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경상 우수사와 함께한 수군재건로 답사5-조양창, 양산항의 집, 열선루, 해창, 장흥

청풍헌 2020. 8. 7. 21:50

조양창 터로 찾아가는 길은 주소를 잘못 적어 인식을 하지 못하여 겨우 찾아갔다. 도보답사 때에는 저녁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어둑할 때 열선루님의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 우물터를 찾았는데 우물에 담장을 쌓고 지붕을 올려 근사하게 지어놓았다. 조양창고 터를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이쪽인지 저쪽인지 골목길만 두어 번 돌다 나왔다. “김안도의 집에 이틀 밤이나 잤다라고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김 안도의 집은 고증을 하지 못했다 한다. 박곡 양산항의 집으로 이동했다.

 

양산항의 집은 전남 보성군 득량면 송곡리 308이다. 이 집 대문을 들어서면 신비하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는데 대문이 바뀌었다. 마침 주인이 있어 인사하고 4년 전 사진을 보여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서 3일 밤을 머물고 장계 7통을 써서 각지로 보낸 곳이다. 마당 수돗가에는 돌확이 두 개나 보였다. 잘 간수할 것을 당부하고 열선루로 향했다.

 

보성군청 정원에 있었던 열선루 초석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복원한 열선루를 찾아서 공원 꼭대기로 올라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을 식히고 건물을 확인했다. 건물은 웅장하게 지어졌으며 아직 준공검사가 안 났는지 울타리로 막아놓았다. 열선루에서 수군를 폐하라는 장계를 받고 금신전선(今臣戰船) 상유십이(尙有十二)’라는 장계를 올린 곳이다. 일정상 오늘은 장흥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백사정은 벽사 역이며 군영구미는 해창 마을로 고증한 열선루님의 박사논문에 따라 먼저 해창마을로 이동했다. 해창 마을은 이곳이 선소였으며 세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아무런 표식도 없고 동네 사람들도 어른들만 옛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장흥부사의 비가 울타리로 쓰인 당집을 확인하고 상당인 산신당을 확인하기 위하여 올라가다가 어느 아주머니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21살 때 이곳으로 시집와 81세가 되었는데 지금은 살기 싫다 하시며 어쩔 수 없어서 살고 있는데 죽어서 나갈 것이라 했다. 본인이 시집올 당시는 100여 호가 살았으며 술집에 다방과 여관이 즐비하게 있었다고 했다. 양쪽 언덕배기가 전부 집터이며 마을 앞에는 큰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통운배가 비료를 싣고 와서 젊은 시절 비료를 이고 창고로 내려주면 돈을 받곤 했다고 기억했다. 바닷가 선창에 이르러 선소를 가늠했다. 쇠락한 마을을 보는 것 같아 쓸쓸했다. ‘전라도는 내 땅이요 ‘‘ 하는 열선루님에게 부탁하여 장흥에 숙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고 장흥으로 이동했다.

 

모텔을 찾아 안내소에 가니 세상에나 예약을 하면서 계산까지 했었다. 어젯밤 고생한 것을 생각하여 부탁했더니 이렇게 계산까지 할 줄이야. 감사한 일이다. 온돌방이며 넓어서 운동장이었다.. 저녁을 먹고 쉬기로 하고 토요시장의 장흥삼합을 맛있게 먹고 충분한 휴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