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 해안선 탐방

5.평인 노을 길

청풍헌 2014. 9. 14. 20:47

5.평인 노을 길

통영은 반도다. 통영의 주산 여황산은 북으로 지리산의 등줄기가 벽방산으로 뻣어 내려 그 지맥을 타고 여황산을 이루고 좌청룡 망일봉을 비록 하여 우백호 천암산을 품은 풍수지리상 가장 좋은 자리에 세병관을 세우고 통제영을 열었다. 여황이란 명칭은 옛날 춘추 전국시대 오나라 왕의 화려한 배의 이름인데 초나라와 전쟁 때 빼앗겼다 다시 찾았다는 고사가 있다. 이후 훌륭한 군선을 이르는 말로 변하여 이곳 통제영의 위상과 잘 맞는 명칭이라 여황산이라 했다. 우백호인 천암산 등줄기가 내린 한실마을의 경상대 해양과학대학에서 발걸음을 시작한다.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은 1917.3.15. 통영수산전습소로 개교하여 1923년 통영공립수산학교(2년제)로 학제를 변경한다. 1950년 통영수산고등학교(3년제), 1966년 통영수산고등전문학교(5년제)로 승격, 1974년 국립통영수산전문학교(2년제)로 변경, 1979년 국립통영수산전문대학(2)으로 변경, 1995년 국립 경상대학교 수산대학(4년제)으로 통합 학제변경, 1997년 국립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4년제)로 학제 변경된 유서 깊은 학교다. 통영은 수산업의 도시다. 통영수산학교와 통영고등학교의 양대 축으로 인맥이 이루어져 있다


천대 국치길은 하수종말처리장이 있다. 현대 도시화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시설이다. 이 시설이 없을 때는 통영항이 썩었었다. 그 기억은 뚜렷이 남아 있다. 서호만, 동호만, 북신만의 악취를... 그러나 님비 현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어 우여곡절이 있었다. 천대는 골짜기의 계단 논이 거의 천수답이라 천대밭 골짜기라는 지칭에서 유래했다. 국치는 일명 국재라고도 하는데 바다로 길게 뻗은 산세가 명당을 이룬 바다로 내민 곶()을 뜻한다. 즉 천수답이 있는 바다로 튀어나온 곶이를 뜻한다. 양지바른 고갯길에는 큰 산소가 있으며 고개를 넘으면 민양마을이다. 일명 민지미라고 하며 중항도, 하항도의 시인의 마을 산언덕에 몇 해 전 몹쓸 인간이 이웃 어린이를 유괴 성폭행 살해후 암매장한 사건이 있었다. 시인의 마을은 한때 전국의 시인들이 내방하며 문학의 섬으로 진행 하다 어느날 흐지부지되고 지금은 고급펜션으로 변했다고 한다. 입구의 다리에는 철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 없다. 개인 섬이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다. 민양마을은 양지바른 언덕에 매화를 심어 봄이면 매화 향기가 온 마을을 진동하고 유채꽃과 괭이밥이 가장 먼저 피는 마을이다. 마을의 대부분이 굴 양식을 하며 선창에는 온통 굴 채묘용 공각이 쌓여있다. 또 통영제주수산도 이곳 민양 마을에 공장을 세우고 해삼수출을 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천암산이 북풍을 막고 좌청룡 우백호가 있어 명당자리다. 명당자리에는 어김없이 큰 산소가 있어 어릴적 소풍장소로 애용했다고 한다. 마을을 들어서면 중심부에 큰 우물이 있다.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군에 간 아들이 무사하도록 정한수를 떠오던 우물, 고기잡이 나간 남편의 안녕을 빌던 곳, 음력 2월 영등시 할만네를 지내기 위하여 정한수를 떠 오던 우물이다.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우물은 동네 아낙들의 수다 장소요 마을의 통신소 역할을 하던 곳이다. 참으로 우물은 신성시 하던 곳이다. 지금은 사용을 하지 않아 방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부터 신성시 하던 곳을 건드리면 동티가 난다하여 함부로 손을 못되게 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도로를 오르는 길에 오래된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다. 탱자나무를 보니 위리안치(圍籬安置)가 생각난다. 먼 옛날 유배는 사형 다음가는 형벌로 무거운 형벌 이었다. 한양에서 섬으로 귀양을 오면 죄의 경중에 따라 행동의 폭이 결정된다. 중죄인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둘러 주거의 자유를 박탈하는 위리안치의 형벌에 처해졌다. 머무는 집의 지붕높이까지 가시 울타리를 둘러 외부와 완전히 차단시키고 개구멍으로 먹을 것을 넣어주는 무서운 형벌 이었다


고개를 넘어서면 건너편 풍화리의 아름다운 반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이른 봄 보라색 꽃물결을 이루는 광대나물이 지천이고 따뜻한 햇살을 받아 어느 곳 보다 일찍 매화꽃이 피어난다. 갈목마을은 펜션 마을로 변했다. 갈목이라는 지명은 서쪽의 잘록한 끄트머리란 뜻이며 은 서쪽 및 서풍(갈바람)을 뜻하는 옛말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소나무는 운치가 있어 낙조와 매우 잘 어울린다. 통영의 문방사우도文房四友島는 갈목마을 앞바다에 있는 무인도인데 선비가 갖추어야 할 네 벗인 지, , , 紙筆墨硯을 닮은 섬이다. 또한 통영의 사신도四神島가 있는데 현무도-->광도 죽림 구도, 청룡도-->용남 화삼 사도, 西우백호-->인평 국치 호도(하항도), 주작도-->산양 저림 조도(학림). 우백호인 천암산天岩山 줄기가 뻣어 내려 국재마을 앞의 하항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평인 노을길은 석양이 아름다운 곳이다. 언제 한번 저녁 노을를 바라보며 걸어보고 싶다. 노을이 있는 펜션을 지나면 **절이 나온다. 덩그러이 대웅전만 크게 지어진 절이다. 모롱이를 돌아가면 과거 초등학교터에 한국 해양소년단경남남부연맹 교육장이 있다. 우리 청소년에게 바다의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해양소년단 거북선 학교다. 비치캐슬 호텔에는 예식장도 있으며 가족 호텔겸 펜션이다. 호텔 입구에 있는 뜬()바우를 잘 살려 조경을 했다. 뜬바우는 정량동에도 있었다. 이곳에 큰 바위에 통제사 김영 각암비가 있었는데 도로공사를 하면서 파괴해 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김영 통제사는 재임시 이 일대 송정, 해송정, 애액골, 와동 등에 큰 불이나 큰 바위 위에서 진두지휘하여 진화작업을 하고 이후 겨울이 다가와 백성들이 얼어 죽을까봐 금송구역의 소나무을 베어 집을 짓게 했는데 이듬해 파직을 당했다. 금송구역은 어떠한 이유로도 소나무를 벨 수 없도록 국법으로 엄격히 관리된 구역인데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 본인이 책임을 지고 백성을 살리는 마음으로 행했던 것인데 처벌를 받아 그가 떠난후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이 그 공덕을 세겼는데 후세의 우리들은 그를 기리지는 못할 지언정 그 흔적마져 지워버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가 떠날때 원문고개까지 전송을 하며 아쉬워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떤바우는 커녕 던바우 식당이라는 상호와 길 이름만 남았었는데 이곳에는 뭉개지 않고 잘 보존하여 조경을 했다


우럭개는 우럭조개가 많이 잡혀서 우룩개라 했는데 한자지명으로 우억포(右億浦)라 하다가 우포로 변했다. 즉 우럭개가 우포마을이다. 우포는 통제영 시대에는 중요한 통로였다. 고성, 사천에서 오는 각종 물산과 세곡들이 우럭개를 통해서 대평으로 명정 고개로 넘어 통제영을 넘나들었던 곳으로 이곳에 목장승이 남아 있다. 목장승은 기목나무로써 현존하는 오래된 목장승중 가장 잘 생긴 장승으로 가치가 있다. 원형을 보존하여 박물관에 보관해야 할 문화재이다. 코와 턱 그리고 수염이 살아있는 낧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문화재다. 이렇게 비바람의 풍화를 온몸으로 맞으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명정고개의 돌벅수는 통제영 초기에 있던 것으로 원문고개에서 나룻선으로 구루지 끄트머리(소포마을 부근)에 내려 명정고개를 넘어 통제영으로 들어왔다. 본래 해안도로가 나기 전에는 산아래가 마을의 입구다. 그곳에 400년 세월을 자랑하던 당산나무가 있었으나 오래되어 자연사 했다. 해안도로는 공식 명칭이 평인산업도로다. 1차선으로 버스가 비킬려면 교행하는 곳으로 후진하여야 할 만큼 좁은 시멘트 도로였다. 대평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전신 전화국에서 설치한 도로로 상당한 폭의 고개길이다. 과거 이 고개로 지게를 지고 걸었다 하여 우포 지겟길 인데 자연 원시림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겨울이면 푹신한 낙옆이 아름다운 길이다. 길가에는 여러기의 돌탑을 쌓아 놓았는데 대부분 최근에 조성한 것이다.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성황당이 될려나? 고개를 넘으면 대평마을의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이 대평의 큰우물로 마을의 감로수 역할을 하던 곳이다. 대평은 크고 넓은 땅을 의미하며 큰개라고도 한다. 지금은 매립하여 스포츠파크가 들어서 통영 축구인의 요람이 되었다. 또한 이곳에 한때 인라인 스케이트장이 들어서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일기도 했었다. 국제농원에서 생산하던 유자가 유명 했으며 지금은 농촌체험마을로 마을의 소득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을의 위쪽으로 오르면 명정고개가 나온다. 명정고개마루에 있는 돌벅수 한쌍은 이 길이 옛길임을 증명하는 지표다. 최근 세병관에서 발굴된 돌벅수(석인)와 유사한 점이 있다. 손을 앞으로 읍() 해있는 모양과 아래부분에 구멍이 있는 것은 유사하다. 명정고개 벅수는 도로공사시 1기가 분실 되어 똑같은 형태로 1기를 세웠는데 최근 머리가 파손된 채로 발견되어 그 뒤쪽에 세워 놓았다. 통제영을 열 당시 육지로 오는 길이 아직 없어 마구촌까지 말을 타고와서 그곳에 말을 매어놓고 구루지 끄트머리로 나룻선으로 건네 이곳 명정고개를 넘어 통제영으로 넘나 들었다고 옛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해안도로를 따라 오면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으며 차량통행이 뜸하여 마라톤 훈련코스로 최적이다. 자란만의 작은 섬들이 그림같이 저녁노을에 반사되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 시킨다


대평마을 지나면 소포 즉 작은개 마을이 나타난다. 통영의 서쪽 구석에 자리잡은 소포마을은 과거 존재감이 미미 했었다. 통영사람들도 이 마을의 존재를 잘 몰랐었는데 통영여고 미술 동아리 챌린지 팀이 마을에 벽화를 그리고 부터는 알려지기 시작했다. kbs와 교육과학기술부가 공모한 '미술교육 정상화를 위한 프로잭트'에 공모하여 선정된 통영여고 미술 동아리 챌린저팀이 그림 그리기를 통하여 협동하고 사색하고 성장해 가는 자아를 실현한 장이다. 통영여고 미술동아리는 지난 2000년 첼린지(challenge:도전)라는 동아리 명으로 1,2학년 학생들 중 미술에 관심이 많고, 미술전공을 희망하는 학생으로 꾸려진 동아리이다. 미술동아리 첼린지의 지도교사와 학생들은 20127월부터 11월까지 부모님의 동의로 방학기간과 학기중 주말 작업 등의 힘든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학생들의 끼와 땀의 결실로 새롭게 탈바꿈된 통영 소포마을! 시골마을의 넉넉함과 아기자기하고 예쁜 동화같은 여행을 꿈꾸신다면 여기 바다의 땅 통영의 소포마을을 추천한다. 동물농장에서부터 민화까지 다양한 그림이 있다. 벽화를 그린 챌린지 김예지 학생과 연락이 닿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노력이 묻혀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이야기에 여러 매체와 경로를 통하여 알려지도록 조언하고 협조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거제의 파워 블로그 빨강머리앤님의 주선으로 제주도 까지 원정을 가서 벽화를 그리는 경험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 입구에 안내간판이 없어 수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지켜지지 않아 안타깝다. 시청 홈페이지에는 링크가 되어있다. 아이들의 재치가 넘치는 그림들로 통영 오광대를 비롯한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과 거북선, 각종 민화, 다이어트중인 코끼리 등 모서리와 창문, 수도 꼭지, 전봇대를 응용한 여러 작품이 그려져 있다. 도로를 확장 하면서 묘지가 수용되었는데 이장을 거부하여 도로 가운데 외로운 섬으로 남았다. 모퉁이를 돌아가면 통영시 쓰레기 매립장이 나온다. 과거 매립을 했을 때는 침출수로 악취가 났었는데 최근에는 소각장이 들어서고 현대 설비의 가동으로 냄새는 거의 없으며 야구장이 들어서 시민들의 활력소가 되었다. 오래된 도시 일수록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있다. 이를테면 쓰레기 매립장, 화장장, 나병환자촌 등등... 최근 고성군과 생활 쓰레기 소각장 확장에 대한 여러 의견이 개진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협오 시설 주위의 주민들은 묵묵히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소리도 헤아려야 할 것이다. 멍개 수협과 여황산 등산로 초입이 나오면 평인 노을길의 노선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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