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별로

통제사의 길 복원 답사기1

청풍헌 2012. 3. 26. 21:54

2012년 3월 8일 09:30~15:05

김일룡 통영 향토사 연구소장님과 통제사의 길을 복원하는 사업으로 사전 답사를 하고자

3월8일 목요일 9시 30분에 문화원에 집결 했다.

여러 어른들이 있었으며 문화원 사무국장과 합이 7명 이었다.

문화원 정문에서 기념 촬영후 걸어서 세병관까지 이동했다.

 

 

세병관앞에서 기념촬영했다.

좌로부터 김성완 문화원 사무국장,강기재 수필가 이사님,조철곤 한산면지 주필 이사님,김순효 감사님

김일룡 향토사 연구소장님,김건식 이사님,본인 김용재이다.

김일룡소장님의 선두로 우측 골목으로 출발했다.

소장님의 설명으로 좌측의 위에있는 건물이 운주당이며 이 건물은 통제사의 집무실이다.그 옆의 건물이 숙소이다.

우측 아래에 있는 건물이 영리청 건물이다.영리들이 기거하고 업무를 보던 곳이며 이 건물은 세병관과 동년대의 건물이다.

지금은 법륜사 법당으로 사용하며 곧 이전 한다고 한다

다음 아래 건물이 옛 마방터라고 한다.말을 관리하던 곳이란다.

 아래 큰길로 내려와서 북문지 가기전에 북문내로변정에 갔다.즉 안새미 이다.

 

 

우물 벽면에 글씨가 있는데 이 글은 통영 갑부 김덕보가 우물을 중건 하면서 우물돌 옆에 글씨를 썼다고 한다.

당시의 동장이 정완수 였다.

밖새미는 도로를 신설 하면서 도로에 묻혀 아쉬워 했다.북문지터에 와서 이곳이 북문지다.

담벼락 아래 구멍을 보며 이것이 성문의 배수구다.담벼락의 돌도 성벽의 유구로써 가공된 돌이다.

이곳 북문지 아래가 미나리깡이었다.미나리는 비타민이 많아서 쉽게 기를 수 있어 미나리를 길렀다고 한다.

 

외부인이 통제영을 들어올때 통제사는 북문으로 들어오며 관리나 정식적인 행사시에는 동문으로 출입 했으며

일반 백성들은 남문으로 출입 했다고 한다.

그래서 통제사의 길은 이곳 북문에서 시작된다. 

옛 골목길에 추억을 더듬으며 내려간다. 

북문길! 

무시무시한 철조망이 처진 울타리.

어느 한양의 선비가 귀양와서 위리안치된 곳인가? 

골목으로 내려오니 그물 공장이 있던 기와집이 나타나는데 집이 비어 있어 폐가가 되었다.

숙소로 쓰던 안채와 공장건물이 있다.

이곳이 소장님의 이모부가 계시던 곳이라 기억이 훤 하다고 하신다.

운동장 가는 길로 나왔는데 운동장 쪽이 우시장 터다.

길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한다.

희미하게 남은 골목길은 이렇게 좁아졌다. 

길 중앙쪽으로 걸어가면 시청 정량동 방향의 도로가 나온다.

여기서 길을 건너서 좁은 골목으로 올라가면 가파른 까꾸막이 나온다.

시청 정량동 방향의 길에서 도로를 건너기 위하여 기다리는 답사팀들. 

좁은 골목길을 오른다. 

이 고개마루가 해미당 고개다.

현재의 북신동 길은 당시 갯가로서 지금 이곳이 대로였다고 한다. 

지금은 한사람이 겨우 다닐수 있는 소롯길로 변했다. 

 언덕부 정상이 공동묘지 였는데 아직도 산소가 한기 있다.

침대 받침으로 울타리 쳐진곳에 보니 산소가 있다.

이곳 언덕 꼭대기에 무덤이 많았다고 한다.

계속 오르면 산먼당이 나오는데 이 먼당이 해미당이다.

해미당은 할미당이 변한 것으로 천황당,성황당 같은 뜻으로 돌을 쌓아놓고 길손의 안녕을 빌던 토속 신앙적인 요소가 있다.

고성 해미당이 있으며 거제 해미당도 있다고 한다.

 조금더 가니 효열각이 나온다.

이 효열각은 허씨 문중에서 세운 비각으로 대로변에 문중을 자랑하기 위하여 세웠다.

문중의 자랑거리인 효열각을 도로변에 세워 오가는 사람이 보도록 했다.

열부 효부는 가문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잣대로는 글쎄? 

 입구의 지붕과 기둥은 쓰러져 비각안에 있다.

언덕은 넘어 골목을 내려오니 구 경찰서 윗길이다.

구 경찰서를 리모델링 하여 시청 제2청사를 사용하는데 겔러리 이름이 해미당 겔러리이다.

이 이름도 소장님이 찾아줬다고 한다.

 계속 가로질러 가니 북신동 보건소 가는길과 마주친다.

이쪽은 바닷물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그 윘쪽이 미나리 깡이었다.

최근까지 미나리 밭이었는데 지금은 도시계획이 풀려서 원룸촌으로 변했다.

미나리 깡이 북문지 아래와 유영초등학교 앞 이곳 북신동 위가 미나리깡이었다.

보건소에서 휴식을 취하고(10:30)말구리로 이동 했다.

말구리 가는 길이다.말구리는 말을 관리하고 쉬어가던 곳이었다.

이곳은 횡단보도가 없는 곳으로 차량 통행이 매우 많은 곳이다.

 

 

조금 더 가니 호국참전 유공자탑이 있다.

못보던 건데 이동하여 이리저리 사진찍고 오니 설명을 못들었다.

옛날 통제영을 들어오는길이 고성에서  배를타고 들어와

작은개로 내려 목장승을 지나 명정고개 석장승을 지나 남문으로 들어 왔다.

그 석장승이 하나는 목이 없었는데 지금은 복원을 하여 서있다.

석장승이 통제영과 역사를 같이하는 중요한 징표다.

국도 14호선의 아래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옛길.

이 길가에 있던 각종 효행비는 길 위족으로 이전을 했으며 아직 그 자리는 각종 돌맹이가 나뒹군다.

엉덩이를 곧추 세우고 무었을 심고있는지?

전시행정의 표상이다.

비싼 수입 야자수를 심어 남국의 정취를 풍기게 한다는 발상으로 혈세를 낭비한 공무원은 아직도 건제 하겠지?

결국 종려나무로 대체하고있다.

원문 검문소

소장님! 여기가 원문이 맞습니까?

그 질문이 나올줄 알았다며 따라오라 하신다.

도로를 건너 골목아래로 내려간다.

원문마을 회관과 노인회관을 지나 골목으로 내려갔다.

뭔가 알고계신듯 하여 따라서 내려갔다.

 

김일룡 관장님은 젊은시절 통영의 향토사에 관심을 가지고 미친듯이 다녔다고 하신다.

각종 자료수집을 했으며 직접 발로 답사하고 주변 산과 해안 섬 등을 답사하여

채록하고  사진으로 남겼다고 하신다.

과히 지역 향토사의 보고임에는 틀림없다.

알고계신 향토사를 집필 하시어 후세에 길이 남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통제영의 입구인 원문轅門을 찾아 나선다.

 

2012.3.8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