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이충무공한산대첩비

청풍헌 2014. 4. 23. 07:43

이 대첩비(1955)는 통영 남망산 공원 이순신 장군 동상 올라가는 곳에 있었는데 착량묘로 이설했다.


李忠武公閑山大捷碑

任辰亂이 일어난지八十二日만인 七月初八日 公은 全羅左水使의 몸으로 이미 玉浦 唐浦 두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더니 이날 다시 피난민 金千孫에게서 적들의 정보를 듣고 全羅右水使 李億祺와 慶尙右水使 元均등과 더불어 見乃梁에 이르러 보매 과연 왜적선이 바다를 덮어 진을 쳤으나 판국이 좁고 물이 앝아 싸우기 어려울 뿐더러 육지로 쫏겨 도망가기도 쉽겠다 하여 閑山島 앞바다로 끄을고 나와 모조리 무찌를 계획으로 짐짓 물러 나는 체 하였더니 적선들이 따라 나오는지라 한바다 까지 이르러 公은 급히 명령하여 龜甲船을 선봉으로 鶴翼陳을 치게하고 대포와 화살을 섞어 쏘니 연기는 하늘을 덮고 형세는 자못 우뢰와 같은 속에 順川府使 權俊과 光陽縣監 魚永潭등이 적진으로 달려들어 層閣船을 깨트리고 적장을 무찌르자 전군의 사기는 더욱 높아 날이 어둡도록 싸워 이기니 적선 七十二척은 남김없이 깨어지고 적의 죽은자가 무릇 九千여명인데 公은 이날밤 見乃梁에서 머물고 初九日에는 바람이 거세므로 巨濟 溫川島에서 밤을 드새고 이어 初十日 새벽 安骨浦로 달려가 왜적선 四十二척을 또 다시 꾀어내어 閑山 앞바다에서 모조리 처부신뒤 十一日에는 왜적의 시체들을 열두 무데기에 쌓아 불태우고 十二日 閑山島에 이르니 도망한 왜적 四百여명이 주려 쓰러졌는지라 이곳 군사들에게 그들의 처치를 부탁하고 다시 全羅道 錦山 지경 정세를 걱정하여 麗水 본영으로 돌아가니 이것이 이름난 閑山대첩이요 이로 말미암아 왜적들이 西海를 거쳐 올라갈 뜻을 다시 감히 품지 못하였으니 어허 그 높으신 공이 어찌 싸움으로 표창받은 正憲大夫로 족할까 보냐 이에 우리 동포들의 뜻을 받들어 감히 노래하여 기리니


鶴翼陳 펼치이여 / 큰물결 뒤눕도다 / 불화살 날림이여 / 아우성 치는도다 / 왜적들 쓰러짐이여 / 고기밥이 되엇도다 

저님이 계심이여 / 겨레목숨 건지도다 / 호을로 지킴이여 / 눈물이 겨웁도다 / 閑山섬 큰 싸움이여 / 꿈속에도 서리도다

 

檀君紀元 四千二百八十八年 九月 日 鷺山 李殷相은 짓고 完山後人 李淳弼은 쓰고 우리 民族의 정성을 모아 統營忠烈祠에서 세우다




▲단기4288년(1955) 9월 일 노산 이은상짓고 완산후인 이순필 쓰고 우리 민족의 정성모아 통영 충렬사에서 세우다



 

2014.4.21 착량묘에서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