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수군재건로3 (압록-곡성)《낮에 곡성에 이르니 관청과 여염집이 한결 같이 비었음》

청풍헌 2016. 5. 29. 09:20

아침에 일어나니 공기가 상쾌했다.

통영에서 이 경준과 금갑도만호가 출발 했다는 톡이 왔다.

도착 하려면 족히 두 시간이 걸리므로 조금이라도

거리를 단축하기 위하여 8시에 길을 나섰다.

 

옛길은 철길이 있는 좌측 길이다.

우측의 길은 20여 년 전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오솔길 이었다.

압록에서 가정 역까지 약 4km이다.

지금 줄여 놓으면 뙤약볕 두 시간을 절약한다.

 

간간히 자전거를 탄 사람만 지나간다.

언덕배기에 있는 딸기도 따 먹고 시원한 강변길을 올랐다.

이곳 사람들은 나들이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논곡리 마을 초입에 오래된 비석이 보여 확인 하고 있는데

동네 주민이 나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길은 약 20년 전 만들었으며 곡성으로 가는 방법은 나룻배를 이용하여 건너 다녔다. 지금 곡성청소년 수련장이 과거 학교(모교).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불어 학교 가는 길이 잠겨 학교를 가지 못했으며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비가 많이 오면 길이 잠길까 일찍 집에 보내 주었다. 가정마을을 건너는 나루선이 뒤집혀 사람이 여럿 죽었다. 그래서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홍수가 나 상류 땜 방류로 다리가 떠내려가 다시 다리를 놓았다. 야간 경관이 참 좋다.

 

곡성 천문대에 오니 전화가 왔다.

압록 보건지소에 왔다는 연락이다.

가정 역으로 오라하고 청소년 수련관 입구의 안내판을 확인했다.

구름다리로 들어서니 다리의 내력을 적어 놓았다.

주민에게 들은 그대로다.

 

다리를 건너 이 경준과 금갑도만호를 반갑게 맞았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는지 결기가 대단했다.

그래! 한번 가보는 거지 뭐~~~

 

가정 역에서 강변으로 난 자전거 전용도로로 갔다.

충주에서 온 산악회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었다.

산악회 팀은 트레킹 하여 장미 축제장까지 간다.

길섶의 야생화에 푹 빠졌다.

 

마천목 장군과 도깨비 살 안내판이 보였다.

곡성문화원에서 세워 놓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마천목장군은 어릴 때 효심이 지극하여 강가에 돌을 쌓아 독살을 만들어 부모님께 고기를 잡아 드리려고 했으나 강이 깊고 넓어 다 쌓지 못하고 집으로 가다 발길에 흰 돌이 보여 집으로 가져왔다. 이 돌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데 도깨비들이 나타나 우리의 대장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이때 장군은 꾀를 내어 내가 너희들의 두목을 돌려 줄 테니 대신 이곳에 독살을 쌓아라. 하니 하룻밤에 도깨비들이 독살을 쌓았다는 전설이다.

 

멀리 아파트가 보이는 것이 장미축제 현장이 가까웠나 보다.

길가 어느 정자에서 휴식을 하는데 산악회 팀들이 도시락을 나누어 주어 같이 점심을 먹었다. 이 길을 가면서 군량과 병장기, 조선수군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다.

목적지(장미 축제장)가 같으므로 우리는 한 배를 탄 조선수군이다.

마음이 뿌듯했다.

그늘이 없는 뙤약볕을 걷기란 매우 힘들었다.

 

드디어 축제장에 들어왔다.

정열의 꽃 장미꽃 세상에 왔다.

수 만송이 각양각색의 장미와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이곳은 곡성 기차마을로 증기열차와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이다.

기차를 주제로 하여 놀이동산을 만들었다.

열차가 없는 통영에서 증기열차를 타 보자고 의기투합하여 매표소로 갔다.

매진, 매진 사태로 포기하고 우리의 목적지인 곡성 현청 터로 향했다.

 

곡성 현청 터인 군청에는 노거수만 이곳이 옛 현청 터임을 말해준다.

힘들었다.

오늘만 20km를 걸었다.

 

구례에서 순천으로 가는 길은 송치 재를 넘어 학구 삼거리로 가면 되는데 왜 굳이 곡성, 옥과를 거쳐 갔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늘 미수 새마을 도서관에 신간이 들어왔다.

이순신 관련 책이 잔뜩 들어 온 것은 이경준의 사심이 들어간 것이다.

책 중에 격군님의 저서 이순신 백의종군p126(일본군은 선박을 이용하여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악양에 정박 하였는데 조경남은 이러한 일본군의 규모에 대하여 "영남 바다로 부터 5, 60리 사이에 배가 가득차서 마치 바다가 물이 없는 듯하다"라고 표현했다. 이 시기는 이순신이 구례로 향하다가 적선이 이미 나루터에 정박해 있는 것을 보고 곡성을 거쳐 순천으로 우회한 것이다.)

 

장군이 도착한 곡성현청은 텅 비어 있었다.

일본군이 온다는 소식에 모두 피난을 간 것이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곡성군청도 텅 비었다.

낮에 곡성에 이르니 관청과 여염집이 한결 같이 비었음




20.23km 7시간 09분

2016.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