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 소식

통통인문학 강좌 [통제영 역사와 문화유산]

청풍헌 2014. 5. 26. 08:46



2014년 5월 20일 화요일 19시~ 21:30 강연자 김일룡 소장님.

무릇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다. 역사는 변해야 한다. 통영은 이순신에 너무 매달려 있다. 통영은 이순신만 있는게 아니라 많은 문화유산을 품고있는 군영의 도시다. 통제영에서 통영으로 변천 되었다. 먼저 지도를 보자.  통영의 항구안에 공주섬이 있다. 김약국의 딸에는 공지섬으로 나온다. 일명 통영에는 공주병 환자가 많이 있다. 공주섬은 구슬을 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객산인 미륵산이 여의주를 품고 진산인 여황산을 향하는 형상이다. 주산은 음택에서 묘의 뒷산을 의미하고 진산은 살아있는 현세의 뒷산을 의미한다. 현재의 여황산은 진산이다. 즉 진산인 여황산에 구슬을 받치는 형상이 공주섬이다. 일명 춘자점이라고 한다.  통영항은 어디서 부터인가. 마리나 치끝에서 부터 천대 국치 끄트머리까지가 통영항이다. 강구는 강어귀를 말한다. 강구안은 바다 가운데를 의미 함으로 강구안이라는 표식을 잘못된 것이다. 즉 용어의 정의가 필요하다. 통영은 바다로 된 리아스식 해안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풍부한 어족 자원이 있다. 해안매립을 안했으면 한다.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 우선 치적을 쌓을려고 마구잡이 개발을 하는게 안타깝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좀 내려 놓아야 한다.통영은 570여개의 섬이 있다. 전북 신안은 1004개 여수는 365개있으며 두번째 , 세번째의 섬인 거제와 남해를 끼고 있는 통영이다, 해양관광 휴양도시로 관광의 고급화가 필요하다. 저급한 문화가 아니라 고급화를 해야 한다. 식당도 고급식당, 호텔도 고급호텔이 있어야 한다. 고급 음식점도 소개하여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인당 10만원짜리 음식도 때로는 필요하다. 통영의 모든 섬에는 패총이 존재한다. 발굴 보고서가 나와서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선사시대의 많은 유적이 있다. 그리고 발굴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연대도 패총에 가면 잡풀만 잔뜩 자란 허허 벌판만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음 세대에 허허 벌판만 물려주 것인가? 연대도 유적, 상노대도 패총, 남평리 가야 유적, 춘원역 역말, 역로, 당산 철마9기등등...한번쯤 생각을 해보자. 


가배량도만호성과 미륵산 봉수대등은 임진왜란 이전의 유적이다. 1592년 4월13일 일본군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1,2,3차 출진으로 이순신은 원균과 합동작전으로 왜군을 무찌른다. 3차 출동시 당포에 왔는데 당시의 판옥선은 대형선으로 접안이 불가하여 작은 포작선이나 통구미로 이동했다. 당포목자 김천손의 제보로 원균과 합동하여 한산 앞바다에서 함포작전의 학익진으로 섬멸하여 대승을 거두어 수군의 사기 진작과 서쪽으로의 진행을 틀어 막는다. 이후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된 이순신은(1593년. 8월 ) 여수에 있다가(전라 좌수사가 겸직) 한산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산도로 진영을 옮겨 본영으로 삼는다. 즉 초창기에는 전라좌수사와 삼도수군 통제사가 겸직을 했다. 이후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경상우수사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이시언 통제사때 경상 우수사와 삼도수군 통제사가 겸직하는 체제로 확정된다. 이곳 두룡포로 옮긴 이경준 통제사는 키가 매우 작았으며 더군다나 수질(배멀미)을 심하게 했다고 한다. 당시 통제영이 가배량에 있었는데 육지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는게 너무 힘들어 육지로 옮길것을 검토하여  안정마을  춘원면에서 두룡포로 옮겼다. 


현재 문화마당은 병선마당이었다. 통영의 정체성은 통제영이다. 그 이름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하다. 통제영이없는 통영은 상상할 수 없다. 통영은 항구다. 충청,전라, 경상 삼도를 총괄하는 수군이 있던 해군작전사령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선소는 조선소가 아니라 계류장이다. 통제영의 팔전선과 중영의 배가 계류하던 선소였다. 이 선소가 점점 줄어들고있다, 호안을 매립하여 항구로서의 기능이 점차 줄어들고있 어 종국에는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산대첩때의 시민의 참여가 미흡하다. 일본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고향에서는 장군의 날에 대대적인프레이드를 하는데 시민들이 돈을 주고 참여 하여 선조들을 고취 시키는데 우리 통영은 어떠한가? 학생들을 동원하여 억지로 시키고 시민들은 내몰라라 하는 일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 참여를 해야 한다. 당시의 군점은 548척의 전선과 36,000여명의 수군들이 수조를 하는 장관을 이루었다. 당시에는 별로 볼것도 없는 세상에 이런 장관을 볼려고 고성, 진주,사천, 하동, 합포등등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사상을 초월한 대단한 장관이었다.  이런 축제도 벌써 40여회나 지났건만 엉뚱한데 돈 들이지 말고 제대로 자긍심을 갖도록 하자. 몇억 들여서 가수들 초청해서 노래 부르면 뭐하노?


 나도 통영에 5대째 살고있다. 결국 다들  우리는 어디서 왔다. 통영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통영사람이 아닌가?  통영에서 태어난 사람도 결국 어디 어디서 왔던 사람이다. 좀 더 열린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통영에는 인간문화재가 많이 있다. 인간 문화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자존심이다. 즉 우리나라의 얼굴이다. 장인들은 긍지가 있어야 한다. 통영의 남문을 복원 하는데 남대문은 통영성의 얼굴이다. 충무김밥은 어디서 왔는가? 통영항은 남해안 거점 항구다. 통영에서 여수까지 중간 기항지로 통영에 오면 점심때가 된다. 그때 먹던 김밥이 충무 김밥으로 되었다.  충무시는 1955년도 통영읍이 충무시로 되면서 충무라는 지명이 생겼으며 1980년 전두환 시절 국풍81에 출전한 어두리 할머니가 힛트를 쳐 알려지게 되었다. 충무김밥 통영김밥 어느것이 맞느냐는 정통성을 가진 통영김밥이 맞다. 고유명사인 충무할매김밥은 그대로 두고 시청에서 홍보를 할때는 공식 명칭인 통영김밥으로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통영성 지도는 중앙에 세병관이 있다. 세병관은 임금과 상관이 있는 곳이다. 통제사는 종2품 무관으로 현 직급은 차관급이다. 세병관 전폐단에는 전폐를 두고 망궐례를 했던 곳이다. 그외 많은 관아가 있었는데 모두 복원을 하지 못했다. 운주당, 경무당, 내아, 후원, 산성청,좌청, 백화당 등등이 있으며 발굴 당시 통영초등학교터를 파내니 흙이 약 30cm가량 덮여 있어 고스란히 초석이 보호되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300년을 이어오면서 켜켜히 쌓여진 유적을 어떤 시대 기준으로 복원 할 것인지 토의하여 영,정조시대에 기준을 잡고 발굴 복원 햇다. 통제영 진영에서 체험 동선이 필요하다. 죽어있는 공간이 아닌 살아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수군 복장이나 장군복장 아니면 왜군의 복장 이라도 관광객이 눈길을 끌고 체험 할 수 있는  살아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한양의 벼술아치가 이런 변병 통영에까지 근무를 할려니 병이 많이 생겼다. 안개로 인한 폐질환으로 병사 하거나 뒷돈을 써 일찍 올라가기도 했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있는 고장이다. 이유는 통제영의 300년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교방청 행사시 추었던 북춤과 칼춤이 승전무로 이어졌고 취수고청의 악사가 통영 음악의 근간을 이루었다. 해안 지역 특성상 무속의 발달로 남해안별신굿이 있으며 양반을 희롱하는 통영오광대가 맥을 잇고 있다.  이러한 전통 공예와 민간 재래악이 300여년 이어 오면서 전통을 이루었고 일제 강점기 어업전진기지 덕분에 많은 부를 쌓아 자녀들을 일본이나 선진지에  유학을 보내어 신식 교육을 받게 했는데 대부분 문학이나 음악, 예술쪽으로 전공을 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이 통영의 문화운동을 주도하고 인정을 받는 훌륭한 문화 예술인이 되었다. 즉 통영문화의 뿌리는 통제영이다. 시민들이여! 통영의 축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라.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어라...


2014년. 5월 20일 통통인문학강좌 통영시립도서관에서 백세청풍 김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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