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길문화연대

문학의 길

청풍헌 2023. 9. 10. 23:03

 

179회 토요 걷기(문학의 길)

 

통영길문화연대의 연간 걷기 계획에 따라 9월 둘째 주는 문학의 길이다. 문학의 길은 문학 지도에 있는 두 개의 코스(박경리 길, 문학의 길) 중 두 번째 길이다. 문학지도는 남해의 봄날에서 2014년부터 프로젝트를 수행한 지도로써 장인지도와 문학지도, 공연지도를 제작하여 통영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했다. 코스 개발과 스토리텔링은 통영길문화연대와 함께 했으며 지도 3종의 스토리를 묶어 통영예술기행을 출간했다.

문학의 길은 통영 출신의 많은 문인이 나고 자라고 작품을 구상하고 쓴 작품의 현장을 함께 걸으며 생각해 보는 걷기 행사이다. ‘걸어서 통영을 만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통영을 구석구석 누비며 걸었는데 사실 문학의 길도 여러 차례 걸었다. 매너리즘에 빠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 고민을 해결하고자 시민학교의 '빗자루 타고 문화 기획하기'에도 참여했으나 뚜렷한 대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현장에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었다.

강구안의 새로 만든 누각에서 10명이 모였다. 회원들이 참여할 방안을 버스를 타고 오면서 생각했다. 문학의 길에는 시인과 소설가가 있다. 그중 시인의 시에는 꽃에 대한 시가 있다. 김춘수의 꽃, 김상옥의 봉선화가 대표적인 시다. 각자 꽃에 대하여 떠오르는 생각을 서로 나누기로 하고 남망산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꽃 시비를 지나 남망산으로 오르면 김형근 화백의 자택이 있다. 통영국제음악제를 남망산 문화회관에서 시행할 때 야간에 백목련 아래로 지나면 향기와 꽃에 취했던 기억이 있다. 백목련이 있는 집이 김형근 화백의 자택으로 미술관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자택이 공원 지역으로 묶여 개인 미술관을 지을 수 없는 부지가 되었다. 그런데 향년 94세로 97일 타계했다는 부고장이 떴다. 1970년 과녁으로 제17회 국전에 대통령상으로 입상했으며 미국 뉴저지시에서 작품활동을 했고 은백색의 화가로 호칭되었다. 통영의 화가 1세대들이 거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작년에는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이한우 화백도 세상을 떠났다.

남망산 공원에는 시비가 둘 있다. 하나는 청마 유치환의 깃발이며 초정 김상옥의 봉선화 시비도 있다. 청마의 깃발 시비는 1974년 충무청년회의소에서 세웠다. 우리는 시비 앞에서 시를 읽으며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추억에 젖었다. 디피랑 구조물을 지나 조금 오르면 초정 김상옥 선생의 봉선화 시비가 있다. 본래 길 아래에 있었는데 구석이고 아래쪽이라 잘 보이는 위쪽으로 이전을 했다. 초정의 시비 앞에는 봉선화를 심어놓았다. 귀선 씨가 봉선화(鳳仙花) 꽃을 따 손톱에 물을 들였다. 봉선화 시를 읽으라 했는데 이희영 씨가 봉선화 시를 외워서 낭독했다. 통영 사람은 국민교육헌장외우듯 이나 봉선화를 대부분 외우고 있었다. 정말 통영다운 사람들이다. 남망산 정상의 이순신 동상에 묵념하고 공원 입구로 내려왔다.

보래화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산다고 하여 CAFE OPPEN에 가서 상화목장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인데 출산율의 저하로 초등학교가 폐교됨이 연상되었으며, 젊을 때는 사느라 바빠서 꽃을 느낄 새도 없었으나 나이가 들어 지금은 돌아볼 여유가 있어 꽃이 아름답게 여겨진다고 했다. 또 지금 보이는 꽃들은 예전 어릴 때 보았던 꽃들이 아니다. 외래종의 꽃들이 점령하여 토종의 꽃들이 사라짐을 느낀분도 있으며 어머니가 손톱에 봉선화 물들이던 생각이 나 어머니도 여자였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다.

중앙동사무소까지 인도 개설작업이 한창이다. 이 구간은 통영길문화연대에서 작년에 보행환경조사를 하여 인도를 내어달라고 시청에 건의했었다. 아무튼 인도 개설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니 우리의 관심이 작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오랜만에 데파트를 구경하자는 말에 데파트에 들어갔다. 데파트는 아파트와 상가가 동시에 있는 구조로서 통영에서 오래된 상가이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김덕보 여사가 땅을 희사하여 통영 경찰서를 세운 자리다. 각종 잡화와 옷 가게, 신발가게 등의 상가가 있다.

세병관에 올랐다. 세병관 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영의 문화예술인들이 대부분 세병관에서 교육을 받았었다. 어릴 때의 세병관에서의 교육이 자라면서 여러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어린이들은 세병관에서 어떤 기억을 가지는지 궁금하다. 문화는 연결되고 이어져야 한다. 지금이라도 어린 학생들이 세병관을 드나들며 그 뜻을 공부하여 소양을 쌓고 그로 인하여 좋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면 한다.

통영청년단 건물에 왔다. 통영청년단 건물은 통영여중이 한 때 있었다. 유치환은 이곳에서 국어 선생을 하면서 정운 이영도 여사을 사모하여 편지를 썼다. 유치환의 아내 권재순 여사가 하는 문화유치원이 충무교회의 부속 건물이었으며 통영문화협회가 있던 영산장이다. 청마는 통영우체국에서 이영도 언니의 수예점에서 수를 놓고 있는 이영도를 바라보며 편지를 써 우체통에 붙였다. 우리도 우체국 계단에 앉아 이영도 여사에게 사랑의 하트를 날렸다.

새로 오신 박 선생께서 점심을 산다는 말에 동피랑 입구의 충무김밥 집에서 맛있게 김밥을 먹고 걷기를 마쳤다.

통영의 걷는 길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회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