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16회 토요걷기(이야~길1-2)진남 쥐꼬랭이와 두룡 똥바가지의 대결

청풍헌 2013. 7. 15. 00:41

 통영인뉴스 창간 2주년 기념 초청 강연

통제영 전문가 김현구 박사 초청 강연회

"통제영 복원-통영사를 묻다"

 

통영인뉴스가 창간 2주년을 맞아 통제영 전문가 김현구 박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통영사람통영으로 라는 케치프레이즈로 인터넷 신문을 창간한 김상현 대표는

한산신문에서 대기자로 인정받은 탄탄한 직장을 나와 통영사람 통영속으로를 몸으로 마음으로 실천하는

지역의 진정한 언론인의 한사람으로 자리매김하는 바탕이된 2년이었다.

 

1주년 때는 제주 올레의 창시자 서명숙 이사장의 초청 강연이 있었으며 올해는 통제영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관점을 벗어나 밖에서 보는 통영과 통제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강사을 초빙 하였다.

통제영 복원 완공을 눈앞에 둔 싯점에서 앞으로 통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를 갖고자 강연을 한다고 했다.

 

<강연요약>

본인은 연해 지역사를 연구 하면서 통제영의 중요한 위치를 본인의 관점에서 깊이 연구를 했다.

1.한산창에 대한 소고

2.두룡포 기사비의 중요성

3.명조 팔사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

4.통제영 복원 건물에 2%부족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했으며

 

마지막에 통영의 문제점을 짚어 주셨다.

1.통영이 너무 임진왜란의 충무공 이순신에 묶여있다.

  300년 통제영의 역사는 다른 남해안의 이순신 연관 도시와의 차별화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인데

  임진왜란과 이순신에 묶여서 차별화를 이루지 못했다.

2.통제영의 역사는 광역성을 가진 역사인데 그러지 못한 면이 있다.

  삼도(경상,전라,충청)를 관할하는  광역성의 역사인데 통영이라는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닌 전국 더 나아가 세계화와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막료진에 삼학이 이었는데 심약(진상용 약제관리),한학(황당선의 청인 통역),왜학(표류 왜인의 통역)등은

  세계화를 아우를 수 있는 조직이었다.

3.통제영 역사에 사람이 빠져있다.

  건물만 복원하는게 전부가 아니다.

  그에 맞는 콘텐츠 개발이 중요한데 당시의 208(209)대의 통제사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

 

이러한 지적은 지역의 향토사를 연구하고 관심이 있는 시민에게 큰 숙제를 안겨 주셨다.

오늘 걷는 토요걷기 코스도 이러한 맥락에서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토요걷기 공지 합니다.

통영의 정신적 자부심인 충렬사를 참배하고 문화 예술의 향기 가득한 이야~길1-2코스를 탐방 합니다.

일시: 2013.7.13(토)  10시 세병관앞 벅수

코스: 통영청년단회관-충렬사-해방다라-군청(박물관)-윤이상 공원-착량묘-해저터널(우천대비 우의,우산준비)

 

지난번 14차 토요걷기를 이야~길 1-1을 걷고 오늘의 나머지 길을 찾아서 걷고자 한다.

이 길도 통영의 알짜배기 코스이다.

 

충렬사 앞에서!

충렬사는 통영의 정신적인 중심이자 자부심이다.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 향사와 탄신제 한산대첩 고유제등 네번의 제향을 모시는 신성한 곳이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충렬사 하면 청소하러 왔던 기억만 있다고 한다.)

 

9시 40분경 시내버스를 타고 약속장소로 오는데 소나기가 억수같이 온다.

왠만한 빗줄기면 우산이나 우의를 입고 걸어도 운치가 있을건데 이건 아니다.

이동중에 전화가 왔다.이렇게 비가 오는데 약속장소에 갈까요?

글쎄요.이렇게 많아오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저는 버스를 타고 일단 약속장소에 갑니다.

버스를 내리니 빗줄기가 많이 약해졌다.

약속장소인 벅수앞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늘의 일정을 설명했다.

 

세병관 입구에 있는 벅수는 광무 10년(1906)동락동 주민들이 벅수계를 모아서 세운 비보장승이다.

통상 벅수는 한쌍으로 세우나 특이하게 이곳의 돌벅수는 토지대장군 한 기만 서있다.

매번 토요걷기에 참여하시는 강혜원 부의장님에게 부의장님! 100여년을 홀로 서있는 돌벅수가 너무 외로워 보입니다.

이참에 중매를 서 장가보내기 운동을 하시는게 어떻습니까?

몇년전 명정고개의 벅수도 새 할머니를 얻어 장가를 갔는데...

 

관창골 새미(西舊上路邊井)를 지나 구 통영청년단 건물에 왔다.

이 건물은 근대문화유산으로 통영에서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으로 순국한 세 열사(고채주,이학이,허장완)를 기리고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하여 기금을 모금하여 세운 청년단 회관이다.

이후 통영 근대화의 산실이된 소중한 역사유적이다.

서문 까꾸막을 지나 충렬사로 간다.

△ 정비중인 세병관 입구

△ 위풍 당당한 모습의 세병관

 

 

충렬사는 1606년 이운룡 통제사때 왕명으로 이순신 장군의 위폐를 모신 사당을 세우고 제향을 했다.

통제영 시절부터 통영의 정신적인 자부심이며 중심이었다.

그 정신적인 중심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모든 행정과 보이는 건물,유형적인 중심이 세병관 이라면 사상적 정신적 무형적인 중심축은 충렬사다.

이곳에서 매년 춘계 추계 및 탄신제와 한산대첩 고유제등 네번의 제향을 지낸다.

너무나 중요한 유물과 유적이 많이 있는 충렬사는 통영의 중심으로 우뚝서 있다.

강한루,외삼문,경충제,숭무당,서제,동제,내삼문,사당(정당)이 있으며 충렬사 팔사품,수조도 병풍,충무공전서,어제사제문등

소중한 유물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한때 이곳에 일본 전나무가 세력을 벋치고 당당히 서있어 뜻있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지적으로

이번 경충제 보수공사시 제거 되었다.

역사가 세겨진 나무 이야기(박상진)라는 책을 읽고 확인한 결과 일본 전나무임을 알고 개인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었는데

http://blog.daum.net/backsekim/42결국 제거 되었다.

일부에서는 나무 한두그루가 무슨 대수냐 하지만 이곳은 통영의 자부심이며 정신적인 중심이므로 신성한 곳이다.

http://blog.daum.net/backsekim/428

일제 강점기 일인들이 일부러 심은 나무라면 반드시 제거되어야 마땅 했었는데 정말 잘 되었다.

나이테를 세어보니 약 80년 되었다.지금부터 80년 전이면 1933년 생이다.

 

△ 잘려진 일본 전나무 그루터기

△ 사당(정당)

△ 참배를 마치고

 

△ 홍살문(정2품 이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 세워진 문)

△ 서문고개

 

 

충렬사 입구에 있는 통영명정(明井)은 정당새미라고 한다.

윗샘을 일정이라 하고 충렬사 제향에 사용 했으며 아랫새미는 월정이라 하여 동네 주민이 사용 했다고 한다.

통영이 반도 지역이라 물이 귀하여 가뭄때에는 온 동내 주민들이 나와 물을 길어가곤 했다.

천희들의 오구작작 물깃는 소리가 들린다고 시인 백석은 토영 천희 박령련을 만나러와서

이곳 명정샘가에 앉아서 통영에 관한 시상을 다듬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물가는 어린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다.

 

가죽고랑을 내려가며 장공장(간장)의 상표가 뚜렸이 보이는 건물도 보고

푸른 탁구장이 있었던 건물도 지난다.

이곳에서 탁구를 치고 칠성당 빵집에 가서 빵을 사먹었다는 강의원님의 회상이 있었다.

통영에는 빵집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칠성당,고려당,거북당,신생당,미화당,오미사,등등이 있었다고 한다.

 

충무교(운하교)가 1967년 개통되고 다리를 중심으로 산양면 쪽은 진남 국민학교요 시내쪽은 두룡 국민학교인데

진남쥐꼬랭이와  두룡 똥바가지가 한바탕 싸움을 했다고 한다.

더불어 유영국민학교는 유영 빼때기,출렬보이,통영보이라는 국민학교 시절의 별칭도 있다고 한다. 

△ 통영 명정

 

△ 장공장

△ 푸른 탁구장(셔터 내려진 곳)

 

 

이 건물은 구 통영군청의 건물이다.

통제영이 폐영되고 진남군으로 분군되어 세병관 근처  구 세무서터의 한옥에 군청을 열었는데

다시 건물을 짓고 20여년간 사용하다 이곳에 1943년에 이전을 하였다.

모더니즘에 입각한 좌우대칭형의 고전주의를 반영한 건축물로 보존과 활용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으로 통영 박물관으로 개조중이다.

박물관이 완성되면 그 내용물이 궁금 할 뿐이다.마당 화단에 전시된 석장승이나 석물을 보니

원래의 자리에 있어야 할 유물이 아무 연관도 없는 이곳에 있는지 때로 슬픈 생각이 든다.

 

 

 

△ 미화당 빵집이 있었던 곳

 

 

"상처 입은 용"(루이제 린저) 윤이상 기념관(도천 테마파크)에 왔다.

현존하는 유럽의 5대 작곡가로 평가 받는 윤이상은 동백림 사건으로 고통을 겪다가 끝내 고국땅을 밟지 못한다.

"주의와 사상은 봄에 돋아나고 가을에 입이 떨어지는 활엽수와 같으나 민족은 푸른 하늘과 같이 영원한 것이다"

라고 하는것이 윤이상의 민족관이다.

 

예술의 세계는 영원하다.영국은 세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고 했으며

김용식은 "나는 가난한 신생국의 외교관이지만 내동생 김용익이 훗날 나보다 더 기억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지금의 잣대로 마음대로 평가 해서는 않된다는 말씀!

100년 200년후 과연 지금 사상을 논하고  예술을 폄하하는 사람들을 누가 기억 할까?

좀 더 넓은 생각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

 

정부 보조를 받는 윤이상 기념관에 들어오니 너무 시원하다.

시원하여 좋긴 한데 이건 아니다.정부 시책에 의하여 여름 냉방 온도를 26~28도로 설정해야 하거늘...

△ 도천테마파크

△ 북한에서 들여온 흉상

△ 야외 동상

△ 기념관 로비에서

 

△ 착량묘(1599년 이순신장군의 위폐와 영정을 모시고 초묘를 지어 제례를 했던 곳)(착량:파서 다리를 만들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 해저터널에 왔다.

해저터널은 1932년 11월20일 준공을 한 미륵도를 잇는 동양최초의 바다밑 터널이다.

현판인 용문달양龍門達陽은 '해저인 용궁으로 들어가 산양면으로 나온다'는 당시 통영읍장인 야마구찌의 글씨라고 전한다.

 

입구의 우측 안내소 있는 곳에 해저터널의 모형이 있는데 안내소에 가려져 있다.

당시 일본인 들이 1/4 모형을 만들어 수차례 실험을 하여 안전하게 건설한 해저터널인데 

그 모형이 안내소에 가려져 통영사람도 잘 모른다.

안내소를 옮기던지 모형을 옮기던지 하여 여기를 관람하는 관광객이 보고 느끼게 해야 할 것이다.

 

해저터널은 천연 냉방이 잘 되는 곳이다.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더운 길을 걸어오느라 땀을 많이 흘렸지만 이 해저터널은 매우 시원했다.

한때는 버스가 다녔던 곳이지만 지금은 사람이 통행하는 곳인데 자전거가 위험하게 지나간다.

자전거 전용선을 지정 하던지 해야 할 것이다.  

△ 해저터널 입구(龍門達陽) 

△ 1/4축소 모형

△ 해저터널 지붕

△ 천연 냉방시설

△ 해저터널 내부 전시물을 살피는 도반들

 

 

이야~길1-2를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도처에 널려있는 문화재와 유적 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알릴것인가?

어느 도시는 없는 이야기도 지어내어 스토리텔링은 한다 하는데 우리 통영은 너무 많아서 주체를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무심하지 않느냐 할 정도로 수많은 콘텐츠를 보유한 보석같은 통영이다.

 

김현구 박사가 지적한 세계화의 통영에 대하여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의 그늘에서 벗어나 통제영을 특화하는 큰 그림이 필요한 때이다.

가장 통영스러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것임을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통영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하여 세계가 부러워 하고 이목을 집중 시킬 수 있는 휼륭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것은 유형적인 것도 있으며 무형적인 것도 있다.

 

점점 고민이 깊어지는 하루였다.

 

2013.7.13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