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길 이야기

호텔과 주지스님

청풍헌 2014. 6. 6. 23:02

세병관은 조선의 호텔이고 충렬사에서 주지스님 찾는 손님은 누구의 탓인가?

문화관광해설사님의 고충이다.

통영의 정체성이 아우러진 통영 이야~길을 걸으며 어떻게 하면  제대로 통영을 알릴 수 있는지 고민을 하고자 길을 나섰다.


한려투데이 홍경찬기자와 이상희 사진작가, 황영경 공주님이 함께했다.

중앙시장 맞은편 갯가에는 생선이 초여름 같은 볕에 체온을 올리며 노래하고 있다.

문화마당 칼갈이 아저씨는 오늘도 변함없이  핸들을 돌리며 칼을 갈고 계셨다.


남망산 공원은 유년기 충무시의 기억이 서린곳이다.

공원을 오르면 울창한 송림이 있고 미니 골프장과 탁구장이 있었으며 찻집에는 숫한 예인들이 드나 들었다.

이순신 동상은 그 당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의  표상이며 등나무 터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지금의 공원은 동네사람들의 아침 운동하는 장소로 전락하고 

공원의 동상은 이순신 공원의 동상에 밀려 관광객과 통영시민에게 외면되고 있다.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꿰고 있을 남망산이 쓸쓸하기 그지없다.


김춘수 생가터 가는길에 호떡장수는 사라지고 동피랑의 그림은 새옷을 갈아입고 사람들을 부른다.

동피랑의 고민이 눈에 선하다.

위태로운 동피랑이 어떻게 하면 자립하고 홀로서기를 할수 있을지 걱정된다.


구판장에는 더워서 땀이 흐르고 안내판 하나없는 이중섭 공방의 물건이 들어왔다.

동피랑 갤러리는 어제와 같이 문이 닫혔다.(나중에 열렸음)

젊은이들이 찾는 동피랑에는 점빵이 빽빽하게 들어섰고 괜찮은 그림 앞에서는 긴줄이 생겼다.


길이란 무었인가? 

길은 주인이 없다.

길은 걷는자가 주인이다. 

걷지 않는 길은 죽은 길이다.


수많은 옛길이 걷지않아 사라져 갔다.

만들어진 길도 한해만 걷지 않으면 사라진다.

니길 내길이 어디 어디있나? 

이야~길을 포함한 통영의 모든길을 시민이 걷고 손님이 걸어서 행복하면 된다.


역사관,서문고개를 거쳐 충렬사에 갔다.

오늘이 현충일이라 충렬사에는 많은 방문객이 있다.

사무실에 걸린 옛사진으로 충렬사의 옛모습을 짐작했다.


여행지에서의 먹거리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통영가서 충무김밥과 꿀빵을 먹어 보지 않으면 대화가 안된다고 한다.

명정골에서 유명한게 뭐가있지? 본전분식의 유부초밥과 김밥만 있는게 아니다.

간판없는 두짝문의 작은 선술집이 있다.

막걸리 두병에 나온 안주는 계란 후라이와 김치, 아삭고추 이 모두 착한 가격 4,000원이다.


세월호 덕분에 서호동 주민센타의 민원서류 자동 발매기에는 긴 줄이 섰다.(배 탈때 신분증 필)

희생자들에게 숙연해 지는 풍경이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점검도 없었을 것이다.

서호시장의 민들레 누비 매장을 거쳐 강구안 골목으로 왔다.  


강구안 골목 살리기 프로잭트를 한 이후 사람들이 와야 하는데 너무나 조용하다.

백석시와 간판이 아름다운  이 골목길에 어떻게 하면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

머리를 맛대고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꿀빵집에 성냥간을 내주고 이곳으로 이사온 삼성공작소가

가장 행복할 때는 해거름 일은 마치고 남은 불씨에 생선 몇 마리 구워서 근처 지인들과 소주 한잔 할 때라고 한다.

모태에 올려진 전어 대가리 익는 냄새를 안주 삼아 時流를 논한다.


2014.6.6 이야~길을 탐방하고 백세청풍 김용재  

▲가자미의 합창

▲고향으로 돌리도~~~~.

▲이우환의 관계항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인가???

▲대여 생가에서

▲동피랑 구판장의 이중섭 공방 작품

▲역사관에서

▲지분 냄새 풍기던 명정샘 빨래터

▲강한루는 원래 측면 두칸 이었으나 복원시 세칸으로 복원됨(뒤의 초석은 새로 깎아 만든것임)

▲일동 묵념!

▲충렬사 옛사진

▲정문집 내부담장

▲간판없는 집 특석에서

▲간판없는 집을 할아버지가 들어 서고 있다.

▲신분증 필요한 사람들(배를 이용할 승객들)

▲서호동 금성 공작소(주로 닷이나 어선에 필요한 것을 만듬)

▲삼성 공작소(농사나 어촌에  필요한 소품을 만듬)

▲가장 행복할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