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1886) 조선반도에 대 기근이 들었다.
들판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시체를 못치워 악취가 진동 하였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온 고을을 메아리쳤다.
이때 조정에서 별향사를 파견 하여 통제영 백성을 구휼하였다.
그가 오횡묵이다.
함안 군수와 고성 부사를 역임한 오횡묵은 기록의 달인이다.
그의 기록은 통제영 복원의 기초가 되었다.
별향사로 와 통제영 사람들을 구휼한 은공을 잊지 못하여 군민들이 사적비를 세웠다.
그 기록이 함안 총쇄록에 자세히 적혀있다.
오횡묵은 아들이 욕지 개척차 통제영에 와 있었는데
아들을 만나러 수 차례 통제영을 방문하여 보고 듣고 느낀바를 함안 총쇄록에 기록했다.
1890년 3월 20일 기축, 동이 틀 무렵 출발 하였다.
이른바 맞이하는 명색 관리들이 모두 대령 하였다가 앞에서 인도 하려다 엄히 타일러서 이들을 물리쳤다.
종종 걸음으로 원문으로 들어가니 문안에 새롭게 만든 비석이 서 있었다.
높이가 한 길 남짓 되었다.
머리는 처마모양이고 부趺는 거북모양이다.
우뚝 서 있었다.
이것을 보니 전면에는 "통정대부함인군수전별향사오공횡묵영세북망비'라고 세겨져 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기에서 의하면 비는 원문 안에 위치한다.
마을 어른들의 증언으로 부趺가 원문성문 안에 있었다.
어떤 연유로 오횡묵비가 현 위치로 이전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부서진 채 발견 되었다.
비를 복구하여 현 위치에 세웠다.
통제사 길을 탐방하면서 확인하니 비가 넘어져 있었다.
검은 비닐로 쌓여 덮여 있는 오횡묵비가 애처로웠다.
복구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느날 누군가가 비碑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확인하니 원래 위치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이전 하고 있었다.
이럴수가?
이전 할려면 당연히 본래의 위치를 찾아서 이전 해야 할 이치다.
민원이라는 미명아래 소중한 문화재를 훼손한 행위다.
오래전 원문성을 추적한 일이 있었다.
통영성의 필요충분 조건인 원문성을 알리는 안내판 이라도 세워 달라고 건의 했었다.
원문성의 위치를 정확히 추정 할 수 있는 오횡묵비가 또다시 엉뚱한 곳에 이전했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생가터 및 중요 무형문화재 추용호 소반장의 집은
소송도 불사 하면서 소방도로를 낼려고 하고있다.
오횡묵비는 왜 원래의 위치에 세우지 못하는가?
수많은 세월이 흐른뒤 후손들이 뭐라고 할 지 두렵지 않는가?
원래위치 추정
두 동강 난 비석
확인하는 문화원 이사님들
현 위치에 세워진 오횡묵 비
오횡묵비 앞에서
어느날 가보니 넘어져 있었다.
길을 걸으며
누군가 확인하니 감쪽같이 없어졌다고...
복원중인 오횡묵비
전혀 엉뚱한 곳에 세워진 오횡묵 비
오횡묵비 위치변동
20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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