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 해안선 탐방

(도선부곡)걸어서 만난 지난 여름의 아픈 상채기들

청풍헌 2013. 11. 2. 06:53

도산면

도선면과 산내면을 합쳐 도산면이 되었다는 이곳은 고성과의 경계로 생활권은 거의 고성이다.

도선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부곡이 있었다는 지명에서 유래 되었으며 도선부곡이 도선원으로 다시 원동으로 현재 불려지고 있다.

그러면 원래의 도선 부곡의 위치는 어디인지?바닷가 해안선은 어떠한지 등등이 궁금하여 물 한병 옆구리에 차고 나왔다.

 

원동에 차를 주차하고 평리천을 따라 바닷가 쪽으로 내려갔다.

평리천은 들의 가운데로 있었는데 경지정리하면서 동쪽의 언덕쪽으로 물길을 돌려 새로운 내를 형성 했다고 한다.

과거의 평리천에  홍수가 나면 들 가운데의 방천이 무너져 논을 망치기를 매년 연래행사 였다고 한다.

새로 낸 평리천은 상당한 폭 인데도 홍수가 나면 벽방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내를 넘쳐 농토에 흘러 든다고 한다.

 

 

평리마을 입구의 농가에서 주인 아저씨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 앞의 내에서 붕어를 키웠는데 밥먹을 때마다 밥을 던져주면 쪼로로 달려와서 먹고가곤 했단다.

쪼그만 것이 손바닥 만큼 키웠는데 지금은 물이 더러워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또한 오리를 몇마리 키웠는데 새끼오리를 사와서 길을 잘 들여 놓으니 아침에 나가면 싫컷 놀다 저녁에는 집으로 들어와 큰 알을 낳았다고 한다.

어느날 오리가 바다의 청둥오리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바닷가까지 내려가니 좌측으로 포장된 도로가 나와 계속 가보니 해통영 식품공장이 나왔다.중소기업 진흥청에서 지원하는 중소 식품공장이다.

조금더 가니 굴 박신장이 나왔다.컨베어가 돌아가며 파쇄된 굴 껍데기가 산을 이루었다.

바다에서 레일을 타고 오는 굴을 보니 껍데기다.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지난 여름 통영의 적조시 고수온과 이상기온으로 자란만의 굴이 80%이상 폐사 했다는 보도를 접한적이 생각났다.폐사된 굴을 바다에 버리지 못하고(오염때문에) 전부 수확하여 살아 있는것과 분리를 하면 80%가 빈껍데기다.이것을 가져와서 파쇄하여 처리를 하고 있었다.이곳에서만 올해 약 6억 정도의 손해가 났다고 하니 굴어장을 가진 여러 어민들의 손해가 막심하다고 했다.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바닷가로 난 길을 계속 가니 출입금지 쇠사슬이 있다.어촌계장,담당자 전화번호가 적혀 있으며 사람이 걸어서는 갈 수 있다.

첫번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니 가족묘지가 나왔다.옆을 계속 가니 길이 끊어져 되돌아 나왔다.

다시 우측으로 길을 잡고 계속 갔다.끝까지 걸어가니 섬으로 들어가는 전기와 전화의 쌍 전봇대가 있다.

돌아 나오면서 우리나라 지도의 형상을 한 선소 같은 지형을 보았다.이곳에 전선을 숨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천혜의 수군 진지가 될 겄인데...

혹시 수군 진이였을지도 모르겠다.확인이 필요하다(???)

 

 

평리마을 입구는 과거 큰 당산 나무가 있었으며 정월 보름까지 여자들은 이곳으로 출입을 하지 못했다고.부정 탄다고 하며...

큰 당산나무 둘레로 돌담을 쌓고 새끼줄을 둘러쳐 신성시 했었는데 나무가 너무 오래되어 자연사 하는 바람에 당산나무는 없어지고

그곳에다 같은 종류의 작은 나무를 심어 놓았다.이곳이 창원시장인 박완수의 고향이라고 한다.

이 골짜기에서 사람이 최초 살았는데 공부를 시키고 농토를 구입하여 들판으 로 나와 자연 취락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원래의 마을 근본은 이곳 평리마을(골안마을)이라 골도선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국도14호선 입구의 마을 표석은 골도선 마을이라 쓰여있다.

 

 

마을 탐방이 필요하다

 

 

2013.10.27 도선부곡을 찾아서 백세청풍 김용재

 

 

이곳 원동마을은 옛적 도선부곡(道善部曲)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 고성현 고적에 도선부곡이 현 동쪽 20리에 있다고 했다. 이 책에 이미 고적으로 분류됐으니 그(1481년) 전에 이미 부곡은 없어졌겠다.원동에서 오산으로 이르는 길은 마을 앞으로 열려 있다. 남쪽에는 작은 구릉이 있는데, 마을에서는 이를 일러 진터라 한다.

<여지도서> 김해진관고성현 관애에 실린 남촌이다. "남촌은 현의 동쪽 20리에 있다. 광해군 6년(1614) 갑인에 처음 현의 남쪽 도선에 진을 설치했다. 11년(1619) 기미에 현 동쪽 적진포(積珍浦 : 통영시 광도면 덕포리 앞바다)에 소모진을 이설하니 저절로 남촌이라 부르고, 별장을 파견하여 지킨다" 고 했다. 또한 같은 책 진보에 "남촌진(南村鎭) 별장은 무인으로 9품이다. 진무(鎭撫) 15인, 지인(知印) 7인, 사령 12명은 노군(櫓軍)을 겸한다"고 했다. 이곳 원산리 진은 설치된 지 불과 5년 만에 옮겨진 것으로 전한다. 그래서 <대동여지도>에는 적진포가 있던 광도면 덕포리에 남촌을 표시했다.적진포에 옮겼다는 남촌은 소모진(召募陣)으로 사람들을 모아 훈련시키는 훈련소 기능과 함께 유사시 병력을 모아 전투를 하는 곳이다. < 선조실록> 200권, 39년(1606) 6월 27일(갑자) 기사에 "경자년(1600) 완평부원군 이원익(李元翼)이 남쪽 변방을 체찰할 때 실변(實邊)과 연병(鍊兵)을 중히 여겨 울산·동래·창원 세 곳에 소모진을 설치하고 사람을 불러 모은 다음 신역을 견감시키고 양료(糧料)를 지급, 각기 별장(別將) 1원을 두어 거느리게 했습니다." 했으니 소모진의 기능을 헤아릴 수 있다. /최헌섭(두류문화연구원 원장)

 

 

▲도선리 탐방(7.36km / 3.5h)

▲자란만 굴 단련장

▲원동에 주차하고 길을 건넌다.

▲큰 내를 따라 내려가니

▲성수천 이라 한다.소하천이 아닌데???

▲평리교 건너마을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정자옆에 서 있는 느티나무는 새끼 당산목

▲죽은 당산목과 비슷한 나이의 나무

▲간척지의 갈대밭

▲빅마마씨푸드 공장(무얼 가공 하는지???)

▲폐사한 공각을 수확하여 공장으로

▲100여명이 굴을 까고 있어야 할 공장이 텅 비었다

▲굴 이동용 호이스트

▲출입금지용 체인이 있다

▲길1

▲길2

▲길3

▲길4

▲가을1

▲가을2

▲가을3

▲가을4

▲섬으로 들어가는 전기와 전화줄

▲길5

▲해안1

▲해안2

▲해안3

▲해안4

▲해안5

▲골안마을 입구에서 만난 농부

▲갓

▲14호 국도변 골도선 마을 표석

▲마을의 유래

 

2013.10.30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