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순신

조선수군재건로4(곡성-옥과)사또가 다시 오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살았다.

청풍헌 2016. 6. 26. 23:41

최근 통영에서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99호 추용호 소반장의 공방을 강제 철거하여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집에서 쫓겨난 소반 장은 천막을 치고 농성중이다. 천막 농성장에서 장인과 함께하는 청년이 글을 올렸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15일이나 함께하며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 일을 시작 했던 게 후회되는 생각이 들었단다. 누가 해야 될 일인데 앞서 가는 것은 그 만큼 힘들고 외롭다는 말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이 청년의 심정이 나도 똑같이 드는 것이다. 내가 괜히 나서서 지부에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지? 나 좋다고 지부를 끌어 들인 것이 아닌지? 내가 하는 일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던 아내가 싫어하는 내색을 했던 것이 오버랩 되어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다. 덥고 멀다. 하루 걸음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아스팔트를 걷기도 힘들 것이다. 내 스스로를 혹사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여러 의심과 고민, 회의가 들었다


래도 약속은 약속인지라 짐을 챙겨 나왔다. 사전 조율에 의하여 당일만 답사하기로 했다. 통제사와 정경달님이 오신다고 했으며 곡성에서 시작하여 옥과 에서 버스를 타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집결지에서 기다리니 고상안과 게스트 한명이 같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차 두 대에 다섯 명이 움직였다. 곡성군청은 이번이 네 번째다. 옥과로 가는 길은 두 곳이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청계 계곡)과 서남쪽으로 가는 길이다. 거리는 24km로 거의 비슷하다. 곡성 현청 터인 군청 안내판에서 인증샷 했다. 새로운 길, 가지 않은 길은 물어서 가야한다. 사전에 지도로 검토 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동네 주민에게 직접 물어보고 이동해야 한다. 곡성 양조장에서 막걸리 두 병을 샀다. 이것이 나중에 크나큰 에너지원이 될 줄이야. 더웠다. 11시경에 시작 했으니 한창 햇살이 뜨거워질 때다. 메타세콰이어 길과 자전거 전용도로는 걷기에는 그만이다. 다만 너무 더워 탈이다. 신기마을 초입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며 막걸리 한 병을 마셨다. 꿀맛이다. 더위에 갈증에 막걸리 한 잔은 에너지원이다


순자강변으로 접어들었다. 섬진강은 지역마다 다르게 불린다. 218km 구비마다 이름을 달리한다. 오원강, 운암강, 적성강, 압록강, 악양강, 하동강, 잔수강, 찬수강, 순자강까지 여러 이름이 있다. 순자매운탕 집이 있다. 순자강은 이곳 사람들이 부르는 섬진강의 다른 이름 이란다. 순창에서는 적성강으로 불리다 이곳에서는 순자강이다. 옥과면과 경계를 이루고 도도히 흐르고 있다. 강에는 수많은 텃새들과 각종 물고기가 풍부하여 왜가리들이 사냥을 즐기고 있다. 심연의 계곡처럼, 소나무가 울창하며 강가에는 버드나무가 녹음을 자랑한다. 강바닥의 수많은 바위들이 드문드문 물위로 솟구치고 바위에 선 강태공은 세월을 낚고 있다. 순자강의 순자는 메추리 순자를 쓴단다. 가을에 메추리 떼가 찾아와 메추리강 즉 순강, 또는 순자강이라 했단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김정설이라는 사람이 아픈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살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메추리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초여름이라 가을에 날아오는 메추리를 구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낙심하지 않고 순강을 찾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메추리 한 쌍이 하늘에서 강으로 떨어진 것. 메추리를 주워 아버지를 해드렸는데 병환이 말끔히 나았다. 나라에서는 아들의 효성을 표창했고 메추리가 떨어진 강에는 메추리 `자와 아들 `를 써서 순자 강이라 부르게 됐다고도 한다. 강변양쪽으로 도로가 있다. 강 건너편에는 자전거 도로가 있다. 맑은 물과 푸른 강변은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다


식당을 한곳 지나고 두 곳 지나고 세 곳 째는 먹어야 하는데 테이블에 세 팀이나 기다린다. 그래서 통과한 게 화근이 될 줄이야.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청계계곡이다. 청계계곡은 의병장 양대박 장군이 의병들을 모아서 훈련시키고 출동했던 곳이다. ()에서 예산을 받아 의병 훈련장을 만들어 관광지화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입석면까지 식당이 없다. 즉 굻어야 할 판이다. 배가 너무 고팠다. 순자강(鶉子江) 지류를 따라 이동했다. 덥고 배고프고 힘들다. 그래도 주위를 살피며 꾸역꾸역 걷는다.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평촌리에 도착하니 담배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수 년 전 지리산 천왕봉을 칠선계곡으로 통하여 오르고 너무 배가고파 장터목산장을 한달음에 달려가 초코파이를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배가 고파 절실 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물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막걸리 남은 것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아무리 부자라도 위대한 사람도 먹어야 살 수 있다.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걸음도 배고프면 걸을 수 없다. 한적한 시골 마을 작은 동네 점방에서 좁은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라면을 먹는다. 400여 년 전 장군도, 군관도, 따르는 백성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옥과로 향하는 마음은 처절 했으리라


라면과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무척 심심한 길을 나섰다. 전력선 지중화 반대 천막 농성장이 보였다. 동네 청년회에서 당직을 서며 수박을 먹고 있었다. 염치 불구하고 인사하며 갔다. 꿀맛이다. 햇살이 내려쬐는 지루한 길을 걸었다. 우측으로 근사한 옛집이 보였다. 지나쳤는데 뒤돌아보니 군지촌정사였다. 되돌아갔다. 입구에 하마석이 있다. 순간 하마비로 착각하고 비를 찾느라 이리저리 다녔다. 하마석은 말에서 내리는 노둣돌이다. 정사는 개인의 서재나 사숙이다. 군지촌정사는 심광형이 1535(중종 30) 후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운 사숙이다. 그 옆에는 한옥 펜션이 있다. 약간 위쪽 풍치 좋은 언덕에 함허정 이라는 오래된 정자가 있다. 이 정자도 1545년 당대의 문사 심광형이 지역의 유림들과 시문을 읊기 위하여 세운 정자다. 격식을 갖추고 멋지게 서 있다. 당시 옥과 현감은 이곳으로 놀러와 향약을 함께 읽으며 즐겼다고 한다. 내부에는 여러 기문과 현판이 걸려있다. 돌아 나오면서 연자방아까지 보고 나왔다. 입석면을 지나며 옥과가 목전인데 지치고 힘들었다


86일 갑자 맑음. 아침 식사 후 길에 올라 옥과 경계에 이르니 순천과 낙안의 피난민들이 길에 가득히 쓰러져 남녀가 서로 부측하며 갔다. 그 참혹한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울부짖고 곡하며 말하기를 사또가 다시 오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살았다.”고 하였다. 길옆에 대괴정이 있기에 내려앉아서 말을 쉬게 하였다. 순천 이기남도 와서 만났는데 장차 골짝에 굴러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옥과 현에 이르니 현감은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정사준 정사립이 먼저 이르러 관아 문 앞에 와서 내가 먼저 오기를 기다리고 조응복과 양동립도 우리 일행을 따라왔다. 나는 현감(홍요좌)이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기에 잡아다가 곤장을 치려고 하였는데 현감이 그 의도를 알고 급히 나왔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비참함이 처절히 느껴지는 일기를 읽으며 당시를 가늠해 보았다. 옥과 현청 터는 주차장으로 변했으며 그곳이 현청 터임을 알려주는 것은 옥과 현감의 비석들이다. 전라 관찰사비와 함께 서 있다. 24km를 힘들게 걸었다. 앞으로 더위가 심해질 것인데 큰일이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2016.6.18