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唐浦斷想

청풍헌 2014. 6. 25. 00:03

 

당포는 역사가 분명하며 그 흔적도 뚜렷이 남아 있는 조선 수군의 중요 진지입니다.

또한 이순신 함대의 2차 출정 시 승첩을 거둔 곳이며 한산해전의 시발점이 된 곳이며

임란 후 통제영 시대도 왜의 무역선을 나포하여 격침시킨 역사의 고장 입니다.

 

당포성은 조선왕조실록의 세종20(1438) 417일자에 ["경상도의 노량을 평산포라 고쳐 부르고 번계樊溪를 당포唐浦라 고쳐 부르게 하옵소서"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라고 나오며 동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고성현 편에 "당포는 현 남쪽의 47리에 있으며 번계만호의 병선이 여기로 옮겼다. 번계는 본디 현 서쪽 33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성종 21(1490) 829일자 두 번째 기사에 이달에 경상도에 부산포성을 쌓았으니, 둘레가 226척이고 옥포성은 둘레가 174척이며 당포성은 둘레가 1445척이고 가배량성은 둘레가 883척인데 모두 높이가 13척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포는 당포수군만호진이 있던 곳으로 전라 좌수사인 이순신 장군이 최초 출정으로 57일 옥포해전을 치르고 이어 2차 출정으로 62일 당포에 상륙한 왜구를 공격하여 승리를 했습니다. 당시의 전황을 보고한 장계를 살펴보면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층루선 밑을 들이 받으며 용의 입으로 천.지자 총통과 대장군전을 쏘아 그 배를 깨트리자 뒤따르고 있던 여러 전선들도 철환과 화살을 교발 하였는데 중위장 권준이 돌격하여 왜장 이라는 놈을 쏘아 맞추자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므로 사도첨사 김완과 군관 흥양 보인 진무성이 그 왜장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임진장초에서~

 

어느날 신여량 장군의 집안에서 한장의 지도가 발견 되었죠. 상단에 전서체로 '당포전양승첩지도'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그 아래 해전에 참여했던 28명의 좌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비변사 등록유초에 그 내용이 상세히 나옵니다.

임진왜란 이후 통제영의 우척후로 당포만호가 근무 했으며 전선 1, 병선 1, 사후선 2척에 합계 교졸 232명이 근무했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당포는 이순신 장군이 승첩을 한곳이며 한산 해전의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의 출전 시 중간 기항지로 역할을 하며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 여러 차례 등장 하는 중요한 지명입니다. 당포는 앞으로 더욱 조명 되어야 할 중요한 전적지이며 많은 부분에서 연구가 필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