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토요걷기

제20회 토요걷기(덕포리 해안길) 아무도 돌보지 않는 통제사 마애비

청풍헌 2013. 10. 16. 23:36

원문에 있었다는 서유대 통제사 마애비를 찾아 이리저리 헤맨적이 있었다.

큰 바위만 보면 마애비인줄 알고 뛰어가곤 했는데...

결국 고속도로 건너편 언덕에서 찾았다.

갈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다.

주위에는 쓰레기가 방치되고 풀과 나무가 우거져 이것이 무었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여름휴가때 태안으로 휴가를 갔다 집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마애비를 살피니 주위에 공사를 하는지 흙이 파 헤쳐져 있었다.

마애비의 안녕이 궁금하여 차를 타고 갔었다.

다행이 아는지 모르는지 마애비는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統制使徐公有大통제사서공유대

 

 

서유대 통제사는 세병관 현판을 쓴 통제사이다.

그 내용은 무익공 행장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김일룡 소장님)

달성서씨 대종회 카페에 문의 했으나 답을 못받았다.

소중한 문화재가 방치되는것이 무척 안타깝다.

어떻게 하면 될까 궁리 하다가 일단 낫으로 나무를 정리하고 인쇄 코팅하여 현판이라도 달자.

그래서 통영의 마지막 대장장이 이평갑 어른에게 낫을 한자루 샀다.(8,000원)

현판을 코팅하고 로프를 구하여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20회 토요걷기는 죽림 해안길과 덕포 해안길을 탐방 하고자 공지를 했다.

손덕, 창포, 구집등등은 시내버스 안내판에서나 보았지 직접 가보지는 못하여 지명을 외우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초가을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고 선선하여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다.

 

 

13명이 원문 생활공원을 출발하여 서유대통제사마애비를 찾았다.

여기가 서유대 통제사 마애비 입니다 하니 다들 깜짝 놀란다.

이렇게 소중한 유산이 방치되어 있다는게 안타깝다고 이구동성 이야기를 했다.

베낭에서 낫을 꺼내 주변을 정리하고 줄을 치고 현판을 달아 놓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또 한편으로 이렇게 표식을 해 놓으면 누군가 훼손을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파이팅을 외치며!

▲낫으로 풀을 정리하고

▲현판을 달았다.

 

 

도서관 쪽으로 내려와 죽림해안길을 걸었다.

죽림 해안도로는 작년까지 안전 핸드레일이 없어 익사사고가 종종 발생 했었고 구조봉을 더 설치해 달라는 민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전거 전용도로로 포장하고 안전 난간을 설치하여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

풍광도 좋지만 시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죽림을 지나면 노산이다.

이곳은 매립지로 각종 공장이 있으며 고속도로 교량 아래까지 옛날에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고려시대 안정의 춘원역이 조선시대에는 이곳 노산으로 이전하여 구허역이 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1595년 4월 초10일에 "구화역의 역졸이 와서 보고 하기를 적선 1척이 또 역 앞에 이르렀습니다. "

구화역이 구허역인 이곳 노산을 뜻한다.

▲이랬던길이---------------------------------------------------------------->이렇게 변했다

▲죽림 해안길

▲다정하게 어깨동무도 하고...

▲굴껍데기(채묘용) 끼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4줄 한 연에 1,000원+차비100원 이란다.

 

 

손덕마을로 진입했다.

遜德손덕마을=松庄송장마을(?) 무슨 연관이 있을까???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건데 알수없네.

노산 들 농지 80%가 이곳 손덕마을 사람들의 토지라고 한다.농사를 지어 소출이 나면 배를 이용하여 싣고 왔다고 한다.

하지만 고개마루를 넘나들기 힘들어 바닷가 해안으로 길을 내기 위하여 정, 지렛대를 이용하여

겨우 리어카 하나 지날 정도의 길을 내어 다니다 확장 포장을 했다고 한다.

창포,구집 사림들도 이 옛길을 지게를 지고 이고 들고 통영장을 다녔다고 했다.

 

 

마을입구에 있는 삼은정사적비는 우동마을에 있는 삼소장비와 같은 이치다.

삼은정를 보고 삼소장 비석에 관하여 자료를 찾던중 이상한 점이 발견 되었다.

우동,노산 손덕마을에 사는 세 사람이 동문 수학을 하여 우의를 다지다가

벽방산에 약초를 캐러 갔다 길을 잃고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서 만나 한바탕 웃었다는

삼소장비의 유래가 통영군지의 비석 유래편에 있었다.

 

 

 

고영화님이 번역한 조긍섭님의 삼소장기(1902년 가을)를 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지명이 틀리다.

우동,노산 손덕 마을이라 했는데 죽계마을, 정촌마을, 송장마을로 표기되어 지명이 틀려 숙제가 생겼다.

어느것이 오류인지는 알 수 없다.우동=죽계, 노산=정촌, 손덕=송장 (???)

현재 지명은 생긴지 불과 100여년 전이다.그 이전의 마을 이름이 필요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아니면 지명 사전을 찾아야 할지???

 

 

 

마을 어귀인 소나무 쉼터에서 간식을 먹었다.

소나무 향기 아래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은 꿀맛이다.ㅎ

시간이 11:30경 되어 창포마을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고개를 넘었다.

 

 

▲삼은정사적비

 

▲우동에 있는 삼소장비

▲삼소장 비문중 오른쪽부터  세번째줄 "수여정촌배영수덕일송(죽계마을 수여 김질태,정촌마을 덕일 배영수,송장마을 경중 김두곤)

▲평화로운 손덕마을

▲마을 어귀 소나무 쉼터에서 막걸리도 마시고

▲길을 나선다

 

 

창포마을은 통제영 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을의 영암김씨 제실에 도난당한 석물과 효행비를 보고 옛길을 가늠했다.

마을로 들어서 옛길로 내려서면 돌담이 옛스러운 곳에 심상찮은 초석이 있다.

지레짐작으로 통제영 창고의 초석이라 판단 했으나 동네 어른(청주한씨 어른84)들의 증언으로 만석꾼의 집 초석이라고 한다.

초석이 3~4개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만석꾼의 기를 받기 위하여 초석을 안고 보듬고 했다.ㅎㅎ

 

 

 

마을 쉼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러명이 여러반찬으로 진수성찬이 되었다.같이 어울려 먹는 점심도 꽤 맛있었다.

마냥 있을 수 없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길을 나섰다.

창포 멸치가 유명 하다며 정치망 멸치 말리는 곳에서 일부는 멸치를 구입하고 구집으로 넘어갔다.

 

 

 

舊集구집은 원래 9개의 명당을 갖춘 길지라 하여 九集구집에서 유래 했다는 속설이 있다.

해안도로가 아닌 옛길은 마을 위로나 있었다.

원래의 구집마을로 들어서니 한적한 농촌마을의 향기가 풍기는 곳이다.

마늘밭에서 비닐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엉덩이에는 앉을깨가 붙어있다.

해안 해식애는 물이 들어 가보지 못했다.

 

▲효자비를 살피고 있다.

▲표효문(기릴표)

▲영암김씨 제실을 나오며

▲창포마을의 초석

▲만석꾼의 기를 받고 계신 향토사 회장님

▲같이둘러 앉아 맛있는 점심을 먹다.

▲만석꾼과 기와여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신 청주 한씨 어르신(84)

▲구집을 오르며

 

 

SPP의장공장을 지나 적덕마을에 왔다.

구집에서 김상현 기자가 적덕마을 이장님에게 전화하여 간식을 부탁 했는데 고구마를 삶아준다고 했다.

적덕마을은 돌이 붉다하여 적덕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장님 사모님을 초청하여 바위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상사바위는 고개넘어  마을의 처녀와 총각이 좋아 했는데 집안의 반대로 둘다 죽었다.

밤마다 뱀이 되어 기어 올라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있다

부처바위 아래에는 영험이 있는 부처가 있었다.

붉은바위 임진왜란때 백성들이 피를 흘려서 붉은바위라 하고 또한 6.25때 인민군에 의하여 피를 흘린 바위라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마을 공부방에서 삶은 고구마를 먹으며 마님 놀이에 빠졌다.

마당 입구 바닥에서 고구마를 먹는 사람은 머슴이요 평상에서 먹는 사람은 손님, 마루에서 먹는 사람은 마님이라며...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돌담이 옛스러운 골목길은 추억의 길이며 또한 무르익어가는 가을이 있다.

▲딸바보 정상일씨

▲상일씨 가족

▲바위의 전설을 설명하시는 이장님 사모님

▲대문간에 퍼질고 앉아있는 머슴들(?)

▲마님 놀이에 빠진 자칭 마님들...

▲공부방

▲돌담길 돌아서면~

▲가을 단상들1,2

▲가을 단상3,4

▲가을 단상5,6

▲모태(석쇠)다 화덕이다 하여 의견이 분분 했던 생활의 물건들

 

길은 떠남의 공간이자 돌아옴의 공간이다.

그리고 지향의 공간인 동시에 한걸음 뒤로 물러선 자기 성찰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무었보다 길은 인연을 소통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조선통신사의 길에서 오늘을 묻다에서-

 

2013.10.12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