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경상 우수사와 함께한 수군건로 답사기4-녹도진, 절이도 해전, 발포진, 사도진, 여도진

청풍헌 2020. 8. 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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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흥양의 4포를 답사할 것이다. 이배사에서 2014년 정규 답사를 한 곳이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갈 것이다. 날씨가 더워 아침 일찍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차를 주차하고 녹도진의 쌍충사를 올랐다. 쌍충사는 녹도만호 정운 장군과 이대원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입구 두 곳에 홍살문이 있어 양위를 모셔서 홍살문이 두 개인가 하고 의심이 들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사당은 들어갈 수 없어 뒤쪽의 공원에 가서 둘러보았다. 정운 장군과 이대원 장군의 동상이 있으며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쌍충사 입구에서 좌측으로 성벽을 복원해 놓았는데 완벽한 현대식으로 복원했다. 또 언덕 중간에 방치된 비석이 있어 확대 촬영하여 보니 증병조참판충신(贈兵曹參判忠臣)*** 였다. 이도 입구로 이전하여 함께 보존했으면 한다. 녹동항의 확장으로 녹도진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절이도 해전 공원으로 이동했다. ‘전라도는 내 땅이요하신 열선루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절이도 해전 공원을 안내받아 소록도를 거쳐 거금도로 갔다. 거금도의 옛 지명이 절이도이다. 거금도 입구의 공원에 새로이 절이도 해전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절이도는 목장성이 잘 남아있는 곳으로 6년 전 답사 시에도 목장 성을 올라간 기억이 있다. 절이도 해전 공원 입구에는 중국의 화포인 불랑기와 조선의 화포인 현자총통을 전시해놓았는데 현자총통의 크기가 천자총통만큼 컸다. 속은 비어 양철 소리가 나고 조잡하게 제작되었다. 안개가 자욱하여 해전지를 가늠만 하고 발포진으로 이동했다.

 

발포진은 여러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발포역사 기념관이 있고 충무사가 있으며 성벽을 일부 복원해 놓았고, 굴강과 만호 비가 있는 곳이다. 발포역사 기념관은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고 굴강을 한 바퀴 돌았다. 전선이 드나들던 곳이라 큰 판옥선은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워낙 변화된 굴강이라 당시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리라 생각된다. 만호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이순신이 장교로 첫 부임하신 곳이란 표식에 왔다. 우리는 성벽을 따라 충무사로 갔다. 충무사 계단을 오르니 문이 잠겨 있어 아래를 바라보니 관리인이 문을 열어주겠다고 하여 기다리다 들어갔다. 정당의 문을 열어주어 참배를 했다. 방명록에 기록하고 관리인과 제향에 관하여 나누었다. 428일 탄신 다례제를 봉충회에서 주관하여 지내며 제관은 5명이라고 했다. 홀기에 대하여 물어보니 따로 없고 군에서 양식을 보내와 그대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제물진설도와 홀기 해설집을 확보하고 내려왔다. 성안으로 들어서면 박석 공원이 있다. 오동나무 청렴 공원을 군에서 만들어 놓았는데 5그루의 오동나무 앞으로 4줄의 박석이 깔렸는데 두 줄만 이름을 세기고 두 줄은 비워져 있었다. 우수사님은 본인의 박석과 아들, 손자의 이름까지 찾아 기뻐하셨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박석을 직접 찾는 즐거움을 가졌다. 이배사의 열혈 회원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중국인을 만나 어떻게 여기를 왔는지 물으니 본인은 중국의 골프 여행사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출국하지 못하고 전국 팔도를 3개월째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 지역을 두루 둘러보면 앞으로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조언했다. 우리는 다시 사도진으로 향했다.

 

사도진의 기억은 큰 은행나무와 첨사 비가 기억났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계서 인사하고 물어보려고 말을 거니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며 오기를 거부했다. 낫선 사람을 코로나 때문에 경계하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되었다. 급히 차에서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작 본인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휴지로 입을 막고 대화를 시작했다. 이곳이 사도 첨사 진성이 있었던 곳이라 하니 첨사 동헌을 헐어 점암 면사를 짓는 데 사용하고 다시 팔아서 내발 마을 인근에 집단으로 집을 지었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큰 성돌이 나와서 묻기도 하고 헐어 담장이나 선창을 쌓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은행나무를 찾아가는 길에 돌확을 두 기나 보았다. 골목 어귀에 돌확이 두 개나 뒹굴고 있었다. 은행나무 있었던 곳에서 전방을 살피고 내려와 은행나무를 확인하고 마을 회관 있는 곳으로 가 첨사 비를 확인했다. 한 기는 온전한 채로 남아있었고 한 기는 거북 모양의 부(받침대)만 남아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여도진성을 찾아 이동했다.

 

여도진은 전남 고흥군 점암면 여호한길목길 49-7이다. 네비게이션을 잘못 읽어 팔영 대교 쪽으로 왔다, 입구에는 플리마켓이 열려 여기서 마스크 걸이를 사고 우수사님이 옥수수가 맛있다 하시며 세 봉지 샀다. 다시 여도를 향하여 이동했다. 마을 입구의 옛 만호 비석 군을 보니 6년 전이나 다름없었다. 허름한 축사 같은 곳에 수풀이 우거진 채 초라하게 서 있다. 마을로 들어서서 동네 상점에 사람들이 있어 물어보니 성벽이 많이 남아 있으며 저쪽으로 올라가도 된다 하여 골목길을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능선을 올라서니 성벽이 남아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확인 하고 위로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바닥에는 와편이 즐비했다. 옆으로 이동하며 성벽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다시 위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한 바퀴 돌았다. 반대쪽으로 내려오는데 빗물에 파인 패총이 보였으며 와편과 도기가 조개껍데기와 함께 켜켜이 쌓여있었다. 마을 어른이 계셔 이것저것 물어보니 귀찮아하신다. 올 때마다 물어만 보고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며 오히려 개발이 안 되었다고 불평하신다. 여러 사람들이 왔다갔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이 조사만 해간다고 한다. 6년 전보다 더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벌교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쌍충사 입구

도촬???

정당

정운장군

기념사진

복원 성벽

현자총통?

크기는 천자총통, 기록은 현자총통

절이도 해전 공원에서

선착장

굴강

발포만호 비

이충무공 계시던 곳

발포진성

충무사

충무사 정당

참배

방명록

청렴박석

아들

오동나무 공원 기념

사도진 돌확

600년 은행나무

사도첨사비

여도만호 비

여호리 마을 

여도진성1

여도진성2

여도진성3

여도진성4

여도진성5

와편

여도진성6

여도진성7

도자기편1

도자기편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