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통영섬 이야기

바람정원사의 비밀 화원 신비의 섬 국도(國島) 탐방기

청풍헌 2015. 3. 26. 22:39




비밀의 화원 신비의 섬 국도(國島) 탐방기

 

국도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섬이다. 이곳에는 청우일신회의 본산이 있는 곳이다. 통섬에서 국도 탐방 계획이 있어 올해는 꼭 참여 해야지 하고 기다렸다. 313일 계획이 풍랑으로 취소되고 일주일 후인 320일 연차를 내고 탐방객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국도는 지난 1977년 군에 입대하기 전 가조도에서 꽁치잡이 배를 한 짓기(한번 조업) 타게 되었다. 한번 꽁치잡이를 나가면 3~4일은 작업 하므로 배에서 숙식을 한다. 두 척의 배로 꽁치가 발견되면 그물을 내려서 손으로 당겨 잡는 원시적인 방법이다. 배 두 척 사이에 꽁치가 도망가지 못하게 작은 돌을 던져 그물 안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수차례의 조업으로 돌이 떨어져 마을의 뒤편 작은 몽돌 밭에서 돌을 싣고 마을에 내렸다. 당시의 기억으로는 우물이 있었으며 학교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나무는 온통 바람의 영향으로 드러누운 형상 이었다. 돌담사이로 한 처녀가 섬에 내린 우리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위를 타고 옆으로 오르니 기암절벽이 가로막혀 마을로 돌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38년 전의 일이다. 제주도에 여행할 때 날씨가 좋으면 국도 밖으로, 날씨가 굳으면 국도 안으로 운행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모 종교단체에서 국도를 인수하여 수양시설을 짓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 한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국도에 대한 상식이다.

 

국도는 통영항에서 뱃길로35km, 욕지항에서 19km 떨어진 남해안의 바깥 섬 중의 하나로 고려말기 설운장군이 입도하여 평소 염원했던 나라를 세우고 싶은 생각으로 국도라 했다는 설과 부근에 가장 큰 섬으로 여러 작은 섬들을 거느린다고 국도라 했다는 설이 있다, 혹은 나리꽃이 많이 피어 나리섬, 나릿섬, 나랏섬등으로 변천했다고 한다. 욕지면지에는 진양인 김경팔이 33녀를 데리고 120년 전 무자년에 입도 물춘등, 비우초, 억새등으로 집을 짓고 보리, 고구마를 심어 연명하다, 들쥐의 피해가 심하여 담배로 바꾸어 경작 하여 생활 하였다. 욕지도 동남쪽 먼 바다 가운데 위치한 외딴섬 마을인데 옛날 섬에 개나리(나리)가 많이 자생하여 속칭 나리섬이라 불렀는데, 발음이 변하여 나라섬이 되었다. 국도는 나라섬의 한자 지명이다. 국도 분교장 교문에 천연기념물 거제 팔손이 자생지라는 표지석이 있는데 거제 팔손이란 이전에 국도가 행정구역상 거제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1980년대 후반 청우일신회라는 종교단체가 종단 본부를 설치하면서 한 때 20여 세대 100여명의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연명하던 섬을 떠나왔다. 욕지도에서 새마을 17호가 매 짝수날 1회 운행하다가 지금은 여객선은 운항하지 않는다. 대신 청우일신회에서 전승호라는 자가용 선박을 이용하고 있으나 일반인들은 특별하지 않는 한 이용할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맑고 화창한 날씨 아래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국도로 향했다. 오늘의 특별 게스트로 국도분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조진규 교장 선생님이 함께했다. 조진규 교장 선생은 지금은 정년퇴임하셨지만 1981년부터 1983년 까지 이곳 국도 국민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뛰놀았던 분이다. 1시간여 항해 끝에 국도에 닿았다. 뱃머리에서 바라본 국도는 가운데 흰색의 건물이 있는 멀리서 바라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방파제나 선창이 없는 국도는 너울성 파도로 배에서 내리기도 불편하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국도에 상륙했다. 섬에서는 세 사람이 마중을 나왔다, 바닷물이 옥색빛이 감도는 옅은 청색이다. 연안의 바닷물 색깔과 확연히 달랐다. 섬으로 오르는 길은 시멘트로 난간을 세웠으며 구름다리를 놓았다. 다리위에서 내려 본 바다는 아찔한 협곡이다. 다리를 건너 입구에 모여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이라고 강조한다. 종교시설로 오르는 길은 시멘트로 잘 포장되어 있으며 각종 나무를 심어 깨끗이 관리되고 있었다. 시설 입구에는 국도새마을운동이라는 팻말이 있으며 청우일신회라는 입간판이 있다. 동백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으며 수선화는 그 꽃 봉우리를 수줍게 내밀고 남새밭에는 각종 채소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좁은 계단식 공터에도 나무를 심고 시멘트를 발라 놓았다. 이곳이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큰소리나 흡연, 침 등 거의 일상적인 주의점 들이다. 우리가 11시경 도착 했는데 타고 온 배가 16시에는 가야 함으로 개인행동을 자재하라는 부탁을 했으며 섬을 종주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며 개인행동으로 안전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곳은 종교단체의 사람들만 있으므로 길을 잘 알지 못할 뿐 더러 안전시설이 거의 없어 매우 위험하다. 일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와 선창에서 내리다가 크게 다쳐 후송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시설을 안내하는 배씨를 따라 기도처인 영대(靈臺)를 둘러보고 청우 일신회에 대하여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청우일신회는 증산신앙계통의 민족종단중 하나로 1988년 대순진리회로부터 분리 되었다. 연동흠 종전(宗典)1988922일 창도 했으며 전국에 시도 지부가 있고 종단본부를 통영에 두고 있는 종교단체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반주로 막걸리와 소주를 주어 한잔씩 했다. 식당에는 밥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으며 남자 몇 명이 같이 식사를 했다. 그냥 보통 식사다. 맛있는 나물에 김치 와 신선한 채소쌈이 있었다.

 

배정우님의 안내로 산행을 시작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큰 동백나무 아래는 다시 피어난 동백이 햇살을 받아 아름다웠다. 방목된 염소와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과 구별하기 위하여 울타리를 쳐 차단하고 있었다. 흐트러진 동백이 핀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바위아래 산신당이 있다. 신령스런 기운이 흘러나오는 바위아래 두 개의 돌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산신당집이 있다. 조진규 교장 선생님의 기억에는 1년에 두 번 제사를 했으며 가족의 애로사항이 있으면 수시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종전(宗典)이 이곳 국도에 19889월에 입도하여 100일 기도를 하고 득도를 했다고 한다.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돌담으로 이루어진 작은 제단이 있다. 이곳이 장군당이라고 한다. 이곳도 염소의 출입을 막기 위하여 그물로 둘러져있다. 섬의 사람들은 모두 떠났지만 오래된 섬사람들의 신앙인 산신당과 장군당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종전이 득도한 기도처로 내려가는 곳은 매우 가팔랐으며 흔들바위처럼 생긴 바위가 쌍둥이 장군의 얼굴처럼 보였다. 기암괴석과 천 길 낭떠러지가 아찔한 풍경을 연출한다. 오르락내리락 동백 숲 군락을 지나니 국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270m)에 올라섰다.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천왕봉이라 했는데 아이들과 의논 끝에 다른 섬들과는 다르게 부르자며 국도봉 이라고 이름 붙여 불렀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아래로 내려 보니 차마고도 같은 좁은 길이 보였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체력훈련으로 저학년은 여기까지를 하프코스, 고학년은 큰 마을까지를 풀코스라며 운동을 했다고 기억했다. 일 년에 한번 염소몰이를 할 때는 고학년은 좀 위험한 곳까지 가서 염소몰이를 했으며 저학년은 안전한 곳에서 도움을 주도록 했다고 회상 하셨다. 동백 숲은 세찬 바람의 영향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드러누웠다. 어느 멋진 바람정원사의 비밀화원이다. 봉황이 새끼를 품은 어깨 죽지에 해당하는 협곡을 지나면 섬의 끝자락이 보인다, 봉황이 머리를 박고 두발은 드러내어 놓은 형국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용머리 같은 형국이다. 염소 똥과는 다른 것이 있어 이것이 무슨 짐승의 똥인지 물어보니 사슴이란다. 최초 2마리를 방목 했는데 좀처럼 번식을 하지 못하고 몇 마리만 보인다고 했다. 겨울에만 가끔씩 보인다는 진언이다. 학교로 왔다. 입구에는 표석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연화국민학교장 이용섭이 국도에 분교를 설립하여 그 공을 기리기 위하여 196411월 국도주민이 세웠으며, 천연기념물 제63호 거제의 팔손이나무 자생지라는 표석도 있다. 학교터는 폐허가 되었다. 교실 안에는 염소들의 피신처로 자연사한 염소의 백골이 나 딩굴고 염소 똥으로 가득 차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각종 문교정책이 한문으로 쓰여 있으며 당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작은 운동장에는 철봉과 시소가 아직도 튼튼하게 서있다. 국도분교는 1964423일 연화국민학교 국도분교로 개교하여 69년도 1회 졸업생 5명을 배출 했으며 77년 원량국민학교 국도분교장으로 개편된 후 90년 까지 45명을 졸업했다. 93년도에 폐교, 96년 청우일신회에 매각 되었다. 작은 마을의 선착장은 없으며 적당한 바위에 배를 대고 승선했다. 과거 기억에는 배를 정박할 수 있었는데 오래 동안 사용하지 않아 없어진 것 같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소멸된다. 그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비밀의 정원인 국도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신비의 섬이다. 아무나 갈 수 없기 때문에 각종 루머가 난무 하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보통 종교의 섬이며 사람 사는 곳이다. 다만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고립무원일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고립되다 보니 원활한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온갖 상상이 난무하여 진실인양 호도되기도 한다. 국도의 자연은 남해안의 마지막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교인들이 철마다 풀을 베고 무너진 계단을 손보고 꾸준히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이 보존되는 것 같다. 이곳이 국립공원지역인데 이런 종교시설이 들어선 것 자체가 미스터리이지만 둘러본 국도는 그나마 외부인들의 출입이 없어 자연이 잘 보존되고 있음을 느꼈다. 국도 비밀의 화원에서 느끼는 감정은 특별했다.

 

국도

입구다리

영대

산신당



장군바위


차마고도

바람정원사의 솜씨

이용섭교장 공덕비

거제의팔손이자생지

2015.3.20. 국도탐방 후 백세청풍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