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경남의 백의 종군로 난중일기 따라가기4

청풍헌 2021. 1. 29. 22:07

안위의 배에서 하룻밤 잔 후 다음 날 식후에 남해 현령 박대남이 있는 곳에 가니, 병세가 거의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싸움 말을 서로 바꿀 일을 다시 이야기했다는 언급은 남해 현으로 갔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있어 백의종군로를 남해읍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곤양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원수부에 장계를 보내고 십오리원에서 배백기(배흥립) 부인을 만났다. 십오리원은 현 원전마을이다. 이곳에 내려 원 터를 가늠해보았다. 전에 유숙했던 이희만가에서 잤다. 다음 날 이홍훈가로 옮겨 잤다. 이홍훈가는 복원을 해놓았다. 답사 때 본 은행나무를 둘러보고 다시 강정으로 갔다. 이때에는 일기에 정개산성아래 송정(松亭)이라 했다. (早食往于鼎城下松亭下)

 

진주 수곡 딸기가 유명한데 딸기를 사기 위하여 이곳저곳 들렀으나 하우스에 사람이 없어 겨우 한 곳에 들러 부탁하여 딸기를 샀다. 곧장 손경례가에 들러 충무공이순신장군삼도수군통제사재수임사적지 비석을 확인하고 진배미로 갔다. 진배미에서 일정을 종료하고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우수사님을 내려 드리고 귀가했다.

 

8월의 일기를 살펴보자.

“82(경신) 잠시 갰다. 홀로 병영 마루에 앉았으니 그리운 마음이 어떠하랴. 비통함이 그치지 않는다. 이날 밤 꿈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83(신유) 맑음. 이른 아침에 선전관 양호(梁護)가 뜻밖에 들어와 교서(敎書)와 유서(諭書)를 주었는데, 그 유지(有旨) 내용은 곧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 숙배한 뒤에 삼가 받았다는 서장(書狀)을 써서 봉해 올렸다. (하략)“

 

이후에는 수군 재건을 위한 행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