 본 이진성은 성벽이 잘 남아있었다. 북문 입구에는 치와 우물이 남아있고 생태탐방로가 잘 정비되어있었다. 마을 중앙에는 만호비가 3기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돌확도 네 개나 보관되어 있었다. 우리는 전망대를 올랐다. 화살을 하던 시누대 밭을 지나 전망대에 오르니 전체 조망이 가능했다. 우수사님의 기억대로 바닷가 산책로를 가기 위하여 반대편으로 내려서니 개인주택을 정비하고 있어 물어보니 길이 없단다. 포기하고 다시 전망대로 올라와 안내판이 있는 다른 길로 내려오니 야자매트가 깔려있고 더 내려오니 가정집 뒤란으로 나왔다. 대문을 열고 나와 차를 타고 바닷가로 이동했다. 포구를 확인하고 정자에서 쉬면서 선소를 가늠했다.

 

열선루님과 12시에 목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여 우수영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우수영은 명량대첩이 있었던 곳으로 동헌 터 발굴 작업이 한창이라는 정보를 듣고 그곳과 방죽샘만 확인하기로 하고 이동했다. 문내면사무소 터가 동헌 터이다. 입구에 발굴안내 플래카드가 있어 사진을 찍고 좌측에서는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양해를 구해서 사진을 찍었다. 본래 발굴 터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금하며 사진도 못 찍게 한다. 우리는 넉살좋게 일단 들이대고 자료를 보여주며 이순신 장군의 수군재건로의 흔적을 따라오는 중이라 이야기하면 대부분 수긍하고 협조했다. 면사무소 안을 들어가면 책임자가 있다 하여 가보라고 했다. 뒤편에는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발굴 책임자가 보여 기회를 보아 인사를 했다.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료를 보여주니 설명을 해주신다. 공감하는 바가 있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굴 현장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트랜치, 유구, 와편, 적심, 초석 등등의 설명을 듣고 우리가 가진 자료를 설명하니 본인도 가보고 싶어 한다. 한 부 남은 자료를 드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목포로 이동했다.

 

열선루님과의 약속장소인 목포연안여객 터미널에는 주차전쟁이 벌어졌다. 휴가철을 만나 섬으로 들어가는 휴가객들의 차량으로 주차할 곳이 없었다. 겨우 잠시 주차할 것을 허락받아 약속 장소에서 반갑게 해후를 했다. 바쁜 가운데 이렇게 광주에서 목포까지 나와 주시어 감사했다. 경상 우수사님의 지론이 나이가 들면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는 재미로 산다는 지론에 나도 적극 동의했다. 우수사님에게 기회를 주자는 의견에 동의하고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CU 편의점으로 이동하여 한 잔의 커피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우수사님을 목포 KTX역으로 모셔드리고 통영으로 귀가했다.

 

23일 동안 많은 곳을 이동했다. 어른을 모시고 다닌다는 것이 꽤 부담되었지만 타고난 강공 체질에 컨디션을 잘 조절하신 덕택에 아무 탈 없이 답사를 마쳤다. 늘 함께 답사를 하지 못하여 마음에 거렸었다. 이순신 정신을 위하여 무료 봉사와 안내를 자청하시고 이배사의 귀감이 되고 몸소 실천하는 등불이신 경상 우수사님의 답사를 돕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지난 2월에 시작된 계획이 미뤄지고 더는 미루면 영원히 후회할 것 같아 시간이 허락하고 때가 맞아 진행했었다. 놀러 간다면 두 번은 가지 않지만 공부하러 답사 가는 길은 기쁜 마음으로 다녔다. 여러 번 가도 그때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으며 다시 생각할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는 것이 답사의 묘미다. 마음에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흘러가 버리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나도 남에게 베푸는 즐거움을 가지려 한다.

202081~3일 경상 우수사님과 함께 수군재건로 답사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